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미국이 계획한 조선 전복 계획
60년을 이어온 굳건한 동맹인 한미동맹!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며
한국 현대사를 논할 때 미국을 빼먹을 수 없을 정도의 입지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이 조선을 전복하려 했던 시도가 있는데
그게 일본 제국 치하의 조선이었다는 점이다.
대충 일본의 귓빵망이로 미국은 2차 대전이라는 빅 이벤트에 참가한다
먼저 ㄹㅇ 좆망 직전인 유럽 전선에 직접 강림해서
사상은 좀 거시기 하지만 싸우는 건 잘하는 무식한 슬라브 빨갱이들과
집은 나갔지만 그래도 피는 이어진 앵글로 색슨 아버지에게 쇼미 더 머니를 시전
1945년 4월, 드디어 독일을 4등분으로 오체분시하고 유럽전선을 정리한다!
그리고 곧바로 자기를 후려친 좆본에게 총전력을 투사하기로 결정하는데
문제는 일본군이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에서
그야말로 총옥쇄, 사는 것을 포기한 채 덤벼들었고
결국 미군이 이 두 섬을 점령하긴 했어도
예상 이상의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문제는 결국 전쟁을 끝내려면 일본 본토에 깃발을 꽂아야 하는데
오키나와에서 5만명의 피해가 났던 걸 생각하면
일본 본토 점령에 몇십만명의 사상자가 날 것은 자명했다
솔직히 이대로 일본에 꼴박하면
사실상 재선 안하겠다는 소리랑 같은 거 아시죠?
그럴 줄 알고 저희 전략 사무국이 기가 막힌 작전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옆에 상당한 크기의 식민지가 존재하니
바로 일본령 조선입니다!
이 조선을 폴란드처럼 해방시킨다면
중국에 있는 일본군의 본토 지원을 막을 수 있고
적어도 그들을 이 조그만 반도에 잡아둘 수 있습니다
한 작전을 세우니 바로 냅코 프로젝트이다
일본령 조선에 고난도 훈련을 받은 최정예 특수요원들을 침투시키고
거점 확보 및 지하조직 구성, 무장 저항 운동까지 하여
중국에 있는 막대한 일본군의 본토 지원 차단과
조선에서 생산된 보급을 원천 봉쇄 한다는 것이었다.
작전 책임자 칼 아이플러 대령은 요원 선발 조건으로
1. 영어, 일본어, 한국어 등 3개 국어 능통자
2. 뛰어난 체력
3. 지략과 전술이 뛰어난 자
4. 독립정신과 애국심이 투철한 자
장석윤에게 해당 조건에 맞는 한국인들을 찾아보라고 지시한다.
이에 장석윤은 직접 위스콘신 일본군 포로 수용소로 위장 잠입을 하는데
스스로 필리핀에서 잡힌 포로라고 속이면서 수용소로 들어간다ㄷㄷ
그리고 40일 간 100명의 한국인 포로를 관찰 한 뒤
3명의 포로를 선발하는데 성공한다!
여기에 버마 전선에서 탈출한 조선인 학병 3명
대학을 나온 엘리트 재미한인들
그리고 유한양행의 창립자이자
미국에서 독립 운동을 후원하고 참여하던 유일한도 뽑힌다!
이들은 한국독립을 위한 투쟁에 기꺼이 목숨을 던지겠다는
배신 가능성이 없는 애국심을 가진 투사들이었다!
그 중 반일 감정이 높은 3곳을 침투지역으로 정한다.
그리고 이 세 지역에서 총 3개의 미션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데
-조선총독부가 위치한 서울로 침투
-조선의 경제상황과 일본군 주둔 위치 파악
-조선의 경제상황과 일본군 주둔 위치 파악
-서울 출신 요원과 일본 경찰에 노출되지 않은 요원 선발
-서울에 있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접선해 지하조직 구성
2. 차로 미션
-진남포를 통해 평양 침투
-평양은 가장 반일 감정이 높기에, 이곳에서 무장 조직 구성
-훈련성적이 가장 뛰어난 팀 투입 + 아이플러 대령이 가장 신뢰하는 팀이 투입
-여기에 평양 출신인 유일한도 포함!
3. 무로 미션
-황해도의 섬 하나를 탈취 작전 전진기지로 활용
-요원들이 잠수함을 타고 들어가 섬 주민 설득
OSS는 침투방법, 은닉방법, 무선통신 접선방법, 살인방법, 사보타지 방법을 가르치며
사실상 현대적 스파이 기법을 가르쳤고
요원들을 이름 대신 암호명 A,B,C,D...로 불렸다
참고로 유일한 박사는 암호명 A였고
OSS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굇수였다ㄷㄷ
얼추 스파이 교육이 끝나자, 아이플러 대령은 이들을
LA의 산타 카타리나 섬의 미군 군사기지로 이동해 군사훈련을 진행한다
여기서 유격, 사격, TNT 폭파, 나침반 사용, 독도법, 공중폭파, 지뢰설치, 자동차 엔진 파손법 등
고강도 교육을 받으며, 이들은 OSS에서도 신뢰하는 정예 특수공작원이 된다
조선 비밀 침투 작전인 냅코 프로젝트는 1945년 8월 18일에 작전 실행이 결정된다.
이들은 잠수함을 타고 조선에 잠입하여
완벽한 위장을 위해 한국 현지 복장, 일제 안경, 일제 삽을 지급받는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마치고, 요원들이 이동하려던 찰나에.....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도 떨어졌고
다죽자이거야!를 외치던 좆본은, 핵 두방으로
8월 15일 무조건 항복선언을 하게 된다
이에 조선은 갑작스러운 광복을 맞게 되었고
미국은 모든 대일 작전을 취소하며
자연스럽게 냅코 프로젝트의 19인 한국인 요원들에게도 해산 명령이 떨어진다
작전이 고작 3일 앞으로 남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포로를 활용하는 건 제네바 협약 위반이었음으로
미국은 19인의 요원 중 일본군 포로 출신 + 버마 탈출 학병을
하와이 포로 수용소에 재수감 시키게 된다
냅코 프로젝트는 1급 기밀로 분류되고
작전 요원들에게 철저한 함구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들은 죽을 때까지 이 사건을 함구했다,
심지어 요원 A였던 유일한도 사후 20년이 지나서야 냅코 프로젝트 요원임이 밝혀질 정도
그렇게 엄격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다가
고령의 나이에 아버지 대신 독립유공자상을 받으며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임을, 비밀유지 때문에 엄격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화해한다고 한다.
유일한의 손녀 유일링도 1991년도가 되서야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사실을 알았다고한다
이들 모두 죽을 때까지 자신이 요원임을 함구했고
현재의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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