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동양의 무력 1인자들
사자왕 리처드
( Richard I of England, 1157.9.8 ~ 1199.4.6 )
저 자가... 바로 사탄 아니냐? <살라딘>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살라딘의 부관>
무기를 다루는 데 있어 그를 능가하는 자는 없으며, 그는 언제나 가장 먼저 진군하고 가장 늦게 퇴각합니다.
우리는 그를 사로잡으려고 최선을 다했으나, 그의 검을 피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 헛된 일이었습니다.
그의 공격은 무시무시하고 그와 싸우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일과 매한가지 입니다.
그는 인간이 아닌듯 행동합니다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
- 196cm의 엄청난 장신으로, 리처드가 살던 시대에서는 그야말로 너무나도 압도적인 키와 덩치를 자랑하며, 도끼와 칼을 들고 항상 최전방에서 싸움
- 살라딘의 병력이 우세한 곳이나, 살라딘이 튼튼하게 구성해 놓은 전열이나, 그 어떤 곳이던 리처드가 나타나는 동시에 붕괴되어 버림
- 케사레아 전투 (Battle of kesarea) 에서 리처드의 군과 살라딘의 군이 충돌했는데, 매복에 당한 리처드가 맹렬하게 적들을 베어내고 있을 때
후방 부르고뉴 공의 군대가 살라딘의 투르크군의 매복에 당했다는 얘기가 전해짐.
리처드는 얘기를 듣자마자 천둥과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투르크군 사이에 홀로 뛰어들어 미친듯이 적들을 베어냈고,
적의 매복으로 불리하게 시작된 전투를 승리로 이끔
- 아르수프 전투 (Battle of Arsuf) , 케사레아 전투 이후 살라딘과의 협상이 결렬된 리처드는 2만의 병력을 이끌고 3만의 오스만 군대와 숲속에서
맞섰는데 수적 우위를 가진 오스만군에게 리처드의 군대는 계속 밀려나고 있었음
군대가 거의 붕괴되어 갈 때 기사 두 명이 참지 못하고 살라딘의 군대로 돌격했고, 그걸 보자마자 전군 공격명령을 내린 리처드 왕은
본인이 직접 단신으로 오스만 군대 한복판에 뛰어듬
낫으로 곡식을 베듯 목을 잘라내는 리처드에게 압도당한 오스만 군은 일방적으로 당하게 되었고,
리처드를 뒤따라온 정예부대에게 완전히 초토화 되어버림
결과는 2만의 십자군과 3만의 오스만군의 전투에서 십자군의 피해는 700명, 오스만군의 피해는 7000명....
리처드가 학살 한 것은 단순히 일반 병사들 뿐이 아니었는데,
이 전투에서 무려 32명의 아미르(사령관 및 제후) 를 참살함
- 아르수프 전투에서 패한 살라딘은 대패 후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한 번 총공격을 명령하려 했는데
15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돌격해 온 리처드에게 쫓겨서 본거지까지 도주하게 됨
그리고 대망의 야파 전투(battle of jaffa)
1192년 7월 27일, 살라딘은 야파 요새를 침공했고 요새를 지키던 십자군들은 살라딘에게 투항 할 수 있겠냐고 물었지만
살라딘은 목숨은 보장 할 수 없다는 대답을 함
결국 야파 요새의 십자군은 성채로 퇴각했고, 야파 요새 내부는 살라딘의 군대에게 학살당하게 됨
팔레스타인을 떠나려던 리차드는 전령에게 야파의 함락을 전해 듣고서
" 신의 도움으로 내 할 일을 하고 말리라 " 라고 소리치며 군대를 모아 야파 요새로 향함
군대를 이끌고 해안에 상륙한 리차드는 야파 요새가 살라딘에게 맹공을 받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무슬림 깃발로 가득한 성채를 보고 생존하고 저항하는 십자군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절체절명의 순간 성에 있던 사제 한 명이 수심이 얕은 바다로 뛰어들어 리처드의 범선까지 헤엄쳐 가서 고함을 지르는데
"숭고한 왕이시여! 우리 병사들은 전하의 구원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저 가증스런 종족의 칼날에 쓰러져 가고 있나이다. 마치 도살을 기다리는 양처럼 그 목을 앞으로 길게 뺀 채로 떨고 있나이다. 수비대는 전하를 통한 신의 구원이 없다면 저 자리에서 죽고 말 것입니다."
