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창작물에서 저평가로도 모자라 폄하까지 받은 최고의 피해자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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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9 12:39
이 인물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는데 간략히 살펴보면,
주) <제목> 색에 따라 검은색은 서황전에서, 주황색은 무제기에서 출처한 것입니다.
<본래 원소 휘하였지만 조조에게 귀부하는 대목>
주령이 이끌던 사졸들도 그를 흠모하여 모두 주령을 따라 남았다.
그 뒤 주령이 호장(好將-좋은 장수)이 되어 그 명성이 서황에 버금갔는데,
관직이 후장군(後將軍)에까지 이르렀고 고당정후(高唐亭侯)에 봉해졌다.
<기주 평정 이후 반란을 제압하는 대목>
태조가 기주(冀州)를 평정한태조가 기주(冀州)를 평정한 후 주령을 보내
신병(新兵) 5천 명과 기마 1천 필을 이끌고 허현의 남쪽을 지키게 했다.
(중략)
주령이 양적(陽翟-예주 영천군 양적현)에 도착하자 과연 중랑장 정앙(程昂)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즉시 정앙을 참수하고 장(狀-문서의 일종. 장계)을 올려 고했다.
<동관전투에서의 활약>
“적이 동관을 지키는데 만일 내가 하동(河東)으로 들어가면
적은 필시 군을 이끌고 나루터들을 수비할 것인 즉 서쪽으로 황하를 건널 수 없었을 것이오.
나는 이 때문에 대군을 동관으로 향하게 한 것이오.
이에 적이 전군으로 남쪽을 지켜 황하 서쪽의 방비가 허술하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두 명의 장군(서황, 주령)이 서하(西河-황하 서쪽)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오.
(창작물에서는 서황의 단독 행동으로 나오지만 사실 둘이 한 것)
<장로 토벌전>
3월, 공이 서쪽으로 장로(張魯)를 정벌해 진창(陳倉)에 이르렀는데,
장차 무도(武都)로부터 저(氐)로 들어가려 했다. 저인(氐人)들이 길을 막자 먼저 장합(張郃), 주령(朱靈) 등을 보내 공파(攻破)했다.
<위 문제(조비) 시기 식읍을 늘리며 주령을 칭찬하는 대목>
“장군은 선제(先 帝-이전 황제 즉 조조)를 좌명(佐命-제왕을 도와 정권을 세움)하며
여러 해 동안 전병(典兵)했으니, 그 위엄은 방(方-방숙), 소(邵-소호. ‘召’로도 표기)를 뛰어넘고
그 공(功)은 강(絳-강후絳侯 주발), 관(灌-관영)보다 뛰어나도다.
옛 문적과 도서들의 아름다운 일들을 헤아려보더라도 어찌 장군보다 더하겠는가?
[사료 출처: 파성넷]
요약하자면,
원소 휘하였지만 군사를 이끌고 조조에게 귀부했고 기주 반란도 제압했으며
마초와 대결하는 역사적 한타 동관전투에서도 서황과 함께 활약했고
장로 토벌 당시에도 종군해 장합과 함께 공을 세움.
그 공을 인정받아 제후까지 오르는 인물임.
하지만 연의를 비롯한 창작물에서는
-신삼국 -
똥멍청이라 유비에게 속아 군사를 다 내주고 옥새 셔틀 1이되어
왜인지 모를 단짝 노초와 함께 맨날 참해지는 불쌍한 인물
코에이 삼국지에서도 쓸모없다고 하야시키거나 참하는 인물
으로 변한다.
하지만 역사상에서는 당당한 조조의 숙장이었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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