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삼성의 또다른 천재 개발자이자 경영자 이야기 -1-
이번에 소개할 경영자는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이야기임.
임형규: 과학....나는 과학이 좋다.
임형규는 거제 출신으로 어린시절 뛰어난 머리로 부산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경남고에 입학한 임형규는 당대에 최우수 학생으로 유명했다고 한다.(경남고 1년 선배가 현 대통령인 그분이다...)
그리고 수능을 쳤고 엄청난 성적을 찍었다.
서울대: 이야.... 엄청난 성적이네? ㅎㅎㅎ 우리 학교 오기 쌉가능이네요. 임형규 학생?
임형규: 아, 서울대에서 가장 점수가 높은 학과가 어디요?
서울대: 으음? 우리 학교에서 가장 점수가 높은 과면..... 전자공학과, 의학과, 법학과 등등....
임형규: 오케이, 그럼 전자공학과.
임형규는 성적에 맞춰서 학교를 가겠다고 했는데, 당시 수능 최고점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였다.(70년대 서울대 공대>서울대 의대 시절)
당시 본인의 썰에 의하면 편하게 약사나 하려고 서울대 화공과를 가려고 했는데, 입시담당 교사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가도 될 성적이라는 말에 거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임형규: 흐으음.... 이거 꽤나 재밌는 공부인데?
원래 물리학을 과목중에서 좋아했다고 하는 임형규는 전자공학에서 흥미를 느꼈고, 76년 졸업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반이 된다.
그때 졸업을 앞두고 한 가지 회사를 알아본다.
한국반도체: ㅎㅎㅎ 안녕하세요? 서울대 엘리트들?
임형규:?
한국반도체: 다들 우리 회사 오시죠? 오는 순간 엄청 빵빵하게 지원해드림.
모든거 다 해드림!!!
76년 국내 유일의 반도체 기업인 한국반도체에서 단 2명만 뽑는 채용공고가 나왔다.
임형규: 반도체? 흐음..... 다해드린다는건 뭐죠?
한국반도체: ㅎㅎㅎ 입사하시는 순간 저희가 산학제로 공대 석,박사까지 무료로 지원해드리고요, 군 면제 혜택이 있고,연구실 실험장비까지 전부 저희 돈으로 제공해 드립니다.
그리고 미국 유학까지 가능해요.
임형규: 괜찮네? 지원해볼까?
임형규는 한국반도체에 지원했고, 당대의 천재공학자들중 2명만 뽑는 자리에 합격한다.
그래서 서울대 내에서만 전자과 화학공학과 기계공학과.....약칭 전화기라 불리는 공대생 140명이 2명을 뽑는 자리에 지원했다고 한다.
70:1의 경쟁률인데, 그 70이 전부 서울대 전화기 출신들...
참고로 한국 반도체가 저렇게까지 인재양성을 위해 왜 날뛰었나면....
이건희: 으흠!
당시 삼성의 이건희가 동양방송(TBC) 이사 시절에 사재로 지분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훗날 이 한국반도체 일원들은 삼성반도체의 1기로 역사에 남는다.
임형규: 어이구..... 삼성이 대주주인 회사인가?
임형규는 합격 이후 과기원(현 카이스트)에 랩실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카이스트에서 공학 석사를 따게된다,
이건희: 임 연구원. 내가 지금부터 모든 것을 다 지원하겠소.
그리고 이건희의 지원아래 석사를 마치고 돌아온 임형규는 78년 한국 반도체에 입사한다.
그리고 회사에서 반도체를 만지게 되었다.
한국반도체: (미국에서 가져온 반도체 복제품)
임형규: 흐으음.....이거 너무 단가가.....
당시 70년대는 오일쇼크로 인해 한국 경제도 휘청거릴 때였다.
그런데, 한국반도체의 제품은 미국의 반도체를 그대로 복사해서 가져오다 보니 동일 스펙이라도 동일 가격이었다.
거기서 임형규는 반도체 팀에서 한 가지 발명을 해낸다.
임형규: 칩이 같은 가격이면..... 좀더 싸게 처음부터 만들수 있지 않나요?
임형규가 참여한 팀은 손대는 것 마다 국내 최초였다.
그중에서도 과기원 졸업 이후 임형규의 성과는 엄청났는데, 당시 7.5um의 칩 최소선폭을 4um으로 만들어내서 엄청난 원가 절감을 이뤄냈다.
임형규: 핫- 하! 반도체라는 거 별거 아니구만!
첫 개발을 성공한 임형규는 이렇게 쭉 삼성에서 개발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이건희가 나섰다.
임형규: 네, 회장님.
이건희: 지금 하는 거 전부 다 정리하시오. 그리고 미국으로 가시오.
이건희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삼성반도체로 이름을 고친 뒤로 임형규를 미국으로 보낸다.
76년 대학 졸업후 입사한 뒤로 바로 과기원(카이스트) 산학제로 다녀온 뒤로 반도체 원가절감 한번 개발하고, 바로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삼성이 이렇게 유학생을 자체적으로 보낸 이유는 단순했는데, 이건희의 지론인 '우수인재는 국비로 한국에서 보내면 미국에서 교육보내 성공하면 거기로 가지 안 돌아온다.'라는 마인드였다. 그래서 이건희는 우수인재 유출방지를 위해 회사 자체에서 유학생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삼성 유학생' 이었다.(그리고 이건희의 마인드에 반대되게, 해외 유학을 국가나 삼성에서 지원받고 돌아온 당시 4명이 있었는데, 진대제, 권오현,임형규,황창규 네명이었다.)
임형규는 삼성 유학생 1기로 가게된다.
임형규: 휘유....미국행이라....그것도 회삿돈으로 말이지....
그렇게 임형규는 삼성의 지원아래 81년 플로리다 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준비한다.
돌아오는 순간 삼성 소속으로 수석연구원 자리가 보장된 상황이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