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레전드 시리즈 1탄 - 데드볼 시대의 지배자들
오랜만에 메이쟈리그 자료를 들고 왔습니다.
사실 작년에 몇개 글 쓰면서 꾸준히 업로드 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은 관계로 이제야 올립니다.
이번엔 메이저리그가 1920년 베이브루스의 전성기와 함께 맞이한 라이브볼 시대 이전인 데드볼 시대의 전설적인 선수들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이번 글을 읽기 전에 모르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데드볼 시대에 관해서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1900년 이전에 야구는 경기장의 규격도, 공의 크기도 제 각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트라이크와 사구의 개념도 현재와는 달랐고, 파울은 스트라이크에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번트 안타 또한 희생타로 취급되어 타수에 포함이 되지 않았죠.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 룰과 공에 대해서 규격화가 진행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의 야구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 후 야구공에 코르크를 포함시켜 반발력을 높혔고 베이브 루스가 그 전의 선수들과는 다른 홈런스윙으로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주면서 데드볼 시대는 막을 내리고 라이브볼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누군가는 이들의 기록을 초창기 야구, 현재와는 다른 룰로 인해 인정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메이저리그가 있고 현대 야구가 있고 각국의 프로리그도 생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들의 기록도 폄하될 이유가 전혀 없고 그들이 기록한 전설적인 성적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보는 이름도 많고 한번은 들어봤을 이름도 있을 겁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포지션 별로 1명씩만 선정했습니다.)
투수(P) : 사이 영 (Denton True "Cy" Young)
511승 315패 2.63 7356이닝 2803탈삼진 749완투 76완봉 fwar 131.5 bwar 165.6
1901년 33승 10패 1.62 371.1이닝 158탈삼진 38완투 5완봉 fwar 7.8 bwar 12.6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승(511), 최다패(315), 최다이닝(7356.0), 최다 선발출장(815), 최다 완투(749)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이다.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지는 몰라도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거다.
데드볼 시대의 투수라면 보통 300, 400이닝을 밥먹듯이 던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이 영에 대한 대우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통산 5000이닝을 넘긴 투수는 메이저리그 전체에 13명이고 그 중 데드볼 시대의 투수는 7명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6000이닝을 소화한 투수는 퍼드 갤빈과 사이 영이 유일하다. 데드볼 시대의 투수들은 300~400이닝을 던지는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몇 해 안에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1901년, 클리블랜드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한 사이 영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고, 1904년 아메리칸 리그 최초의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다. 사이 영은 이 퍼펙트 게임을 포함하여 통산 3회의 노히터를 기록했다.
22년간 연 평균 300이닝이 넘도록 투구한 사이 영은 제구력 하락과 번트 수비가 안될 정도로 몸무게가 증가하자 1911년 44세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그는 19세기 데뷔 투수 중 유일하게 기자단 투표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다.
포수(C) : 킹 켈리(Michael Joseph "King" Kelly)
16시즌 0.307 0.368 0.438 1813안타 69홈런 950타점 1357득점 368도루 wrc+131 fwar 45.1 bwar 47.0
1886년 149경기 0.388 0.483 0.534 175안타 4홈런 79타점 155득점 53도루 wrc+177 fwar 7.6 bwar 7.3
1루수(1B) 캡 앤슨(Adrian Constantine Anson)
2루수(2B) 냅 라조이(Napoléon "Nap" Lajoie)
21시즌 0.338 0.380 0.466 3243안타 82홈런 1599타점 1504득점 380도루 wrc+144 fwar 102.2 bwar 107.4
1901년 131경기 0.426 0.463 0.643 232안타 14홈런 125타점 145득점 27도루 wrc+186 fwar 8.9 bwar 8.4
통산 5회의 타격왕을 차지한 로저스 혼스비와 함께 역대 최고의 2루수로 손꼽히는 선수이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로 팀을 옮긴 1901년, 라조이는 0.426의 1900년 이후 단일 시즌 최고 타율을 기록하며 도루를 제외한 7관왕을 차지했고, 데드볼 시대였음에도 14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펀치력을 보여주었다.
리그 슈퍼스타였던 라조이가 소속팀 문제로 인한 법정다툼 끝에 신생팀이었던 클리블랜드 브롱코스로 팀을 옮기자 클리블랜드 사람들은 라조이를 보기위해 벌떼처럼 몰려들었고, 심지어 투표를 통해 팀명을 라조이의 이름을 따 클리블랜드 냅스로 변경하기까지 했다.
1910년, 그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 타이 콥과 세기의 타격왕 경쟁을 펼쳤는데, 타이 콥이 9리 차이로 라조이를 앞서고 있던 가운데 라조이가 8타수 8안타를 기록하면서 0.0004 차이로 따라붙은 것이었다. 그렇게 타이 콥이 타격왕을 차지했으나, 1981년 스포팅뉴스가 라조이의 안타1개가 실책으로 잘못 기록된 것을 찾아냈고, 1910년의 타격왕은 라조이로 바뀌었다. 그러나 사무국에서는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타이콥의 타격왕도 12차례로 기록되어있다.
