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더해요]
여러 설이 있다고 그 전이 딴 국가라며 그러면 니가 말한 딴 국가는 어딘데? 그걸 말하시라고요. 100년가량 더 빠르다는 설은 삼국사에는 광개토대왕이 추모왕의 13세손인데 광개토대왕릉비에는 광개토대왕이 추모왕의 17세손이라고 적혀있음. 거기에 삼국사기 문무왕때 보면 고구려 800년이라는 말이 있음. 둘이 어느정도 맞아 떨어지니 그런 설이 있는 거임. 니가 말한 딴 국가는 뭐냐?
[@바바방]
그 전의 고죽국이나 집안위치에 기원전 3세기 고구려현 주민들이 거주했다는 얘기도 있음. 근데 고죽국은 엄밀히 말하면 수나라의 동북공정이나 다름없고 기원전 3세기 존재했던 고구려나 고구려현은 엄밀히 따지면 국가의 형태가 아닌 정치체제의 일종인 작은 집단 수준이라 고구려의 건국연도를 기원전 3세기까지 땡기는건 무리가 있음. 물론 신라측에서는 고구려 기원년도를 기원전 137년으로 본다는 얘기도 있고 삼국사기에도 800년 얘기 나오고 광개토대왕비에도 추모왕의 13대손이 아닌 17대손이라고 적혀있기도 해서 700 ~800으로 보긴 하는데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기원전 37년이 맞음
[@바바방]
고구려 이전에 졸본에 도시국가가 존재했고, 그게 동명성왕의 고구려 건국의 토대가 되었다. 라는 의미에서 어느정도 무게감이 있으나 해당 도시국가의 역사가 고구려사에 편입되지는 않는다는게 정설이지. 마가 우가 저가 구가들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아냐? 고구려 초기 국가수장 선출모델이 각 가문에서 돌아가면서 선출되는 형태였던건 암? 마우저구 걔들이 동명성왕 따까리들이면 그렇게 했겠냐? 기존 졸본지방의 실력자들이 합류한 형태의 정치체제였으니까 그렇게 된거지
[@한번더해요]
삼국사기에는 광개토대왕이 추모왕의 13세손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광개토대왕비에는 광개토대왕이 추모왕의 17세손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기록에서도 고구려의 존속기간이 800여 년이 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신라 문무왕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봉하면서 내린 책문에서는 "공의 태조인 중모왕(추모왕)은 덕을 비산에 쌓고 공을 남해에 세웠으며, 위풍을 청구에 떨치고 어진 교화는 현도를 덮었다. 자손이 대를 이어 본지가 끊어지지 않고 천리 땅을 개척하여 800년이 가까웠다(신라본기, 문무왕 10년)." 당대 신라인이 생각한 고구려의 건립시기는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으로부터 800년을 소급하면 서기전 132년이 된다. 이는 현재의 고구려 건립연도인 기원전 37년보다 100여 년 앞서는데, 전술한 『광개토대왕비』의 4세손 누락분과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한번더해요]
북한에서도 기원전 277년 건국설은 주장하는데, 《당회요》와 《신당서》, 《삼국사기》에 당나라 시어사(侍御史) 였던 가언충이라는 사람이 당태종과 고구려 비기를 말하는 도중 "고구려가 900년이 되기 이전 80세된 장수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고씨가 한대로부터 나라를 세워 지금 900년이요. 우리의 장수 이적이 80입니다." 라고 하는 대화내용이 있다. 여기서 900여 년간 존속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한 듯하다. 그래서 북한이 고구려를 부르는 별칭이 동방의 천년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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