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에 기록된 태종 이방원의 착함을 인증하는 썰들..
불량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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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5 09:24
보통 형제,정적 뚝배기 깨는 냉혈한 이미지로 많이들 생각하는데
자식들에게 하는거나 주변사람들에게 하는거 보면 은근히 인간적임...
1.
태종 17권,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4월 18일(경인) 2번째기사
시골사람인 손귀생과 일행1명이 창덕궁 구경을 왔다가 길을 잃어서 광연루까지 들어갑니다
그러다 딱 잡혀서 끌려 왔죠...
순금사에서는 임금이 계신 곳까지 무단히 들어왔으니 곤장 80대를 때려야한다고 청했지만
태종은 쿨하게
태종 : 야~ 촌사람이 몰라서 그런걸 가지고 무슨 곤장 80대를 때리냐? 그냥 보내줘
걔들이 들어오고싶어서 들어왔겠냐? 촌놈이 그냥 길잃은거 가지고 이게 무슨 소란이야?
라면서 그냥 석방해 줬습니다..
이런적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어느 관리가 촌에 살던 친구를 데려다 숙직하면서 구경시켜준다는게
그만 그 친구가 궁궐에서 길을 잃어서 왕의 침전(침실)까지 들어갔던거죠..
궁녀들이 그 사람을 보고 놀라서 왕의 침전까지 어떻게 들어왔냐고 꾸짓자 그 사람은 당황해서
"아니...지금 나가려는데 길을 몰라서.."
라고 대답했고 밖이 시끄럽자 나와본 태종은 그걸 듣고
태종 : 이러다 이 얘 잡히면 처벌받을지도 모르니까 얼른 밖으로 안내해줘라.
그리고 후에 괜히 이 일이 불거질지도 모르니까 오늘 있었던 일은 다 없었던 일로 하는거다?
라면서 보내줬던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관은 왕이 없었던 일로 하랬는데 끝까지 기록한게 ㄹㅈㄷ....
2.
태종 18권,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10월 27일(을축) 3번째기사
태종 19권, 10년(1410 경인 / 명 영락(永樂) 8년) 1월 22일(기축) 3번째기사
정종의 측실인 경의궁주 유씨의 아들 불노가 한양에 올라와 정종의 아들이라고 떠들고 다니다가 잡힙니다.
경의궁주 유씨는 원래 고려말 반복해의 측실이었는데 그가 최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멸족당하자
이후 정종이 되는 방과와 재혼하여 측실이 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정종은 결혼하고 10개월도 안된 상태에서 불노가 태어났으므로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반복해의 자식이라고 선언한 상태였죠
그런데도 자신이 정종의 아들이라고 떠들다 공주로 쫓겨갔는데 다시 올라와서 똑같은 짓을 했던 겁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태종의 정통성을 위협할수도 있으니 불노를 처벌하라고 난리가 납니다..
하지만 태종은...
태종 : 불노 그 자식은 왜 도망을 안가는 거야..
도망가서 조용히 살면 내가 찾지도 않고 모른척 해줄텐데..
그러면서 처벌을 안하고 그냥 다시 공주로 쫓아냈습니다..
이후 민무구,민무질, 조박등에게 휘둘려 원자를 사칭했다가 잡힙니다
신하들은 이제 진짜 안된다고 이번엔 진짜 역적의 무리와 연루됐으니 죽여야된다고 계속해서 청하죠
하지만..
태종: 그 얘가 뭘 알겠니? 그냥 이용당한거야..
더 이상 이야기 하지마 그얘가 무죄인건 내가 더 잘알아!
그러면서 다시 풀어줍니다...
사실 불노가 실제 정종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정종도 부정은 했지만 "애매하다"라는 수준이었죠
정종도 불노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하면
불노는 목숨을 보장할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태종입장에서도 원래대로라면 자신대신 세자자리에 앉아야 하는 인물이니
정통성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었지만...
그냥 그렇게 봐줬습니다...
왜그랬을까요?
형의 친아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3.
태종 19권, 10년(1410 경인 / 명 영락(永樂) 8년) 1월 22일(기축) 3번째기사
태종 26권, 13년 (1413 / 명 영락(永樂) 11년) 12월 1일(병오) 2번째기사
태종: 왕씨의 자손을 어린아이까지 다 죽여버렸으니..그게 정말 후회가 돼..
내가 그걸 말렸어야 했는데...
이후 몇몇사람의 도움으로 왕씨라는것을 숨긴체 살아온 왕거을오미가 잡히자 신하들은 죽여야 된다고 청했지만
태종: 왕씨는 신고하라는 법을 어기긴 했으니 처벌은 해야겠지만 참형은 너무하잖아
일단 죄는 두단계 낮추도록해라
그리고 왕씨도 신고만 하면 해는 끼치지 말도록 했습니다..
4.
태종 26권, 13년(1413 계사 / 명 영락(永樂) 11년) 7월 17일(갑오) 1번째기사
그 전해 여름 궁궐에서 일하는 노비 무작지의 어머니가
병에 걸려서 병을 낫고자 옷을 다 내다가 제사를 지내는 통에
집에 옷이 없어서 겨울철을 힘들게 보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걸 불쌍히 여긴 태종은 직접 궁궐을 뒤져서 포 10필을 찾아서 무작지에게 들려 보냈습니다만...
중전에게 딱걸렸습니다..
결국 무작지는 포10필을 다 뺏기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그치지 않고 계속 울자...
태종은 아예 포 300필을 하사해 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준 건 뺏을수 있을지 몰라도 왕이 하사한건 중전이라도 못뺏으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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