3루수(3B) 프랭크 베이커(John Franklin "Home Run" Baker)
13시즌 0.307 0.363 0.442 1838안타 96홈런 991타점 887득점 235도루 wrc+134 fwar 60.1 bwar 62.7
1912년 149경기 0.347 0.404 0.541 200안타 10홈런 130타점 116득점 40도루 wrc+166 fwar 9.1 bwar 9.3
그가 활약했던 데드볼 시대는 타자들이 홈런보다는 컨택에 집중했던 스몰볼 야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홈런으로 이름을 날렸던 슬러거가 있었으니 바로 프랭크 베이커였다. 지금이야 3루에 슬러거가 허다하지만 당시 3루수는 유격수 만큼이나 수비지향적인 포지션이었으나 베이커만큼은 달랐다. 당시 한 자리수 홈런으로도 홈런왕을 차지하는 등(1909년 타이 콥) 극단적으로 홈런이 나오지 않던 시기에 베이커는 10~20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4차례나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다.
거기에 1905년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뉴욕 자이언츠를 상대로 극적인 홈런을 날리면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베이커에게는 '홈런'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현재 각종 매체에서는 베이커를 "홈런 베이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은퇴 후 그는 마이너리그 감독직을 맡았고, 그 당시 젊은 유망주였던 지미 팍스를 발굴했다. 이후 지미 팍스는 루 게릭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1루수로 꼽히는 대스타가 되었다.
유격수(SS) 호너스 와그너(Johannes Peter Wagner)
21시즌 0.328 0.391 0.467 3420안타 101홈런 1732타점 1739득점 723도루 wrc+147 fwar 138.1 bwar 130.8
1908 151경기 0.354 0.415 0.542 201안타 10홈런 109타점 100득점 53도루 wrc+194 fwar 11.8 bwar 11.5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약물복용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가운데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로 손꼽히는 선수이다.
NL 타격왕 8차례, 14년 연속 3할, 6번의 장타율1위, 9번의 100타점, 10년 연속 fwar nl 1위를 달성한 전설적인 유격수이다. 또한 그는 1900년대 최초로 ops 1.000을 기록했고, 5번의 도루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전 포지션 수비가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였고, 실제로 포수로 출전한 적은 없었으나 포수로도 뛸 수 있다고 알려졌다. 와그너는 긴 팔을 이용해 뛰어난 유격수 수비를 보여줬는데 당시 열악한 그라운드 때문에 맨손으로 수비에 나선 적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긴팔로 낚아채는 호수비와 독일 계통이었던 관계로 플라잉 더치맨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또한 그는 도루에 대한 규정이 바뀐 후 메이저리그 최초로 2루 도루, 3루 도루, 홈스틸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선수가 되었고, 이 후 이 기록을 3번이나 더 달성한다.
참고로 t260 호너스 와그너의 야구 카드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야구카드라 불린다. 2014년 12월 40만달러에 낙찰되었고 32억에 팔린 적도 있다고 한다.
외야수(OF) 엘 델라한티(Edward James Delahant)
16시즌 0.346 0.411 0.505 2597안타 101홈런 1466타점 1600득점 456도루 wrc+144 fwar 73.7 bwar 69.6
1899년 146경기 0.410 0.464 0.582 238안타 9홈런 137타점 135득점 30도루 wrc+177 fwar 8.3 bwar 8.0
19세기를 대표하는 슬러거, 3시즌의 4할 타율을 기록할 정도의 정교함과 19개의 홈런을 기록할 정도의 파워를 고루 갖춘 강타자였다. 1899년 그는 타격왕과 타점왕을 모두 차지했는데 이 시즌에 기록한 타율이 0.410이었다. 그가 기록한 0.346의 통산타율은 역대 5위에 기록되어 있다.
일화로는 그가 날린 타구가 수비하러 달려들어오던 조지 핑크니의 발목을 부러뜨린적이 있었는데, 그가 강력한 타구를 날려대는 강타자라는 걸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또한 그는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홈런' 사건의 당사자였다. 1890년, 그가 핑크니의 발목을 날려버린 그 해...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캡 앤슨이 날린 타구가 폴대를 맞고 외야 필드의 점수판으로 들어갔다. 델라한티는 공을 잡으려고 좁은 공간에 들어갔다가 끼어버렸고, 샘 톰슨이 델라한티를 그 곳에서 꺼냈을 때엔 이미 앤슨은 홈플레이트를 통과한 후였다.
또한 델라한티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야구선수 중 하나였다. 1903년 7월, 그는 기차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승객을 면도칼로 위협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결국 기차에서 쫒겨난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는데, 그는 실종 2주 후 나이아가라 폭포 바닥에서 숨진채 발견되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밝혀지진 않았다.