곧바로 리처드가 외치니,
" 당치도 않다! "
배가 해안에 닿기도 전에 도끼를 들고 바다에 뛰어 든 리차드는 닥치는 대로 무슬림을 베어 넘기며 정면으로 돌격했고
자신의 뒤를 뒤따른 고작 80명 정도의 병사들과 함께 야파 요새 안에 있던 6만2천여명의 살라딘의 군대를 몰아내는 엄청난 무용을 펼침
이는 양측 역사서에 동시에 기록된 내용이라 놀랍게도 신빙성이 있는 기록임
그 믿지 못할 광경을 직접 목격하게 된 살라딘은 부관에게 " 저 자야말로 사탄이 아닌가! " 라고 했고
부관은 " 저 자는 진정 인간이 아닙니다 " 라고 답했다고 함
살라딘은 항상 자신의 부관으로 서기관을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대부분의 말을 기록하게 했기 때문에
살라딘의 사탄 발언 역시 실제로 했을 가능성이 높음
야파에서 크게 패한 살라딘은 또 한 번 기습 공격을 준비했는데, 8월 5일 새벽 7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리처드에게 빼앗긴 야파를 향해 공격을 감행함
이때 리처드왕의 병력은 기사 54명, 기마기사 15명, 보병 2000명에 불과했으며,
무너진 성벽조차 보수하지 못해 그곳에 목책을 치고 방어를 하고 있었을 정도로 모든 것이 빈약했지만
잠에서 깬 리처드는 이번에도 최전방으로 돌격해서 엄청난 무용을 뽐냈고
결국 살라딘의 군대를 궤멸시키는 것에 성공한 뒤에 15명의 말 탄 기사들과 함께 그 뒤를 추격하는데 리처드의 말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자
말에서 내려서 무슬림 병사들의 머리를 닥치는 대로 박살내버림
이 난전중에 살라딘의 명령으로 일부 무슬림 군대가 요새 후미로 침투하려 했지만
어떻게 알아챘는지 10명의 기사를 대동한 리처드가 나타나서 또 박살내버림...
영혼까지 털린 살라딘은 군대를 후퇴시킬 수 밖에 없었고, 이 전투로
십자군은 단 2명만 사망했으나 살라딘의 군대는 무려 700명 이상이 사망했고 1500필 이상의 말을 잃게 됨
...
살라딘이 이슬람을 통일하고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등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장 중의 명장이자 엄청난 인물 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리처드의 용맹과 무력은 그야말로 인외(人外)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項羽)
(기원전 232년 3월 29일 ~ 기원전 202년 )
역발산 기개세 ( 力拔山 氣蓋世 )
힘은 산을 뽑으며, 기개는 세상을 덮는다
근,현대의 전투와 완전히 다르고 화기의 발명조차 전혀 이뤄지지 않은 시대의 전투에서는
군을 지휘하는 장군의 역량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단신의 무력만으로 혼란스럽던 중국을 단 2년만에 제패했으니
(비슷한 크기의 영토를 정복하는 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거의 10년이 걸림)
그야말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무장
- 8척(184cm) 의 큰 키로 지금도 큰 키이니 당시(기원전)에는 그야말로 거인이었음
- 무력 뿐만이 아니라 전술적 역량, 지휘관으로서의 재능 또한 비교할 상대조차 없는 수준
거록대전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전투는 아니지만 항우의 이름을 알리게 된 전투로
진나라 군대를 완전히 궤멸시키고 진나라를 멸망하게 만듬
팽성대전 彭城之戰
3만명의 초나라 군대를 이끌고 56만명의 한나라 군대를 격파함
