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어린아이를 활용한 한국의 주술 이야기.txt
조선 후기의 성호 이익 선생이 지은 '성호사설 제5권 만물문 염매고독 편'에 염매는 어린아이를 활용한 한국의 전통 주술이었으나 저주의 방식이 잔인하여 그 명맥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이익 선생이 서술한 '염매'에 대한 "우리나라의 괴이한 짓"을 번역문으로 알아보자.
1. 본문
우리나라에는 염매(魘魅)라는 괴이한 짓이 있는데, 이는 나쁜 행동을 하는 자가 처음 만들어낸 것이다. 남의 집 어린애를 도둑해다가 고의적으로 굶기면서 겨우 죽지 않을 정도로 먹인다. 때로 맛있는 음식만을 조금씩 주어 먹이는바, 그 아이는 살이 쏙 빠지고 바짝 말라서 거의 죽게 될 정도에 이른다. 이러므로 먹을 것만 보면 빨리 끌어당겨서 먹으려고 한다. 이렇게 만든 다음에는, 죽통(竹筒)에다 좋은 반찬을 넣어 놓고 아이를 꾀어서 대통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아이는 그 좋은 반찬을 보고 배불리 먹을 생각으로 발버둥치면서 죽통을 뚫고 들어가려 한다.
이럴 때에 날카로운 칼로 아이를 번개처럼 빨리 찔러 죽인다. 그래서 아이의 정혼(精魂)이 죽통 속에 뛰어든 후에는, 죽통 주둥이를 꼭 막아 들어간 정혼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그 죽통을 가지고 호부(豪富)한 집들을 찾아 다니면서, 좋은 음식으로 아이의 귀신을 유인하여 여러 사람에게 병이 생기도록 한다. 오직 이 아이의 귀신이 침범함에 따라 모두 머리도 앓고 배도 앓는다. 그 모든 병자들이 낫게 해달라고 요구한 다음에는, 아이의 귀신을 유인하여 앓는 머리와 배를 낫도록 만들어 주는데, 그 댓가로 받은 돈과 곡식은 드디어 자기의 이득으로 만든다.
이것을 세속에서 염매라고 하는데 국가에서 엄격히 징계, 고독(蠱毒)의 죄와 동등하게 중벌을 가할 뿐더러, 무릇 사령(赦令)도 그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근자엔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겠으니, 이는 아마 법이 준엄하기 때문이리라.
상고컨대, “진(陳) 나라 지덕(至德) 2년에 장려화(張麗華)가 염매의 술법을 가져 궁중(宮中)에다 음사(淫祠)를 설치하고 여무당[女巫]을 불러 모아서 북을 두들기고 춤을 추게 했다.” 하고, 그 주에, ‘아양떠는 방법이다[媚道].’ 하였으니, 그도 아마 이런 따위였으리라.
소위 고독(蠱毒)이라는 술법 또한 염매란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서쪽 지방 백성들에는 이를 영업으로 하는 자가 있었으나, 근자에 와서는 일체 없어졌다.
또 상고컨대, “수(隋) 나라 개황(開皇) 8년에 묘귀(猫鬼)ㆍ고독(蠱毒)ㆍ염매(魘魅)ㆍ야도(野道) 따위를 금지시켰다.”고 하였다. 소위 묘귀란 것은 남을 병들게 저주하는 것인데, 이 염매라는 것과 서로 흡사하니 이는 더욱 괴이한 짓이다.
2. 요약
우리나라에는 염매(魘魅)라는 괴이한 짓이 있는데, 남의 집 어린애를 도둑해다가 고의적으로 굶기면서 겨우 죽지 않을 정도로 먹인다. 그 아이는 살이 쏙 빠지고 바짝 말라서 거의 죽게 될 정도에 이른다. 아이를 꾀어서 대통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아이를 번개처럼 빨리 찔러 죽인다. 죽통 주둥이를 꼭 막아 들어간 정혼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그 죽통을 가지고 부유한 부자의 집들을 찾아 다니면서 아이의 귀신으로 부자들을 병들게 한다.
병을 낫게 해주는 대가로 돈과 곡식을 받는다.
이것을 세속에서 염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서쪽 지방 백성들에는 이를 영업으로 하는 자가 있었으나, 근자에 와서는 일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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