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간단하게 알아보는 게임 속 중세 판타지 세계관의 기원

거대한 용이 나타나 불을 뿜어내며 사람들을 위협하고 

기사들은 용을 처단하기 위해 칼을 뽑고 여행을 떠난다. 

마법사들은 화려한 마법으로 달려오는 괴물들을 차례차례로 쓰러뜨려나가고 

해가 지자 여관에서는 많은 이들이 모여서 음유시인의 노래와 함께 맛있는 술을 마시며 하루의 노고를 푼다. 

초승달조차 구름에 가려 어두운 밤, 도둑들과 암살자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고 

마을 외각 물레방앗간에서는 은밀하게 남녀가 거사를 치른다. 

이렇게 통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의 중세 판타지 배경의 게임들의 세계관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시초를 간단히 알아보자 

(개괄적으로 요약한 것이기에 자잘한 요소들은 그냥 넘어가자.)

모든 것의 처음이 된 하나 

북유럽 신화 

▲ 북유럽 신들의 왕 오딘.

북유럽 지방에 살던 노르드인(게르만족)들의 신화이다. 

위그드라실이라는 세상을 이루는 나무에서 살아가는 신들과 기타 잡다한 종족들이 나온다. 

날씨도 더럽게 안 좋은 동네에서 살아서 그럴까 

북유럽 신화의 신들은 절대 죽지 않는 불사의 영역에 있지 않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늙고 또 죽기도 한다. 

게다가 장난도 엄청나게 좋아할뿐더러 싸움과 분노 그리고 배신과 같이 지극히 인간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는 특징의 신들이다.

▲9개의 세상과 세계수 위그드라실.



이 신화에서는 9개의 세계에 사는 각기 다른 종족들이 있는데 

알프(엘프), 거인, 드베르그(드워프)와 같은 현재의 판타지 세계에서 들어볼 수 있는 종족들이 나오며 

또 마블 코믹스의 만화이자 영화인 '토르'로도 잘 알려진 신인 토르와 

전장에서 싸우다 죽은 전사들을 발할라로 이끌어주는 일종의 저승사자인 발키리. 

영어로는 지옥을 뜻하는 단어이자 북유럽 신화에서는 저승과 저승을 관장하는 여신의 이름인 헬. 

등 게임 내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들을 수 있는 언어가 나온 신화이다.






▲난쟁이 안드바리의 금품을 빼앗는 로키. 


북유럽 신화에는 하나의 반지가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안드바리의 반지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안 드바리라는 솜씨 좋은 난쟁이가 만든 반지를 로키라는 신이 뺏어가버린다. 

그래서 화가 난 안드바리는 반지에 저주를 걸게 되는데 그 반지를 손에 넣게 된 일가는 서로 죽이고 결국 모두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저주받은 반지 이야기는 이후에 나온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가 쓴 오페라인 '니벨룽의 반지'의 모티브가 되었고 

(원전은 독일의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이지만 이것 또한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 

또 하나는 영국의 대학교수이자 작가 '존 로널드 루엘 톨킨' (이하 톨킨)의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되었다.





반지의 제왕 

▲실사 영화로 만들어진 가운데 땅 세계관 영화들

판타지 세계관 하면 빠질 수 없는 소설이 바로 톨킨의 반지의 제왕 (1953)이다. 

간단하게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하여 떠난 원정대와 

또 그 반지를 두고 일어나는 모험과 전쟁에 대한이야기이다. 

톨킨이 각 지역의 설화를 자신의 머릿속에서 재창조한 것이 바로 가운데 땅 세계관이다. 

그리고 톨킨이 만들어낸 가운데 땅 이야기들은 최초로 제대로 정립된 판타지 세계관을 보여주는 소설들이었고 현재의 판타지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추악한 외모와 함께 잔혹하기까지 한 오크. 

고귀한 외모와 성품을 가졌지만 사라져가는 종족인 엘프. 

키는 작지만 강인한 호빗.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톨킨만의 개성을 담은 종족들 그리고 마법과 모험의 이야기가 이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과거로부터 쌓아올리는 이야기

북유럽 신화 외에도 많은 것들이 판타지에 영향을 끼쳤다. 

기사 문학

▲'에드먼드 레이턴'의 '기사 서임식'.

중세 봉건 시대의 한 계층을 담당했던 기사가 주인공인 문학이다. 

