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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의 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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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 왕은 예쁜 여자를 마음껏 사귀고 쎆쓰할 수 있었다.


결론은 아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조선의 왕의 성관계는 오로지 한가지 목적, 후계자 생산이다.

조선왕조 평균 3.7명의 후궁을 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왕의 사랑이 목적이 아닌 오로지 후계자 생산이 목적이었다.


세자때부터 옆에 붙어다니는 세자빈은 간택 시 애초에 세자의 선택권한 자체가 없었고,

간택 당시 세자건 세자빈이든 나이도 매우 어려 (대략 8~13세 사이) 2차 성징이 될랑말랑 하던 때니까, 


더구나 유교사회 상 색에 집착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기 때문에, 세자빈은 미모의 여성보다는 아이를 많이 나을 상

(궁디가 크고 후덕한 상) 으로 대부분 간택된다. (미인이 얻어걸릴때도 있었다 한다.)


후궁을 예쁜여자로 채택하면되지?

이것도 안된다. 후궁 자체가 중전과 대비 및 대신들의 결정으로 채택이 되는데 견제때문에 미인이 들어올리가, 후궁도 후덕

(예외는 있다. 중종처럼 예쁜후궁인 희빈홍씨가 얻어걸리는 경우와 숙종처럼 조빵쎈 왕권으로 이여자 내꺼 하는 경우

그리고 미친놈이어서 아무도 안건드리는 연산군의 경우다.)


장옥정.jpg 조선 왕의 성관계
(숙종은 강한 왕권으로 미인 장옥정을 손에 넣었다.)


그럼 궁녀랑 하면 되잖아?

이것도 안된다. 왕이 예쁜 궁녀에게 한눈을 팔아 정사를 돌봄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 왕실과 궁중이 왕 - 궁녀의 일대일 만남을

집중적으로 단속했다. 

승정원 일기에 따르면

궁 안에서조차 왕의 동선은 근위병과 내관, 상궁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악되었고 이 동선에 궁녀가 걸리지 않게 쫓아냈다.

만약 어떤 궁녀가 왕의 총애를 받을 경우엔, 승은을 입기 전에 궁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동이.jpg 조선 왕의 성관계
(동이는 대단한거다.)


거기다 왕 근처에는 준나 안이쁜 궁녀들만 득실득실하게 배치했다는 것이다. 물론 왕의 정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심지어 중종실록(중종 12년 8월 24일) 기록에 따르면

조광조가 경연자리에서 중종에게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훈계하는데

조광조 왈 : 혹시 요즘 혼자 계실 때 마음공부를 게을리 하신게 아닙니까?

(즉, 혼자있을때 야한생각하지 않았냐?)

고 질책했다고 한다.


다른 중종실록 (중종 13년 4월 21일) 기록엔

중종이 후궁 홍희빈과 매일같이 노닥거리곤 하다 경연에 나갔더니 사헌부 정 4품 관료에게

"여색에 빠지는 용렬한 임금"이라는 정중한?! 지적질을 당한다.


2. 조선 왕의 성교육


10살 전후에 성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사실 공식적인 성교육은 사료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면 정조가 세손이었을 때 교육받은 과목은 효경, 동몽선습, 소학, 대학, 논어, 사략, 맹자, 서경, 시경, 강목, 중용 등인데

이런책에서 성교육이 나올리가.. 없다.


그렇다고 성교육이 없었던 것은 아닌걸로 추측된다. <매천야록> 에 따르면.


“세자의 나이가 조금 장성하였으나 그 음경이 오이처럼 드리워져 발기되는 때가 없었다. 소변도 그대로 흘려버려 항시 앉은 자리를 적셨으므로 하루에 한 번쯤 요를 바꾸거나 바지를 두 번씩 바꾸기도 하였다. 그리고 혼사를 치를 나이가 되었지만 남자의 도리를 다할 수 없어 명성왕후는 미친 듯 한탄하였다. 하루는 명성왕후가 궁비(宮婢)에게 부탁하여 세자에게 성교하는 것을 가르쳐 주도록 하고, 자신은 문 밖에서 큰 소리로 ‘되느냐? 안되냐?’ 하고 물었다. 그 궁비가 ‘안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명성왕후는 두어 번 한숨을 내쉬다 가슴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종이 세자였을때 이야기다. 순종이 아홉살 때 혼인했으므로 위 사건은 그즈음 있었던 일이라고 보면 된다.

(존나 너무하지 않냐, 9살한테 꼬추안선다고 꼽주는게)


하지만 조선 왕들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궁중 도서관에는 '소녀경''금병매'와 같은 성의학서가 있었으며 왕과 세자도 열람이 가능했다.


3. 조선 왕의 성생활


허준.jpg 조선 왕의 성관계

조선의 명의 허준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남녀가 한번 교합하면 정액 반 홉이 없어진다. 정액을 없애고 보충하지 않으면 몸이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욕정을 참지 않으면 정액이 없어지고, 정액이 없어지면 기운이 약해진다. 기운이 약해지면 병이 오고, 병이 오면 몸이 위태로워진다. 아! 정액은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이로다.” 


