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집이 굉장히 잘살았음 옛날 사진보면 호랑이 가죽부터 카페트에 수족관까지 있었고 생일때마다 롯데리아였나 몇시간 빌려서 생일파티도 했는데 IMF때 아버지 사업 부도나고 공장도 닫고 어디 직장생활 해보신분이 아니라 또 사업을 하셨고 중학교때까진 그래도 살꺼 다 사면서 넉넉하진 않아도 모자람 없이 살았는데 고등학교 3학년때 또 사업 미수금때문에 사채까지 끌어다쓰셨음. 못받은 돈이 5억5천인데 노동부에선 계속 연락오지 사채까지 끌어다가 겨우 다 막으셨는데 난 몰랐음.
공부도 못하는 자식 공부하는데 신경쓰이게 하지말라고 암튼 그렇게 인서울 중위권 대학 들어갔음.
기숙사 생활하면서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했을 때 였는데 주말에 집에가니 집이 냉골임 온수도 안나옴 가스도 끊겨서 버너로 물데워서 씻고계셨음..
가기전까지도 몰랐던게 반찬 챙겨주러 오실때마다 5만원씩 용돈도 주시고 일절 그런 내색을 안하셨음.
그뒤로 진짜 독하게 살았다..지금은 인테리어 개인사업하는데 고딩때 그렇게 힘들어지고 전세에서 월세로 지금까지 월세사시는데 내 목표가 2년내로 지방에 두분이 걱정없이 남은 여생 보내실 수 있게 조그만 집이라도 지어드리는거임.
주택 부지는 화천쪽에 재작년에 3천에 좀 싸게 구입했음.
근데 나도 사업하면서 돈이 많이들어가서 건축은 내년이나 내후년쯤 지을 예정임.
진짜 이쪽 일이 정말 그지같고 힘들고 매일매일 때려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버지 평생 개고생하시고 취미생활 일절없이 어떻게든 아들내미 하나있는거 남부럽지 않게 키우실려고 밖에나가서 자세한건 모르지만 자존심도 다 굽히고 굽신굽신 사셨을 생각하면서 매일매일 때려치고싶을때마다 마음 다잡는중.
내가 생각하는 기준 하위 10% 와부모 가정에서 자랐는데 글쓴이는 도시인근에서 자랐고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상대적 박탈감이 글쓴이보단 적긴 한데
나는 학창시절 항상 돈돈 거려서 공부대신 알바해서 가끔씩 친구들 먹을거 사주면 나도 모르게 생색내고 반애들 대부분 학원 가는거 나도 다니고 싶어서 학원 세달 다녀보고.. 엄마가 안다니면 안되겠냐고 하고 공부도 생각만큼 안되서 그만 다니고 집에는 여름에 항상 곰팡이 피고 겨울에는 옷 여러개
껴입고 자고 입에서는 입김 나오는 집에서 살았는데
베이컨이 한말 처럼 돈은 최상의 노예이고 최악의 주인이다라는 말에서 돈을 최악의 주인 같이 보았었음 돈의 노예가 된거지..
23살때 정신차리고자 외국나와서 현재 일본와이 프 만나서 와이프따라서 여러나라 음식도 먹어보고 식탁매너도 배우고 삶도 많이 바뀌고 있음
배운게 없어서 투잡뛰면서 열심히 살려고 하고 교육은 와이프가 할 예정이라
아마 내 자식은 나같은 삶은 안살거 같은 기대감과 그 가정을 상상속에 그리면 앞으로도 날 있게 해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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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공짜로? 책은 무슨 돈으로 사고? 밥은 무슨 돈으로 먹고? 시험은 무슨 돈으로 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