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돌]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철학, 역사, 인류, 정치, 사회, 예술 모든 방면에 따라 보는 방식이 다양하다. 특히 사학자들이 보는 관점, 이른바 사관이라는 것도 사가가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지고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해석, 시대나 그 사가의 역사 이해방식과 같은 모든 복합적인 맥락에 따라서 달라진다.
일제강점기의 우리의 역사가 일본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세계 열강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던 세계사 속에서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역사가도 있을 것이고, 뒤쳐져 있던 우리를 자각했던 누군가도 있었을 것이다.
주체, 주권을 역사를 통해서 말하는 관점은 상당부분 일리가 있지만, 전쟁과 침탈은 궁극적으로 국가를 전복시키고 국권을 앗아가는 행위이다. 역사에 주체가 있다면 고려사의 원지배기 시절 고려의 역사가 원나라의 역사는 아니듯, 역사의 주체가 그 시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동북공정의 맥락이 여기서 나온다. 발해가 중국사를 표방하는 문화를 가졌고,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여, 그게 모두 중국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 역사를 소유의 문제로부터 주권의 문제까지 직결되어야만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발해와 같은 과거에 존재하던 나라에 대한 주권문제는 재미있기는 하지만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위 강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주권의 개념은 역사주권으로 발해나 고구려가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는 연속성을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근거는 사료나 유물 등의 구체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항하며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주권개념은 현재 동북지역에 대한 실효지배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주권의 개념입니다. 동북공정은 이 국가주권을 역사적으로도 뒷받침하고자 하는 노력인 것이고요. 무엇이 우선이러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주권 개념은 쉽게 나뉘는 것이 아닐 뿐더러 나뉘더라도 각각의 명확한 논리구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판단은 항상 주장하는 쪽의 상황에 근거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주권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각자의 역사주권/국가주권의 강조로 인해 당사자 국들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고착이라는 반시대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주권 논쟁 속에서 발해, 고구려 등은 발해, 고구려 그 자체로 등장하기 보다는 국가 중심주의 속에서 민족국가의 환상을 만드는데 소비되기 때문입니다. 주권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그것이 어떤 구조 속에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되는 지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