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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죽자 연호를 바꾼 헌제

마동석 5 3786 8 1

8D67F957-6396-4A86-BBFC-F84CA2B33FD7.jpeg 조조가 죽자 연호를 바꾼 헌제

삼국지를 읽어보면 나오는 헌제
동탁한테 옹립되서 이각, 곽사 세트한테 치이고
조조한테 시달리는 그런 황제임

그래도 동한(東漢)의 마지막 ‘황제’였으니 
당연히 연호가 있었음
삼국지를 자세히 읽은사람이면 ‘건안’이라는 연호를 들어봤을거임
바로 그게 헌제가 196년부터 220년까지 사용하던 연호임.

근데 분명 조비가 선양받은 년도는 221년인데
건안은 220년까지 썻다고 나와있음
그럼 남은 1년동안 쓴 연호가 따로 있을거잖음 ㅋㅋ
바로 그 1년 남짓한 기간동안 쓴 연호가 연강(延康)임

헌제가 잘 쓰던 건안을 버리고 연강으로 연호를 바꾼 이유는
바로 조조를 추모하기 위해서인데... 사실 조비에 의해 강제로 바꾼거임

사망 당시 조조는 제후왕(위왕)이었고, 
제후왕 또한 황제의 신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권신의 죽음을 이유로 
연호를 강제로 바꾼였음.
즉 그 당시 조비가 사실상 황제나 다름없다는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이며
실제로 10개월 후에 선양(이라쓰고 찬탈이라 읽지만)을 받아 
황제 자리에 올라버림 ㅋㅋㅋㅋㅋㅋ

이런 이유로 유비는 연강 연호를 따르지 않고 건안을 계속 썻으며,
221년에 황제로 즉위하자마자 연호를 장무(章武) 로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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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주마루오간에 의하면
오나라 또한 연강을 인정하지 않고 건안을 계속 씀
특이한건 동한이 멸망한 222년까지 계속 건안이란 연호를 썼었음

5 Comments
Kuat 2019.09.19 04:16  
이게 다 조조가 착실히 기반을 만들어놓은 덕택에 발생한 효과(?)랄까..
그를 장안탈출에서부터 따른 동승과 후궁 동귀인을 눈앞에서 의대조사건으로 썰었고, 외척의 영향이 적을만한 학자계열 명가인 복완의 딸을 짝으로 맞추어줬지만 결국 모의가 적발되어서 몰살시키고 연고지 전혀없는 북방쪽으로 복씨 일가를 죄다 쫓아버리고 승상에서 위공으로 승차했죠. 덤으로 딸을 헌제에게 주면서 외척의 지위까지 거머쥡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두 번의 대숙청으로 내부애서 조조를 뒤집을 인물이나 건수는 불가능해졌고 216년 마초/한수 토벌, 장로 항복 및 남흉노와 오환 선우들의 귀부를 이유로 위왕의 자리에 오르고 위왕부를 업성에 두면서 자연히 허도의 헌제정부는 간판만 달아놓고 제 기능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던 황족의 직할지인 낭야국의 왕 유희도 참살하면서 그나마 유일하게 헌제를 대체하거나 힘을 합칠만한 유씨 황가의 인물은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됩니다. 심지어 219년 허도정부에서 경기와 위황등이 계획도없이 무대뽀로 난을 일으키고 싹 정리된 이후로 그나마 간판이라도 달아놨던 헌제의 허도정부는 복직 인원도 구성조차도 의미없어진 유령의 집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고로 200년의 의대조 사건 때부터 이미 조조가 정권의 실세였지만, 황제가 조서 한장 마음대로 못쓰고 정부조직에 아무 영향도 못미치게 된건 순욱이 죽고 위공이 되면서입니다. 그런 조조를 보고자란 조비가 시늉이라도 헌제를 황제 대우할리는 어림도 없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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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튼대왕 2019.09.19 23:17  
[@Kuat] 근데 아들놈이 다 말아먹음.

