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더블로가]
저희 할머니는 표현이 서투십니다.
애정을 느낄만한 행동이나 말투가 없으셨지요.
덜컥 할머니 손에 맡겨져 초등학교입학때부터, 돌아가시던 중학교3학년때까지 함께 살았고 할머니에 대해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지금 제가 아들낳아 살아보니 할머니 사랑이 오래된 묵은지처럼 진하게 제 삶에 남아있었네요.
생각해보니 모진소리 한번 하신적없고 아침마다 정겹게 학교가야지~ 하고 깨워주시고 시장가시면 제가 좋아하는 인절미를 꼭 사오셨던게 할머니는 최선을 다해 저에게 애정을 주셨었네요. 그때의 어린 저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것같습니다. 그런게 조부모의 사랑인가봅니다. 조건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네요. 거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저는 나중에 하늘나라 가게되면 가장 먼저 할머니품에 달려가 안길겁니다...
부모가 돼보면 생각처럼 쉽게 살아지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천사가 있을까 싶고, 가끔은 이런 악마가 있을까 싶다.
자식을 사랑하다보면 내 부모의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난 이렇게 사랑받지 못했었구나 느끼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생각들을 마음 한켠에 넣어두고 생업을 살아야하니 가끔은 벅차게 기쁘기도하고, 가끔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화를 낸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고 아이에게 미안하고 내 부모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내가 더 사랑받고 자랐다면 나는 좀 더 나은 인간 나은 사람이 되었을텐데 라며 쓸데없는 망상도 한다.
내옆에 좀 더 있어줬다면 좋았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화면은 좀 작지만 터치도 되고
이곳 저곳 이동도 되서 스탠바이미가 좋아보이던데 2세대 나온걸 사는게 좋을까요? 성능차이 안크면 1세대가 싸긴하던데 쓰고있는 사람 댓글 좀~
나 정말 물질적인거는 다 누리고 살았고 지금도 물질적인 충족은 충분한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못받음. 돈은 많이 버셨는데 늘 스트레스 받은 모습에 화내는 모습만.. 나는 안그럴려고 하는데 돈 많이 버는 일이 스트레스가 많을 수 밖에 없다는걸 깨달으니 그게 참힘들다. 내자식에는 그런 모습 보이기 싫은데
우리 부모님한테 참 감사한 것들이 많지만 머리가 크고나서 제일 감사하게 느끼는게 가정분위기인 것 같음
나는 진짜 진심으로 초등학생때 부부싸움이라는 걸 친구한테 처음 들어봄
엄마랑 아빠가 싸운다는 것 자체를 이해를 못했을정도..물론 엄청나게 노력하셨겠지만 덕분에 너무 화목하고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음
저는 다독거려주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두 분이서 저런 짜증을 내셨고 나중에는 누나의 화풀이 상대마저 저였네요.
제 버팀목이셨던 할머니 돌아가신 뒤로는 더욱 격렬해지셨었고 사촌집이 그나마 마지막 도피처였습니다. 가끔 주말에 도망가듯 다녀오는 게 전부였네요.
대학교는 또 도망가듯 이모집에 얹혀살며 다녔고 군대는 흔히아는 의가사제대. 한창 연예인군비리 때문에 면제 받을 만성질환을 가지고도 신체등급 1급으로 갔습니다. 의가사제대의 절차 중 하나인 의무심사에 필요한 서류를 부모님께 말씀드렸던게 또 제 가슴에 할퀴는 소리를 들어야 했었습니다. 갑자기 다시 나온 사회에 적응하던 무렵 남은 대학생활을 마치기 위해 이번엔 친구를 의지해서 또 도망치듯 친구자취방에서 살았습니다. 이모부와 이모에겐 그래도 비밀스레 말씀은 드렸으나 집에서 오는 연락은 더이상 받지 않았습니다. 짧게 잡으면 17년정도 정말 치가 떨리는 시절이었습니다.
가정사 외에도 친한 친구도 고등학생 때 죽고, 그 후 1년도 안되서 많은 사랑을 주셨던 할머니도 돌아가셨어서 한 동안 나사 하나 빠진거 마냥 매일 멍하게 지냈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이 나이도 많이 드셔서 그런지 정말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누나도 결혼할 쯤엔 다정하게 대해주는데 몇년이 지나도 적응이 안되네요. 인자한 아버지와 어머니, 다정한 누나. 제가 철이 아직 없는 건지 "그 땐 힘들어서 그랬다"라는 말로는 수긍하기가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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