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 ep 0. 삼국지 후반부 무쌍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문앙을 알아봅시다
제갈량의 위엄 포스트에서 문앙을 요청하는 글을 여럿 보아서 투표로 본격 시작 이전에 프롤로그 겸 삼국지 후반부에서 거의 가장 유명한 인물인 문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문앙은 사실 아명, 즉 아이 때 지어진 이름으로 본명은 문숙(文俶)입니다. 자는 차건(次騫)입니다. 희한하게도 정사나 연의나 본명 대신 아명이 그대로 공식이름으로 기록된 흔치 않은 경우죠. 여기서 차건이라는 자가 왜 중요하냐면 기록에는 없지만 그에게 형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대개 장남에게 맹(孟)이나 백(伯)을 붙이기 때문에 문앙이 장남이었다면 백건이 되었을테죠.
먼저 연의를 보면 정사와 비교해서 무력 최강의 무장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다만 에러가 한 가지 있는데, 그가 동편과 창의 명수이며 조자룡에 비견할 만 하다는 시까지 등장합니다. 그를 띄우기 위한 장치임은 이해하나 대국인 위나라가 적국의 장수, 그것도 유비패밀리의 일원이었던 자를 띄워줄리는 없겠죠?
문앙의 첫 데뷔는 관구검의 반란입니다. 문앙의 아버지인 문흠도 주축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이 때 사마사가 등애(우리가 아는 검각을 우회한 바로 그 등애!)를 파견합니다. 등애는 병력이 적은 척해서 사마사와 함께 문흠을 낚아버리는데 아니나다를까 문흠이 걸려듭니다. 그는 대군을 보고 당황하지만 아들이 "성에 올라 북을 쳐 기세를 돋우길 청합니다. 적군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이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뿜뿜 드러냅니다.
문흠과 문앙이 군을 둘로 나누어 한밤중에 기습을 가하고, 문앙이 북을 울리며 세 번 공격합니다. 이에 놀라서 사마사가 눈이 튀어나왔다고 하는데 날이 밝자 문씨 부자는 동쪽으로 퇴각했습니다. 그 때 사마사는 헌제 밑의 조조보다 더 권위있던 존재였는데, 황제 다음가는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 새파란 신출내기 문앙에게 털리고 눈알이 빠져나왔으니 사마사가 얼마나 존심이 상했겠습니까? 사마사를 보좌하던 장수들은 말렸지만 사마사는 추격을 밀어붙였죠.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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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련과 악침에게 문흠군은 대파되고 문흠 부자는 오나라로 달아났으며 관구검은 그 소식을 듣고 도망가다가 죽었습니다. 후 새드..
그런데 자치통감을 보면 문앙의 활약이 더 나옵니다. '... 필마단기로 추격군의 수 천명의 기병 속으로 뛰어들어 단번에 100명을 죽이고 빠져나왔다. 이같이 6~7 차례하자 추격하던 기병들이 감히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고 한다. ' '
필마단기=혼자서, 기병 수 천명을 6,7차례 헤집고 무사히 나왔다는 어마무시한 짓을 저지릅니다. 충공깽..이 때 문앙의 나이가 18살입니다. 무력의 기량이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을 나이에 말이죠. 반란군은 정신없이 무너지고 도망가는데 혼자서 적을 저지했다는 이거..장비 판박이 아닌가?
이게 왜 더 대단하냐면 기병은 보병과 달리 상비군이고 아주아주 비싼 병과입니다. 당연히 사마사의 명령을 받는 직속 기병이면 충성심은 기본이고 실력과 말도 고르고 고른 위나라 최정예병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이걸 혼자 막아내며 시간을 벌었다는 것은 이미 범인의 경지를 뛰어넘은 거죠. 같은 상황에서 관구검도 허술한 사람이 아닌데 그는 잡혀죽었고, 문흠은 아들과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문앙의 신위가 넘사벽이라 시간을 벌어서였다고 밖에 추측할 수 없습니다.
