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진총후(陳寵厚)는 고려 예종 때 호분위대장군(虎賁衛大將軍)을 역임했으며,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에 오르고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여양(驪陽)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의 고려시대 지명이다.
진총후의 아들 진준(陳俊)이 병졸에서 승진하여 고려 명종(明宗)조에 참지정사(叅知政事)·판병부사(判兵部事)에 이르렀다.[1]
진준의 손자 진식(陳湜)·진화(陳澕)·진온(陳溫)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진식은 벼슬이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이르렀고, 진화는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선발되어 우사간(右司諫)·지제고(知制誥)를 지냈으며 지공주사(知公州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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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고 존나 멋있는거 같아서 와이프한테 말했더니 와이프 것도 찾아보래.
그래서 전주 이씨 쳐보니까 뭐가 존나 길게 나와. 근데 한줄로 요약 가능함.
즉, 상신(相臣:三議政) 22명, 문형(文衡:大提學) 7명을 배출하여 타씨족을 압도했으며, 문과 급제자 873명을 내어 이씨의 문과 급제자 총 3,190명의 27%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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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조부랑 외조부 제적등본떼서
증조부 증조모 성함이랑 첨 알았는데
어느집안의 자손들인지 과거에 무엇을 하셨는지는 몰라도 엄청 묘한 기분들던데
세계사에 한획을 그은 사람의 자손은 어떤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