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위엄
흔히들 어설프게 정사 삼국지를 접한 사람들이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제갈량은 연의에서 지나치게 띄워진 거품이다! 라는 것인데
과연 실제로도 그랬던 것일까?
실제 역사에서 제갈량은 정말 '거품'이었을까?
제갈량의 업적 중 중요한 것들을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1. 비단 산업 육성
촉의 특산물이었던 비단 산업을 더욱 발전시켜, 위와 오나라에서도 최고급 사치품으로 통하게끔 발전시킴. 이를 통해 소국인 촉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됨.
2 팔진도 정립.
일종의 군사 행동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팔진도를 고안해냈다. 어찌나 완성도가 훌륭했는지 송대까지 제갈량의 병법을 가르쳤다고 함. 사마염도 촉을 정벌한 뒤 제일 먼저 제갈량의 팔진도를 배우고자 했을 정도.
3. 법 제도 정비.
이엄, 법정 등과 함께 '촉과'라는 법 제도를 정비. 삼국 중 촉을 가장 법치적인 국가로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
4. 소금 산업.
'화정(火井)'이라고 불리는 천연가스를 이용한 화로를 개발해 암염 산업을 크게 증진시킴. 촉은 바다를 끼고 있지 않았으며 고대에 소금은 금보다도 귀한 물건임을 생각해 볼때 엄청난 업적.
5. 목우유마 개발.
험지인 촉에서 물자를 쉽게 운송하기 위해 목우유마라는 수레를 개발. 삼국지 연의에서는 자기 혼자서 물건을 실고 가는 자동화기계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바퀴가 하나인 수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6. '제갈노'라는 화살 발사 장치를 고안.
후대 학자들이 '산을 무너뜨리는 화살'이라고까지 부른 화살 발사 장치를 제작하고 실전에 투입함. 설계도가 남아있지 않아 지금은 어떤 모양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장합이 이것에 맞아 죽었다고 추측됨.
7. 남만 정벌.
당시의 이민족 정책은 그냥 무조건 반항하는 새끼들 목을 베고 복종하라고 협박하는 것이었음. 그러나 제갈량은 남만인 가운데 관리를 뽑고 스스로 다스리게 하면서 거의 최초로 평화적인 이민족 복속을 이끌어 냄. 이후 제갈량 사후까지 남만족들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음. 이런 평화적인 정벌이 삼국지 연의에서는 맹획의 '칠종칠금'으로 표현됨.
8. 각종 책략들.
유표의 아들 유종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꾀를 알려주었고, 손권에게 가서 세치 혀로 손유 동맹을 성사시켰으며, 맹달의 배반을 꾀하여 실제로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 밖에도 세세한 많은 계책들을 내었고 많은 것들을 성공시킴.
9. 군사적 업적
북벌로 음평과 무도라는 두 개의 군을 점령했으며 이는 촉이 멸망할때 까지 촉이 위에게서 가져온 유일한 영토가 됨.
10. 야전 사령관으로서의 능력.
제갈량은 마속의 인선 실책으로 인한 패배 외에, 본인이 군사를 이끈 야전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음. 장합, 사마의, 곽회 등 위의 명장들도 제갈량과 야전으로 붙으면 패퇴하기 바빴음. 제갈량한테 진게 쪽팔렸는지 몇몇 역사서에서는 사마의의 패배를 누락시키거나, 심지어 사마의의 승리로 왜곡하기도 했으나 계속해서 이루어진 검증 끝에 전부 개소리라는 것이 입증됨.
11. 전술적 움직임.
기만 전술, 의병계, 공성계, 매복계 등 전장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전술적 움직임을 시도했고 두번을 제외한 (마속 개새끼, 곽회 개새끼) 모든 사례에서 그것을 성공시켰다.
12. 인성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 독재자나 다름 없이 촉의 권력을 장악했는데도 촉 내 모든 인재가 제갈량을 진심으로 존경했으며 죽은 후에 사당을 지어 모실 정도로 그를 숭배했음.
이 모든걸 단 한 사람이 해냈다는게 그냥 놀라울 따름.
그리고 제갈량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어떠할까.
진수(정사 삼국지의 저자)
-제갈량은 걸출한 인재로 관중, 소하와 견줄 만 하다. (둘 다 중국사 최고로 꼽히는 명재상)
배송지(삼국지에 역주를 단 사람, 현대 삼국지 연구는 그가 없었다면 절반도 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
-그가 위나라에 몸을 담았다면 진군이나 사마의도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
두보(시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중화 사상 최고의 시인)
-이윤과 여상(강태공)과 비슷하고 소하, 조참보다 낫다
비의(제갈량이 뒷 일을 맡긴 인재)가 강유(제갈량의 군사적 후계자)에게
-우리는 모두 승상만 못하니 중원을 평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손권(쥐새끼), 사마의(목이 뒤로 돌아가는 인간)
-아들의 이름을 량(亮)으로 지음. (추측에 가깝지만 보통 동시대의 유명인과 굳이 같은 한자를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순신(100원짜리에 그려진 사람)
-내 재주가 무후(제갈량)만 못하고, 내 덕망이 무후만 못하고 내 충심이 무후만 못하니 (후략)
무성왕묘의 최고 상석 10자리에 배향됨
-중국사에 위대한 인물들을 모아놓는 장소로, 제갈량과 나란히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한신, 장량, 손자, 백기 등이 있다.
흔히들 제갈량을 거품이니 뭐니 하면서 사마의라던지 다른 인재와 비교하며 까내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 역사에서의 제갈량을 파보면, 오히려 연의에서 생략된 제갈량의 업적이 훨씬 많다는 생각이 듬.
위나라의 9분의 1 정도밖에 안되는 국력을 가진 촉의 승상으로
산업, 농업을 발전시키고 병사를 양성하고 국력을 키워서 북벌까지 감행할 수 있게 만든 명재상.
과연 제갈량이 거품이었는지 아닌지는 생각해 볼 문제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