외야수(OF) : 타이 콥(Tyrus Raymond Cobb)
24시즌 0.366 0.433 0.512 4189안타 117홈런 1944타점 2243득점 897도루 wrc+165 fwar 149.3 bwar 151.0
1911년 146경기 0.419 0.466 0.620 248안타 8홈런 127타점 147득점 83도루 wrc+189 fwar 11.0 bwar 10.7
메이저리그 초대 야구 황제. 데드볼 시대의 독보적인 레전드. 최초의 5인
통산 타율 0.366, 12번의 타격왕, 역사상 유일 무이한 타격 8관왕.
그의 위엄은 기록이 보여준다. 3번의 4할 타율, 메이저리그 최초의 4000안타, 8번의 최다 안타 1위, 5번의 득점 1위, 4번의 타점 1위, 6번의 도루 1위, 역대 최다 홈스틸. 역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를 뽑으면 베이브 루스와 함께 항상 2손가락안에 꼽히는 선수다. 은퇴 당시 보유하고 있던 메이저리그 기록은 90여개에 달했으며, 은퇴한 지 10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메이저리그 역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거친 플레이의 대명사였으며, 그 모습에 압도적인 실력이 더해져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로 군림했다. 역시 슈퍼스타답게 그는 냅 라조이와의 세기의 타격왕 경쟁 등 온갖 이슈를 몰고 다녔다.
한편 그는 또 다른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방탕했던 사생활, 홈런을 추구하는 루스의 스타일을 모두 마음에 안들었는데, 콥은 자신이 고집하는 정교한 컨택과 빠른 발을 이용한 야구가 급이 높은 야구라고 생각했고, 루스의 홈런위주의 스타일에 대해서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기자가 루스의 인기를 빌미로 콥을 살살 긁었고, 열받은 콥은 자신이 홈런을 '못'치는게 아닌 '안'치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선언한 뒤 2경기에서 5개의 홈런을 기록하였고, 그 시리즈 3경기에서 19타수 12안타 5홈런을 기록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뒤, 다시 자신의 스타일로 돌아갔다. 이렇게 루스에 대해 비판적인 콥이었지만 인터뷰에서 최고의 타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베이브 루스의 이름을 꺼냈다. 그래도 자신의 몇 수 아래로 보았다...
한편, 그는 지금까지도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지만 타이 콥은 니그로 리그에서 활동하던 선수들과도 친했고, 콥의 주변 흑인 중에 자신의 아들 이름을 타이 콥의 이름을 따 짓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또한 콥은 전설적인 흑인 포수 로이 캄파넬라와 윌리메이스에 대한 찬사를 한 적도 있으며, 스포츠 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흑인 선수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등 인종차별과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단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많던 조지아 출신과 흑인, 백인 안가리고 싸우는 다혈질적인 모습이 합쳐져 만들어진 오해였다.
외야수(OF) 조 잭슨(Joseph Jefferson Jackson)
13시즌 0.356 0.423 0.517 1772안타 54홈런 792타점 873득점 202도루 wrc+165 fwar 60.5 bwar 62.1
1911년 147경기 0.408 0.468 0.590 233안타 7홈런 83타점 126득점 41도루 wrc+184 fwar 9.3 bwar 9.2
맨발의 조 잭슨.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전설적인 타자이자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영구제명된 비운의 사나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평생 문맹으로 살았던 조 잭슨. 어렸을 적 투수를 하던 그는 패스트볼로 다른 선수의 팔을 부러뜨렸고, 아무도 그의 공을 받으려고 하지 않아 외야수로 전향했다.
그는 전무후무한 신인 4할 타율을 달성했고, 역대 3번째로 높은 통산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는 잭슨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별명인 "맨발의 조 잭슨"은 마이너리그 시절 신발이 잘 맞지 않아 물집이 잡혔고, 양말 차림으로 타석에 들어섰다가 관중에게 "shoeless son-of-a-bitch"라는 욕을 들어먹고 생겼다고 한다...
그의 타격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베이브 루스도 깔 본 타이 콥 마저 조 잭슨의 타격실력만큼은 인정했다고 한다. 타이 콥과의 일화는 하나 더 있는데, 어느 날 조 잭슨과 마주친 타이 콥은 그에게 사인을 요청했고, 감동받았지만 문맹인지라 사인이 없던 조 잭슨은 도장을 가지러 가기 위해 콥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으나, 콥이 시간이 없어 결국 그냥 헤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리그 최고의 타자였던 그에게 엄청난 시련이 찾아오는데,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단체로 승부조작에 가담한 블랙삭스 스캔들이 터지면서 메이저리그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고, 조 잭슨도 이에 휘말려 영구제명을 당하게 되면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1919년 월드시리즈 8경기에서 무려 0.375의 고타율과 수비에서 5번의 어시스트를 하는 맹활약을 펼쳤고, 문맹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입으로 돈을 받긴 했으나, 조작은 하지 않았다고 언급하며 신빙성에 의혹이 생겼고, 수준급의 수비를 자랑하던 그가 있던 좌익수 방면 3루타가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 사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재조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복권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