영웅 서사시에 영향을 받았건 언제 유행했든 간에 역사를 설명하면 길어지니 간단히 정리하자면 

'어? 나쁜 놈들 (ex. 침략자, 용, 마법사 기타 등등)이 나타나서 사회를 위협하니 기사가 모험을 떠나서 사건을 해결한다! (겸사 겸사 연애와 명예)'라는 내용의 당시 유행하던 문학 사조이다. 

그냥 넘어가도 되지만 덧붙여 설명하면 이 기사 문학을 비꼰 것이 바로 소설 '돈 키호테'이다.

애드거 앨런 포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 '구덩이와 진자'에 들어간 삽화.



미국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 

그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현재의 판타지 세계관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나 

특유의 어두우면서도 공포스럽고 또한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은 미국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각종 추리 소설과 SF 소설 등 엄청나게 많은 장르에 영향을 끼쳤고 또 하나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끼친다.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

▲크툴루 신화를 대표하는 가공의 신 '크툴루' 상상화.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같이 이전부터 있었던 신화가 아닌 근대에 와서 새로 만들어진 신화이다. 

미국의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쓴 소설들의 공통적인 세계관이며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에 크게 이바지했다. 

앞서 언급한 포 특유의 기괴하고 암울하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극도로 이끌어 낸 것이 바로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이다. 

감히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거대한 힘이라는 모티브는 수많은 작품들에 차용되었고 현대의 게임에도 영향을 끼친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아몬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디멘시아 현상






펄프 픽션

▲영화 '펄프 픽션'의 포스터. 당시의 펄프 픽션 잡지의 표지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미국이 그동안 쌓아올린 문학적 사상과 별의별 잡다한 소재들이 만들어낸 싸구려 단편 소설들을 말한다. 

판타지는 물론이고 추리, 미스터리, 모험, SF 등등 수많은 장르의 단편 소설들이 펄프 픽션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이 시기 쓰인 소설들은 이후에 만들어질 수많은 게임들의 자양분이 되는데 

특히 톨킨의 이야기와 기사 문학에 영향을 많이 받은 소드 앤 소서리 (검과 마법으로 지 잘난 맛에 독고다이 모험)라는 판타지 장르가 유행하기도 했다.

현대의 중세 판타지 이미지의 완성

던전 앤 드래곤

▲던전 앤 드래곤 (1974) 표지. 

현대 모든 RPG의 시초이자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스테레오 타입의 중세 판타지를 확립한 TRPG 시스템이다. 

톨킨의 가운데 땅 세계관과 이후에 나온 수많은 장르 소설들이 던전 앤 드래곤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펄프 픽션에서 유행하던 소드 앤 소서리 장르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직접적으로 던전 앤 드래곤의 세계관을 사용한 게임들도 많으며

▲발더스 게이트 (1998)

▲플레인 스케이프 : 토먼트 (1999)

▲네버윈터 나이츠 (2002) 

또한 그렇지 않더라도 수많은 게임들과 판타지 세계관을 쓰는 작품들이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던전 앤 드래곤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새로운 변화를 하게 된다.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 그리고 로도스도 전기

▲드래곤 퀘스트 (1986)

▲파이널 판타지 (1987) 

닌텐도의 패미컴으로 출시된 두 개의 판타지 게임은 악을 물리치기 위해 떠나는 모험이라는 단순한 플루트를 가진 판타지 게임이었지만 

이후 일본 게임계의 판도를 뒤흔들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한 게임 프랜차이즈로 성장한다. 

두 게임들이 보여준 모험의 이야기는 이후에 나온 JRPG의 기초가 된다.

▲로도스도 전기 (1988) 표지 

일본 최초의 TRPG 시스템인 소드 월드 RPG의 시초이기도 하며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큰 영향을 끼친 판타지 소설이다. 

던전 앤 드래곤에서 어느 정도 확립된 중세 판타지 세계관이 일본에 오자 로도스도 전기가 되었고 일본 내에서 로도스도 전기가 크게 유행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미디어에서 일본식 중세 판타지 세계관이 어느정도 확립된다. 

세상을 위협하는 악 

그것을 막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 

매력적인 여캐 (특히 엘프의 이미지는 전적으로 로도스도 전기 탓) 

이 세 가지 요소는 거의 필수요소급이 되어 이후에 나오는 수많은 작품에 차용된다.

마치며 

높이 검을 들며 괴물을 향해 달려나가는 전사의 뒷모습. 

이렇게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 하나도 사실은 그렇게 쉽사리 생겨난 것이 아니다. 

알고 보면 그것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정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