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대동법은 사실 율곡이이가 수미법을 제시하면서 선조때부터 시작된 조세계혁임 광해군이 선혜청을 새우면서 경기도를 기점으로 대동법을 시행하고 꽤 반응이 좋았음 그래서 신하들도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시행하자고 하지만 2년만에 대동법이 멈추게됨 그 이유는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가 대동법 이전의 조세법인 조용조의 특혜자들이었기 때문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광해의 미친 궁궐중독때문임 광해군시대대 건축된 궁궐만 5개인가 6개임 역대왕들중에서 한 왕이 집권하는동안 이렇게 많은 궁을 쌓아올린 케이스가 하나도 없음 근데 이 미친왕이 임진왜란 끝나고 나라 틀이 흔들리는데 궁궐을 올리고 싶으니까 대동법을 스스로 반대했음 대동법을 시행하게되면 백성들을 못부리게 되거든 여튼 이 좆같은 궁궐병때문에 경제개박살나고 민심개박살나고 탐관오리 넘치게 되면서 매관매직의 끝판왕을 달리게된 최악의 왕임
[@시계]
중립외교는 이야기가 좀 많이 갈리는데 나는 중립외교가 아닌 이중외교라고 봄
여하튼 광해가 큰 피해입기 싫어서 강홍립한테 투항하라고 한건 사실임
근데 조선에서 파견한 군사의 수가 약 1만3천여명 되는데 첫전투에서 9천명이 죽었음
투항해서 좋은대우를 받았는가? 후금에서 노예생활함
결국 강홍립은 어케되었는가?
정묘재란때 후금 길잡이 역할하면서 내려옴
[@썸퍼]
안그래도 왜란 이후 전쟁의 참혹함을 아는데 그걸 저지 시킨거만 해도 잘했다고 해야하지않나 그냥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거같은데
이미 백성들은 7년인가? 왜란으로 피폐해졌는데 또 전쟁은 막아야하니까 잘했다고 생각함 그 투항에 희생된분들은 안타깝지만..
대동법 이전에 수미법으로 개혁제도가 있었지만 대동법 시행으로 후대 전국적으로 되기까지 기틀을 제대로 정립시킬수있었으니 마냥 깔수는 없지
그리고 광해군 자체가 지지기반이 약해서 휘둘릴수밖에 없지않았나? 지지기반 자체도 대동법 이전 조세법에 특혜자들이라는데 광해군이 혼자 어떡해,,
그래서 권위 세우려고 오바떨다가 궁궐 축조하고 망길 걷는거였지
첫 스타트도 중요하다 생각해서 난 나쁘지않다고 생각함
궁궐 축조는 말 그대로 광해군 망하는데 일조한 정책이고
가면갈수록 막장으로 치닫긴 했지
왜란 중이랑 이후에 민심 안정 시키는데 광해군이 큰 역할 했다고 하고
광해군은 해석에 따라 시대에따라 평이 달라지는 군주라서 뭐가 정답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봄
나도 광해군은 좋은 군주는 아니지만 꽤 괜찮았다고는 생각함
뒤에가서 어두운편이 많아서 폐위된건 마땅함
님 말 듣고 정정할게 왕 되기전부터 왕 초중반?까지는 꽤 괜찮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