일제시대 전까지 석굴암이 잊혀졌던 이유
1891년 석굴중수상동문. 대충 누구 집안이 수리했다는 내용.
이전 1700년대, 1750년대에도 수리기록 있음.
그 이전 이후에도 석굴암은 경주 유람 기본 코스라서 온 사람들은 기행문을 남기곤 했음.
근데 왜 20여년만에 거의 무너진채로 발견됬냐면.
이 일대가 산사태 위험이 몹시 높은 지역이라서 그럼.
아마 1891년에 수리한 이후 어느 시점에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인근 지방에서 방귀깨나 뀌던 유림은 나라꼴이 개판이라 수리할 여력이 없었고.
스님이나 불교도들은 치안이 위험해지면서 산골짜기에 있는 석굴암에 접근하지 못 했던걸로 추정됨.
사실 잊혀졌다기보단 그냥 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기라 미처 수리하지 못한거지 뭐가 어디에 있는지 쯤은 알고 있었음.
일제가 콘크리트질 한것도 맞는데 이건 최신기술에 대한 과한 애호때문에 그런거고,
실상은 60년대에 졸속 수리한다고 유네스코 전문가 의견도 씹고 콘크리트 땜질을 더 퍼부은 야만의 시대 막타가 더 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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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