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종교들의 민낯 - 천주교
웃기기도 하고 빡치기도 한 일이지만 종교 내 성폭행과 같은 성추문은 너무 흔한 내용이라 굳이 쓰지 않겠습니다.
종교 매체를 통하지 않으면 접하기 힘든 내용 위주로 글을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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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해 글을 쓸 때 반민족 행위에 대해 썼습니다. 민족지도자 33인은 대부분 각 종교계 지도자들로 이루어 졌는데 불교는 단 2명이라고 말씀 드렸었죠. 그렇다면 천주교는 어떠할까요? 민족지도자 33인 중 천주교 지도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심지어 독립운동을 했다고 알려진 천주교 지도자도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일부 가톨릭 신학생들만이 독립 운동에 투신을 했죠. 그 정도로 한국 천주교는 반민족행위에 적극 가담 했습니다.
노기남
한국 천주교의 반민족행위에 앞장 선 인물이 바로 당시 경성교구장 노기남 대주교입니다. 일본 이름 오카모토 가네하루. 그는 1942년 1월 천주교 경성교구장에 임명되자 기관지 경향잡지 1941년 2월 호를 통해 "매월 첫째 주일을 애국주일로 지키고, 애국주일에는 일본군의 승리를 비는 무운장구 기원 미사를 드리며, 미사 전후에 애국식을 거행하고, 미사 중에 시국강론을 하고, 미사 뒤에 단체로 신사참배를 하라"라고 지시했습니다.
2000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친일에 대한 반성문을 발표합니다.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 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그 반성문인데, 앞서 노기남 대주교의 행적을 말했듯이 단순히 제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는 표현은 사과라 말할 수 없는 표현이고 마치 제 3자의 행위에 대해 말하는 표현이죠.
안중근
이러한 반민족행위에 대한 역사를 부정하기 위해서인지 한국 천주교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별 말이 없습니다. 안중근 의사에 호는 '도마'로 세례명 토마스에서 따온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는 안중근 의사의 시성을 추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자신들의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또 그것에 대한 자괴감 탓은 아닌가 하고 생각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천주교는 왜 이렇게 친일에 앞장 섰는가? 개인적인 의견을 써보겠습니다.
한국 천주교는 특이하게 선교사가 들어와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천주교 교우들이 먼저 생기고 후에 그들이 교황청에 직접 사제 파견을 요청해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뮈텔 주교
한국 교우들이 사제 파견을 요청 할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2세는 파리 외방전교회라는 곳에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뮈텔주교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이자 조선대목구 8대 대목구장이다. 파리 외방전교회는 문화 우월주의로 조선 민족의 독립운동을 탐탁치 않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희대의 개짓거리 중 하나가 뮈텔 주교의 '105인사건' 밀고이다. 105인 사건과 그것이 일어난 원인으로 '밀고자'가 거론이 되기는 하지만 그 밀고자가 가톨릭 주교라고 언급은 안된다.
안명근(마땅한 사진이 없어 그림으로 대체)
독립운동가이자 도마 안중근의 사촌인 안명근은 안중근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 안중근은 쾌거를 이루고 장렬히 순국한 반면 자신은 살아남아 있고 이것이 기회주의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국내에 잠입하여 데라우치 척살을 계획하고 군자금을 모으고 있었다.
빌렘 신부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안중근에게 성채를 내려준 인물로 정치적 문제에 개입했다고 업무 정지 처분을 받은 신부였다. 안명근은 그를 믿었기에 자신의 데라우치 척살 계획을 털어 놓았다. 근데 이것이 뮈텔의 귀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뮈텔은 이것을 총독부 경무총장에게 고한다. 이를 통해 한국천주교가 무슨 이득이 있었을까 싶은데, 그 때 당시 한국천주교는 명동 성당 토지 불법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단 사실을 말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뮈텔 주교의 밀고를 통해 발생한 사건이 '105인 사건'이다.
여기까지 불교와 마찬가지로 한국 천주교의 반민족행위에 대해 써보았습니다. 제가 천주교와 불교의 반민족행위는 적고 개신교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개신교는 반민족행위를 벌이지 않았기는 아닙니다. 다만 개신교의 반민족행위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고 천주교와 불교는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가톨릭의 개짓거리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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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진석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 이후 두번째 추기경이 된 인물이다. 이 인간이 무슨 일을 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자.
꽃동네 비리
꽃동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꽃동네는 가톨릭이 운영하는 곳이고 수많은 비리가 있다. 그리고 청주교구장 출신인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꽃동네 오웅진 사도 요한 신부와 그 비리로 만든 권력과 금력을 같이 향유 했었다. 이는 청주교구 소속 신성국 노엘 신부가 폭로한 적이 있다.
사제 탄압
전종훈 신부
전종훈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이고 정의구현사제단의 일원 중 한 명이다. 그는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을 도왔고, 김용철 변호사를 숨겨 주었다. 당시 정진성 추기경은 정의구현사제단이 김용철 보호사를 보호하자 대표였던 전종훈 신부를 1차 소환했고, 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촛불 시국미사를 봉헌하자 다시 소환해서 해외로 나갈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전종훈 신부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안식년 발령을 내렸는데, 천주교 신부의 경우 10년에 한 번으로 1년동안 안식년이 주어지는데 전종훈 신부는 가장 최근 안식년이 7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교구에서는 강제로 안식년 발령을 내렸다.
4대강-명동성당 빅딜
명동성당
정진석 추기경은 자신이 서울교구 교구장이었던 시기인 2009년도에 명동성당 재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하지만 당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회의에서는 명동성당 재개발 사업에 대한 6차례 심의에서 역사적 가치의 훼손과 연약한 지반, 주변 경관 파괴 등의 이유를 모두 부결 방침을 내렸다. 그러나 당초 계획 13층에서 1개층을 줄인 12층 건물 신축 등의 수정안을 다시 제출하였고 이것에 대해 갑자기 반대토론도 없는 만장일치의 찬성 결론을 내려 재개발이 사업이 급속도로 진행된다. 근데 여기서 미심쩍인 것은 당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 했으나 명동성당 재개발이 허가 나자마자 정진석 추기경은 주교회의의 입장과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4대강 사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한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