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삼성의 또다른 천재 개발자이자 경영자 이야기 -2-
지난이야기: 임형규는 이건희의 명으로 미국으로 떠나게된다.
임형규: 지금부터 4년간 착실히 공부하겠습니다. 전자공학 박사 자리 딱 준비해놓으쇼.
임형규는 삼성의 지원아래 플로리다 대학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하게된다.
이때 전편에서 말한것 처럼 '국비유학 제도'가 아닌 '삼성 지역인재'(훗날 2002년 삼성장학회)로 지원받아 간 것이어서, 일단 본사에서는 삼성전자 기술개빌실 '과장대우'로 이력에 남게된다.
즉 삼성전자에서 과장급 대우 받으면서, 공부만 하는 자리였다.
이건희: 이것보시오. 삼성전자 미국법인.
이건희: 미국 대학교로 연수보낸 우리 직원들 잘 하고 있는지 지금 당장 보고하시오.
삼성전자 미국법인: 아 네....많은 이들이 잘 하고 있습니다.
특히 임형규 과장말입니다.
유학 1년 차에 논문 하나 작성했다고 합니다.
이후 임형규는 박사학위 과정에서 3년동안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국제조직 IEEE(전자,전기 기술자협회)에 논문 7편을 개재한다.
임형규: 휘유~ 뜻깊은 시간이었다.
임형규는 1984년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이건희의 전갈이 온다.
이건희: 돌아올 필요 없소. 연구원 대우 해 줄테니 그냥 미국에서 계속 연구하시오.
이건희: 하시오.
이건희는 그렇게 배운 삼성 인재들에게 '돌아올 필요 없다. 그냥 거기서 연구해라.' 라고 선언했다.
그 이유는 삼성이 미국에서 반도체 연구소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일손이 부족하니 가서 일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임형규는 실리콘밸리 삼성 연구소로 간다.
삼성은 캘리포니아 주에 반도체 연구소를 만든다.
위치는 산타클라라 서니베일이란 곳이었는데, 1세대 삼성반도체 연구원들은 이곳과 국내의 기흥반도체사업부로 양분했다.
이윤우(삼성전자 반도체개발 이사): 국내 일은 걱정하지 마시죠. 내가 있으니...
당시 미국에서 연구팀이 만들어질때, 국내에서도 83년 기흥 반도체 캠퍼스가 만들어지고, 임형규의 선배(서울대 전자공학과 66학번) 이윤우 이사가 이건희와 같이 반도체 연구를 하고 있었다.
임형규: 흠.... 잘 되야 될텐데?
임형규는 여기서 16kb Rom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이때의 연구소에는 미국 기술자 50명, 오퍼레이터 150명에 삼성전자 메모리연구원 10명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그 10명은 삼성전자 내에서는 핵심연구진으로 지정해서 미국 현지 파견으로 기술습득을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모인 멤버들이....
아이고, 후배님 안녕하십니까? IBM에서 삼성 D램 사업부로 온 진대제라고 합니다.
진대제가 D램 사업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임형규: 아~ 선배님!
D램 사업부 연구원으로 오셨군요. 전 비메모리 ROm쪽입니다. 여튼 잘 부탁드립니다.
(둘은 1살 터울로 진대제가 2년 서울대 선배였다.)
그리고 이 연구소에 85년 괴물 신인이 한 명 오게 된다.
권오현: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권오현이라고 합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71학번에 스탠퍼드대학교 전기공학과 박사로 왔습니다.
임형규: 70학번 선배 진대제.... 전자가 아니라 전기공학이지만 71학번 선배 권오현이라....
이렇게 권오현-진대제-임형규가 85년에 모여서 삼성전자 미국 법인 연구소에서 각자의 개발을 시작한다.
삼성전자 미국법인: 캬~ 인재풀 한 번 든든하고~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