초나라 군대의 피해는 거의 없었고 한나라 군대는 무려 30만명이 전사
기습도 아니고 대낮에 붙은 정면 대결에서 완전히 박살내버림
고릉전투
장량과 진평의 계책으로 유방이 항우를 사방에서 둘러싸서 사면초가로 조지려 하였으나
한신과 팽월이 제 때 합류하지 않자 다급해진 유방이 고릉에서 항우를 직접 공격하였고
항우의 반격으로 완전히 박살나서 패퇴하게 됨
- 중국 최고수준의 명장 한신(韓信) 도 항우가 직접 참여한 전투에서는 여지없이 박살남(해하전투 제외)
-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끈 전투에서는 최후를 맞은 해하전투(垓下之戰) 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음
해하전투(垓下之戰)
10만명의 초나라 군대와 30만명의 한나라 군대가 싸운 전투
제왕(齊王) 한신(韓信) 이 이끈 군대와 싸움을 시작한 항우의 초나라 군대는
치밀하게 쌓여진 전략과 지형, 그리고 머릿수 차이로 인해서
삼면에서 포위당해 공격당하며 처참하게 무너졌고
항우는 10만명 중에 8만명의 병사를 잃은 채 도주하게 됨
팽성대전 처럼 병력차를 극복 할 수 없었던 이유는
팽성대전 당시 한나라 군대는 머릿수만 많은 오합지졸 들이었지만 해하전투의 한나라 군대는 모두 정예병이었고
초나라 군의 지휘관들은 대부분 죽거나 새로 뽑은 것에 반해 한나라 군은 뛰어난 지휘관들이 너무 많았음
제아무리 항우여도 이길 수가 없는 격차였던 것
한나라 대군에게 포위된 2만 초나라 군대는 가뜩이나 그 숫자가 적은데
장량의 계책으로 밤새 울려퍼진 초나라 노래에 의해
아침에 항우가 눈을 떴을 때는 고작 800명만이 남게 됨
항씨가문의 친척, 장수들마저 모두 항우를 버리고 떠나버림
항우는 그 날 밤에 자신을 따라 마지막까지 남은 800명의 병사를 데리고 한나라 대군의 포위망을 뚫어버렸고
이 사실을 보고받은 한나라 군대는 관영(灌嬰) 에게 5천여 명의 기병을 줘서 항우를 빠르게 추격하게 함
도주하는 항우의 800명의 군대는 회수를 건넜을 때는 100여명만이 남아있었고, 천신만고 끝에 동쪽으로 길을 뚫어 동성(東城) 에 이를 때에는
고작 28명만이 남아있게 됨. 이 28의 병사들과 항우는 숫자는 적었지만 그야말로 괴물 집단이었는데,
5천명 기병의 추격을 피해가며 수만명 한나라 군대의 포위진을 뚫은, 항우를 위시하여 개개인이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 들이었음
항우와 28명의 병사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나라군의 추격과 포위를 엄청난 힘을 발휘하며 완전히 박살 내 버렸고
결국 포위망을 모조리 뚫고 오강(烏江) 에 도착하는 것에 성공했는데,
수만명의 군사를 뚫고 왔음에도 28명의 병사 중에 고작 2명만이 전사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만 남았는지 알 수 있음
장강에 도착한 항우는 남은 26명의 병사들과 자신의 말인 오추마를 배에 태운 뒤 홀로 남았고
뒤늦게 도착한 한나라 추격대와 마지막 일전을 벌이는데
유방의 장수들 중에 손꼽히는 명장인 관영이 이끄는 정예 기병대 5000명을 상대로
말도 없이 단신으로 수백명을 썰어버렸고, 싸우는 와중에
자신의 과거 부하였던 여마동(呂馬童) 을 발견하고는
"내가 들으니 한왕이 내 목을 천금과 만호(萬戶)의 봉지로 사려 한다고 했다. 내 그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겠노라." 라고 하며
자결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하게 됨. 향년 31세
Best Comment
척준경이 오히려 그럴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