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노불사의 삶의 살았던 생 제르맹 백작
생 제르맹 백작은 오늘날도 수수께끼에 쌓여있는 18세기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본명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유대계 포르투갈인 혹은 스페인 국왕 가를로스 2세 미망인의 아들이라는 추측도 존재한다.
1750년경부터 거의 10년간 주로 프랑스에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 졌으며, 루이 15세의 궁정에 출입하고 퐁파두르 부인의 신임을 얻어 당시의 주교계에 불가사의한 발자취를 남겼다.
2000년 이상 살았다고 자칭하여 불사조라는 소문이 났는데, 이는 모든 언어를 이해하고 모든 학문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회화나 음악 재능도 범상한 것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연금술을 이해하고 불로불사의 묘약을 상용했다고 알려졌고, 기차나 기선의 발명을 예언하며
유럽 각국의 궁정에 걸친 스파이였다는 등의 기괴한 풍설을 가진 남자이다.
그는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졌는데,
그 이후에도 그는 여러 사교모임에 얼굴을 비추었고, 불로의 묘약과 현자의 돌에 언급했다고 한다.
그의 첫 목격은 1704년경 프랑스의 작곡가 장 필립 라모가 그와 만난적이 있다고한다. 당시 그의 외모는 40대 중후반의 나이로 추정되었다고 한다.
이후 1756년에는 1710년에 만났던 제르제 백작부인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여전히 변치 않는 외모를 지녔다고 전해진다.
약 45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는 여전히 40대 중후반의 외견을 지니고 있었으며,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는 생 제르맹 백작을 질투한 귀족 무리들에 의해 프랑스에서 추방 당한 이후로도 장장 200년간은 이 외모로 유럽 전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추방 이후 백작이 다시 모습을 나타낸 건 1762년 러시아였다.
그는 러시아에서 장군의 직위를 얻어 다시금 프랑스를 방문하였는데 그 때, '마리 앙뜨와네트'에게 "정치에 주의하지 않으면 큰 일이 일어나게 된다"라고 경고했다.
그의 공식적인 죽음은 1784년 2월 27일인데,
이후에도 1821년 한 백작의 부인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증언하였고,
베네치아의 프랑스 대사 또한 산마르코 광장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또한 1789년 프랑스 혁명 직전, 마리 앙뜨와네트에게 마지막 경고를 위해 편지를 보냈지만 결국 혁명이 일어났고, 1793년 10월 마리 앙뜨와네트가 처형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한다.
1822년에는 인도에서 목격이 되기도 하였으며, 1939년에는 미국의 한 비행사가 생 제르맹을 자칭하는 승려를 보았다고 한다.
그는 다양한 일화들이 많은데,
본인이 가지고 있는 불로불사의 묘약'만을 마시고 있었으며, 그 외 궁중요리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았고, 스스로 2천년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당시 생소했던 동양의 문화에 조예가 깊었으며, 장미십자단과 프리메이슨을 창설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첫 목격인 1704년경 그의 나이가 45세~50세였다고 추정하는데,
이는 그가 1660년경에 출생한 것이 된다.
빈 에서 제르제 백작 부인을 만났던 당시의 나이는 8,90세가 되는것이 정상이며, 그의 공식 사망기록인 1784년 2월 27일은 그가 약 124세 정도에 죽은 셈이 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목격되었고, 죽지 않았다.
그의 대한 평가는 생 제르맹 백작의 친구이자 제자인 '헤세-카셀의 샤를 왕자'는 그의 저서에서 "지금까지의 철학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 중의 하나"로 백작을 추켜세웠고,
주브뤼셀 오스트리아 대사인 '코벤츨'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존경할 수 있는 결백하고 착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한편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해할 수 없는 남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생 제르맹 백작이 한말 중 유명한 "나는 긴 시간 동안 우주를 날아다녔다. 천체들은 내 주위에서 회전했으며, 지구는 내 발밑으로 당겨졌다."
그리고 또 어느 때인가는 "아주 멀리 떨어진 육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동안에 시간을 빠져나왔다"는 그가 진짜 외계인이라는 설을 못박는 말로 유명하다.
항간에는 사기꾼이 아니냐는 설이 대두되지만, 그가 시민들 눈 앞에서 납을 금으로 바꾸는 일을 한 것으로 보아서 대다수가 그를 진짜 연금술사로 인정한다.
실제로, 당시 금을 판별하는 곳 마저 진짜 금이라고 하였으며 생 제르맹 백작은 대충 주변에 있는 금속을 금으로 만들어 재산을 부풀리는데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히말라야 산맥의 은둔소에서 85년간 속세를 떠나 수행을 했다고 전해지며,
다시 속세로 내려온 생 제르맹 백작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윈스턴 처칠'에게 잇따른 조언을 하였고, 처칠은 독일의 나치의 공습에 대비해 영국의 공군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지만 정계에서 무시를 당했다.
하지만 독일의 나치가 영국을 공격하며 처칠의 말이 맞아떨어지자 '윈스턴 처칠'은 영국정부로부터 다시금 해군장관에 임명되었고,
이후 총리를 지내며 영국 본토 항공전을 막아내어 연합군의 승리를 가져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생 제르맹 백작은 말 잘하는 사기꾼이라고 칭하기엔 너무나도 오랜 기간 목격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 한 지금 그가 목격되지 않는다면 그의 전설은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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