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존맛]
1882년(고종 19) 7월 19일(음력 6월 5일)은 13개월이나 체불되었던 무어영 소속의 구 훈련도감 군인들이 봉급을 받는 날이었다. 이들은 현재 숭례문 근처의 선혜청(宣惠廳) 창고인 도봉소(都奉所)로 밀려들었다. 그런데 병졸들이 받은 쌀에는 쌀겨와 모래가 섞여있던지 물에 잠겨 썩어 있었고 그나마 정량에 미치지 못하였다. 김춘영(金春永), 유복만(柳卜萬), 정의길(鄭義吉) 강명준은 이를 보고 격분하여 창고지기를 구타하였다. 당시 녹봉미 책임자였던 선혜청 당상 민겸호(閔謙鎬)는 진상을 조사하고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주동자 체포를 명령하고 이들을 잡아가두는 강압적 조치로 일관하였다. 7월 22일 주동자 4인을 체포하여 동별영(현재 종로 3가 인의동)에 구금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하고 그 중 2인을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