문앙의 재등장은 2년 후 제갈탄의 반란입니다. 근데 이번에도 무대가 수춘입니다. 아니 이 땅은 무슨 저주가 씌었나 또 반란이야 할텐데 이 지역이 워낙 인구도 많고, 땅도 비옥하고, 여러 강이 흘러 수군도 있고, 철도 풍부해서 한 마디로 그만큼 매력적인 땅이라는 뜻이죠. 조조에게 토벌당하고 불쌍하게 죽은 그 원술도 이 땅에서 황제를 참칭하고, 20만대군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서 하나 팁을 더하자면 촉한멸망전에 걸린 시간이 반년이 안되는데 이 제갈탄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최소 9개월이 걸렸다고 나옵니다. 이제 수춘지역이 얼마나 괜찮은 곳인지 감이 오시나요?
어찌되었든 사마씨에 대항한 관구검이 동조하기를 청했을 때 오히려 이 사실을 조정에 알려서 반란진압에 공헌한 사람이 2년만에 둔전병과 신병까지 약 15만명이라는 대군을 모아서 사마씨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관구검과 문흠이 일어났던 수춘, 그 땅에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제갈탄에 대한 설명도 하려면 포스트 하나 길게 뽑아야되니 설명은 생략하고..
이러니 오나라는 이 때다! 싶어서 항장인 문흠, 문앙과 3만의 지원군을 파견합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으니, 제갈탄과 문흠은 원래 사이가 더럽게 나빴던 것입니다. 처음에야 괜찮았지만, 포위를 뚫으려다 큰 피해를 입고, 식량도 떨어져서 수만 명이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서로 의심하다가 제갈탄이 먼저 손을 써서 문흠을 죽입니다. (아니 시발??) 이러니 기껏 도와주러까지 왔는데 아버지를 죽이니까 문앙과 동생 문호는 딥빡쳐서 사마소에게 귀순합니다. 표를 올려 문앙과 문호를 장군으로 삼게하고 관내후의 작위를 내리고 제갈탄의 반란이 진압되고서는 문앙과 문호에게 수레와 소를 주어, 문흠의 시신을 거두어 염하고 조상의 묘까지 옮겨 장례를 지내도록 호의를 베풀어줍니다. (사마사가 얼마나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으면 저렇게 후하게 대접해주는가 싶군요..)
연의에는 삭제되어 나오지 않지만 문앙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전장은 량주입니다. 270년 일어난 독발수기능의 난을 279년 마륭이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십년간 힘을 쓴 공로가 인정되어 동이교위가 되고 가절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277년 3월, 사마준과 문앙이 군대를 이끌어 독발수기능을 위협하니, 부중의 20만명이 투항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민족, 그것도 기마민족 기준으로 20만 명이라는 인구는 건장한 장정으로 구성된 기병 수만 명을 뽑아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타격을 받았음에도 독발수기능이 망하는데 3년이나 더 걸렸으니 이런 항복을 받지 못했다면 얼마나 더 걸렸을지 짐작할 수도 없군요. 이 반란은 서진을 10년이나 골때리게 만드는데 반란 초반에 독발수기능에게 호열과 견홍이 죽기 때문이죠. 이 두사람도 대단한 능력자인데 여튼 이민족 반란이 10년을 간 것은 서진 조정에서 가충때문에 개판이 된 것도 있지만 그만큼 독발수기능이 엄청 강력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웃기게도 공을 세워 승진하고 가절도 받아서 콧노래를 부르며 귀환한 문앙이지만 황제인 사마염이 다른 일로 꼬투리 잡아서 면직을 시켜버립니다. 삼촌인 사마사가 눈이 터져 죽은게 생각났는지는 몰라도(사마사는 관구검의 반란 진압 후 눈의 상처가 악화되서 죽었어요) 공로를 세웠으니 그런 직위와 가절을 하사했을텐데 뭔 심보인지 10년 반란을 진압한 공신을 면직에 가절 회수라니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