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해전술?? 그럼 우린 탄약으로 대응한다
1951년
미8군의 지휘관으로 메튜 리지웨이 장군 후임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이 취임했다
밴 플리트 : 야야 참모야 중국군이 인해전술로 내려온다매
참모 : 예 머리숫자로 밀고 내려옵니다
밴 플리트 : 그래? 그럼 우리도 물량으로 간다
참모 : 저희 전투병력은 그만큼 안되는데요??
밴 플리트 : 누가 쟤들처럼 대가리 숫자로 밀어넣으래??
이거있잖아
포병이 있는데 뭣하러 우리도 전투병력을 갈아 넣냐?
날도 더운데 포탄 샤워좀 시켜줘라
6.25때 중국군을 막을 가장 좋은 방법은
포탄으로 작살내는 방법이였음
각 포병대의 하루 제한 포탄량에서
기존에 배당되던 포탄의 5배를 쏘라고 했는데
말만 5배라고 하는거지 실상은 무제한이였다고 함
이 밴 플리트 탄약량으로 사격한 국군 부대도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1952년 어느날 저녁 2군단의 군단 포병의 모든 포들이 불을 뿜었음
군단에 배치된 포는 어림잡아 180문이라고 하는데
이 모든 포들이 각자의 목표에 대해 사격을 실시했음
그날 하룻동안 2군단 포병대는
2만발이라는 정신나간 숫자를 쏴올렸음
당시 군단장이 밤11시에 잠에 들고 다음날 새벽5시에 일어났는데도 계속 포격을 진행했다고 함
그리고 포격이 종료된후 관측진지로 올라가서 포격을 당한 곳을 봤는데
그때 군단장이 느낀 소감
"전날 푸르던 땅이 전부 뒤집힌건 물론이고 땅이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라고 했음
이때 미국 의회에선 일일 포탄 사용한도를 초과 했다고 의회에 출석하라고 할정도로 길길이 날뛰었으나
밴 플리트 장군은
니들이 여기 와서 중공군 시체를 보고 아가리를 털어라
그거 아니면 탄약량에 관해 입도 뻥긋 하지마
라고 일갈했고 의회 출석도 없었음
이 덕분에 초창기 중국군의 공세를 막아내게 되었고
전쟁 중기부턴 고지전을 기본으로 대량의 포격전이 개시되었음
*인해전술이 무식하게 물량만 믿고 밀어부치는 그런 전술은 아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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