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한한테 죽고싶냐고 협박한 양반의 뒷배경
김종원(金宗元)
1940년에 일본 육군 부사관으로 자원 입대. 뉴기니와 필리핀 등지에서 연합군과 싸움.
여기서 남들 총맞아 죽고 굶어 죽는 가운데, 혼자 시체의 살을 뜯어 먹어가며 악착같이 살아남아 생환함.
(특히 뉴기니 전선은 투입된 조선출신 일본군 4410명들 중 4076명이 사망할 정도로 처참했음.)
1945년 해방 후 경찰에 들어갔으나 부하들을 너무 패대는 바람에 수차례 징계를 받았지만 1946년 국방 경비대가 창설 되자 빽으로 입대하여 최고 사령관까지 지냄 .
1948년 여순 사건때는 부역자 색출을 명목으로 직접 일본도로 민간인들의 목을 베고, 베다 지치면 권총이나 소총으로 죽임. 그밖에 빨치산이 많이 활동하던 지역을 돌며 양민을 학살했는데 구덩이를 파놓고 직접 총을 난사하거나 소개되서 피난온 수백여명의 여자와 아이들을 빨치산으로 몰아 살해함.
하도 많이 죽여대니까 이것을 조사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진상 조사를 나왔음. 그러자 자신 잘못이 들통날까봐 부하들을 빨치산으로 위장 시켜 이 조사단을 습격하게 함. 하지만 이 짓한게 들켜 3년형을 받음.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연대장으로 복귀. 이때도 참모총장이었던 이종찬이 '이 새끼 ㅂ신'이라면서 결사반대했는데 이승만이 이어코 사면해줌.
복귀 직후 부대를 이끌고 방어전에 나섰으나 부하들에게 일본군식 반자이 돌격을 강요 한다거나 중과부적으로 후퇴한 부하들을 직접 총살 한다거나, 지나가는데 경례를 하지 않았다고 구타를 한다거나 수많은 악행을 저지름. (한번은 작전회의 때 어떤 초급장교가 그의 계획을 조목조목 지적하자 띠꺼워서 항명 죄로 총살 하려함. 다행히도 이 초급장교가 죽기 싫어서 똑같이 권총을 겨누며 대치하자 주변에서 만류하는 통에 목숨을 건짐.)
당시 그를 보좌하던 수많은 미군 군사고문관들도 하나 같이 '성격이 포악하고, 전술에 무지했으며 부하들에게도 인기가 없다'고 증언함 이러면서도 매일마다 신문을 샅샅히 뒤지며 신문기자들이 자신을 헐뜯는 기사를 쓰면 찾아가서 기자를 두들겨 패고 사무실을 박살 내놓음.
하도 ㅂ신짓을 많이해서 1950년 7월 보직 해임 당했으나 빽으로 인해 대령으로 승진함. 전후에는 다시 경찰 국장을 맡았으나 역시 부하들을 패는등 성질 머리는 여전했고 일자무식 티를 많이 냄.
대표적인 일화로, 회의 중에 '인플레(인플레이션)로 인해 국민들이 힘들어 한다'라는 말이 나오자 '당장 가서 '인플레'라는 놈을 잡아오라며 명령을 내림'
1957년에는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때문에 치안국장의 신분으로 법정에 섰는데, 법관들을 아주 개무시하면서 말을 끊어댐.
나중에는 재판장한테 "댁은 일개 판사지만 나는 헌병사령관 했던 몸이다."라고 각도기 다 부숴가며 샤우팅 시전.
결국 퇴정명령 내려졌으나 안 나가겠다고 난동부림. 그 직후 법정 모독죄로 검찰한테 고소 당함. 이것 때문에 치안국장의 자리에서도 내려오게 됨.
결국 1961년 4.19로 인해 쉴드 쳐줄 빽들이 다 사라지면서 법의 심판을 받아서 4년형 받음.
곧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감옥에서 걸린 병 때문에 결국 사망.
(김두한한테 총살 운운하며 권총 들이댄건 허구가 아니라 그저 실제성격을 고증한 것 뿐었음.)
Best Comment
걍 깡패 쓰레기로 밖에 안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