“남자의 정력이 미약하면 비록 남녀 교합을 해도 정액이 약해 자궁으로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수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그것은 평상시 욕망과 욕정을 절제하지 않아 정액을 함부로 낭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마땅히 정력과 정액을 보강해야 한다. 아울러 마음을 고요히 하여 욕정의 불길이 함부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정력과 정액을 충실히 하고 때에 맞추어 교합하면 일거에 수태할 수 있다.” 


때문에 조선왕은 쎆쓰도 사정도 지 맘대로 못한다. 건강때문에, 또는 애를 만들어야 해서.


아무튼 조선 왕의 쎆쓰 준비 절차를 알아보자.


1) SP 선정

드라마에서처럼 "오늘은 XX와 함께 밤을 보내고 싶구려.", 는 매우 드물게 허용되는 사례이다.

파트너의 선정은 왕의 시중을 드는 '대전상궁'이 천문과 운세를 판단해 특정일에 어느 여인이 왕과 맞는지 판단해서 정한다.

뭐 문종이 중전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여 함께 침소에 들지 않았다는 기록과 같은 것들도 있으니

왕의 의사가 어느정도는 반영이 되었을거긴 하다.


이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누구와 쎆쓰해야 아들을 낳느냐 는 것이었고,

사실 이 운세풀이는 인간의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대전상궁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커서

권세가들이 대전상궁을 매수해서 운세를 좋게 봐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2) 이부자리 준비

대전상궁의 철저한 지휘아래 생각시(어린 궁녀)들이 덮을것과 벨 것을 두개씩 준비해놓는다.


3) 이부자리의 머리맡엔 물수건을 놓았고, 구한말에는 그 물수건 옆에 호출용 초인종도 놓았다고 한다.

5개의 촛불을 켜고 + 요강과 타구도 놓았다.


타구.jpg 조선 왕의 성관계
(타구는 가래받이 이다...)
 

왕과 잠자리를 하는 모든 여자는 손발톱을 다 아플정도로 바짝 깎아야 했다. 왕의 몸에 상처를 내면 큰일이기 때문.

그리고 복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내시는 산 닭을 상궁은 임시 치료구 바늘을 갖추고 있었다.


모두 준비가 되고 왕과 SP가 입장하면 '숙직상궁'을 제외한 모든 궁녀는 침실 근처에서 퇴장해야 한다.

숙직상궁의 나이대는 60세 이상으로 왕의 심리적 불안감을 감소시켜 주었다고 한다.


창덕궁 대조전을 기준으로 왕의 성관계 과정을 보자.

대조전.png 조선 왕의 성관계

창덕궁의 군왕 침실은 이렇게 여러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경복궁도 같다. 평상시에는 암살을 피하기 위해

랜덤한 위치에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하고, 이렇게 중요한 쎆스하는날에는 숙직상궁들이 들어갔다.


숙직상궁은 왕의 유모인 봉보부인과 제조상궁, 부제조상궁 등으로 구성되었고, 격일제 근무였다.

생각보다 강녕전이나 대조전의 침실이 좁아 두 사람이 좀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정도의 넓이였고, 바로 옆방에서 숙직 상궁들이

왕과 SP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로 가깝다.


숙직상궁들의 임무는 왕을 시중하는것 뿐만 아니라 왕의 쎆쓰를 보좌하는데, 하는 도중에도

이렇게 하십시오, 저렇게 하십시오, 지금 사정하셔야 합니다. 등의 코치를 했다.


왕이 쎆쓰에 너무 심취해 격렬해지면, "옥체를 생각하시어 그만하시옵소서"하고 왕을 막았다 (ㅆㅃ)

신하와 백성들에겐 쾌락 추구가 당연지사였지만 조선의 국왕은 언제나 성인군자여야만 했던 것이다.

(당시 인공수정 기술이 있었으면 조선왕은 정자은행이 되었을 거다.)


지금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

또 길어졌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번글의 참고자료 -

조선왕조의 연산군은 유난히 여색을 밝힌 왕이었다. 수많은 후궁과 채홍사를 파견하여 궐밖 기생들을 안으로 들이기도 하였고,

선왕의 궁녀를 겁탈함은 물론 궁중 잔치에 관료의 부인들을 초청하여 그 중 예쁜 자는 끌어들여 강간하였다. 그 중 연산군의 사랑을 받은 자는

수차례 연산군과 간통하였으며, 그 남편을 승진시켜주었다고 연려실기술에서는 논하고 있다.


연산군의 큰아버지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를 세자를 보호해 달라는 명목으로 끌어들여 강간하기도 하였다. 이에 박씨는 부끄러워 자살하였고,

중종반정을 주도한 사람이 박씨의 남동생 박원종이다.




*출처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best&search_target=member_srl&document_srl=3142875268&search_keyword=1084422820&listStyle=webzine&page=1 

Best Comment

BEST 1 맥짱  
왕권이 강력크해야함...찍소리도 몬하게
2 Comments
맥짱 2020.10.29 09:47  
왕권이 강력크해야함...찍소리도 몬하게

럭키포인트 27,521 개이득

말술소녀밍키 2020.10.30 21:57  
[@맥짱] ㅋㅋ 찍!

럭키포인트 9,378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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