유비는 패할 것이라 신선놀음이나 할 줄 알았지, 본인이 뭔가를 이룩한 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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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t 2019.09.20 04:54  
[@관계튼대왕] 뭐 사실..신선놀음 해도 들어쳐먹을 인성이 아니었다는 건 기록으로도 나와있는데다 이릉대전에서 인재와 국력 날려먹고 익주에 틀어박힌 유선에 신경쓰는게 더 이상했죠. 제갈량이 재상이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가 극도로 상향된 건 조예 즉위후 20만대군으로 북벌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생각배봅시다. 손권은 동오의 군주로서 20년 넘게 군림하면서 조조의 친정을 3번이나 막아냈고 그 말년의 조조를 한중에서 이기고 승승장구하던 유비를(육손으로) 떡바르는 전적까지 세웁니다. 당연히 놀고먹으면서도 열심히 손권을 경계했고 많이 공격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였을 때죠. 비단 조비가 아니라 누가 위나라 황제였건 간에 국력손실 크게 먹은 1주짜리 지방정권 vs 양주+교주+형주 3주에 걸쳐 말 안듣고 있던 손씨 왕국을 두고 위협도를 평가하면 당연히 손권을 택하는 게 맞죠.

아무래도 창업군주에 가까운 조조나 천하를 거의 먹은 황제임에도 작은 재판까지 보면서 성군의 자질을 보였던 즉위 초 조예에 비하면 조비가 못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유학의 부흥을 꾀했고 구품관인법을 도입하면서 조+하후씨의 지배체제를 동시에 공고히 하려던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는 경륜있던 하후씨와 조씨들이 다들 단명하면서 물거품이 되버리고 망국루트를 자초한게 되어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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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튼대왕 2019.09.20 23:11  
[@Kuat] 조조의 친정을 막았지만, 손제리 역시 그놈에 합비에 집착하면서 스스로의 권위를 떨어뜨린 면도 있죠.
말씀처럼, 조비 입장에선 유선보단 손권이 더 신경쓰이는 어금니에 낀 음식물 찌꺼기 같은 존재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뭔가를 한 게 없어요.

구품관인법도 장기적으로 보면 위나라 조정에 큰 도움이 되긴 커녕, 악재였고요.

--

조예가 죽기전에 조상 같은 놈들을 고명대신으로 삼은 것도 따지고 보면, 조조가 친족들 사이를 너무 떨어뜨렸다는 평가도 있고요. 진수가 삼국지에도 남긴 기록이 너무 떨어져 있다보니 가족간 우애도 못 느낄 정도였다고 했으니깐요.

뭐 사실, 이런 논의야 제 입장에선 즐거울 뿐입니다.
Kuat님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

1. 조비는 이릉에서 삽질한 유비의 뒤를 유선을 더 강력히 압박할 필요가 있었다
2. 제갈량이 군권을 장악하고 북벌에 나선건 유비 사후다. 그러니 조비 시기까지 거슬러 생각할 필요가 굳이 있을까
3. 손권 vs 유선 ... 당연히 손권이니 조비 조예는 유선을 먼저 멸망시킬 계책을 짜는 게 옳지 않았을까
4. 솔직히 작은 재판까지 보는 건 성군이기 보단 의심병 환자의 집착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5. 구품관인법은 정권 보단 지방 호족을 위한 것. 즉, 조비는 황권 약화를 스스로 불러왔다
6. 이러나 저러나 조씨, 하후씨 괜찮은 사람들 일찌감치 죽은 건 사실이고, 조진 같은 위인도 조상 같은 개자식을 낳은 것도 사실.

생각이 많아지는 댓글이네요. 오랜만에 고민하며 댓글 달아봅니다.

감사합니다.
Kuat 2019.09.21 03:39  
아 제가 쓴 글이 오해를 산 것 같아서 한마디 첨언하자면, 구품관인법이 당연 중정이 인사권을 쥐고 휘두르는 구조로 변질되기 쉽다보니 황권보다는 귀족, 호족 기득권의 세불리기 수단이 된 것이 맞습니다. 저는 그런 구품관인법을 도입하는 동시에 조진과 조휴, 하후상을 위시한 친족 가문 인물들을 최고위직에 앉혀서 황권을 공고히 하는 작업을 병행했다고 적은 것입니다. 구품관인법으로 조비의 지배체제를 강화하려고 했다는 것이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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