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cm 하앍하앍 김아랑 과거사진
4년 전 소치올림픽은 모든 게 새로웠다. 가장 신기했던 건 우상이었던 안현수(빅토르 안)를 만난 것이었다.
당시 안현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김아랑, 너의 첫 번째 올림픽, 힘내"라는 멘트와 함께 10년 전 김아랑과 함께 찍은
사진과 최근 소치올림픽에서 다시 만나 찍은 사진을 나란히 편집해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아랑(23·고양시청)은 전주교육대 부설초 1학년 시절 친오빠(김명홍씨)를 따라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고향에선 꽤나 유명했다.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넓은 무대로 나오자 다소 기가 꺾였다.
서울 목일중으로 전학온 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림자 신세였다. 다시 전주로 내려온 김아랑은 실망하지 않았다.
남다른 성실함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자신의 뒷바라지를 위해 1톤 트럭으로 전국을 다니며 창틀 설치 작업을 하던
아버지(김학만씨)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태해질 수 없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고교생이던 김아랑의 운은 2012년 말부터 활짝 트였다.
주니어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2012년 12월 전국 남녀 주니어 쇼트트랙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부터 김아랑의 인생에 광명이 비쳤다. 그해 2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2관왕에 올랐다.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김아랑이 이를 더 악물고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 했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출전권 확보 때문이었다. 꿈을 이뤘다. 김아랑은 2개월 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를 기록하는 기적을 썼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꿈만 꿨던 올림픽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아버지 김학만씨(55)에게 김아랑은 '효녀'다. "상냥하고 웃음이 많은 데다 효녀다.
외국에 나갈 때는 통신료를 아끼기 위해 로밍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속이 깊다." 딸 자랑에 아버지는 팔불출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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