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까지 신묘했던 이순신 장군
(1)
새벽 꿈이 매우 번거로워 다 말할 수가 없다. 덕(德)이를 불러서 대충 말하고 또 아들 울(蔚)에게 이야기했다. 마음이 몹시 불안하다. 취한 듯 미친 듯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이 무슨 징조인가!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종을 보내어 소식을 듣고 오게 했다.
- 1597년 4월 11일자 일기.
이틀 뒤인 13일에 어머니의 부고가 도착함.
(2)
꿈에 원균(元均)과 같이 모였다. 내가 원균(元均)의 윗자리에 앉아 음식상을 받자 원균(元均)이 기쁜 빛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가 없다.
- 1597년 7월 7일자 일기.
이걸 좀 더 쉽게 풀이해 보자면 임란 내내 자신과 앙숙이었던 원균이 뜬끔없이 자신의 밑자리에 있고
그런 원균에게 이순신이 상석에서 음식상을 받자 원균이 기뻐했다는 개꿈을 꿨다는 뜻인데
혹자는 원균의 미소가 "이순신 당신이 옳았소!"라는 자조적인 의미로 자아낸 것이라고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7월 16일에 칠천량 해전이 발생하고 그 소식을 이순신은 이틀 뒤인 7월 17일에 듣게 됨.
(3)
홀로 수루의 마루에 앉았으니 그리움을 어찌하랴! 비통할 따름이다.
이날 밤 꿈에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 1597년 8월 2일자 일기.
이 꿈을 꾸고 다음 날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를 맡으라는 교지를 받았음.
(4)
이 날 밤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일러 주었다.
- 1597년 9월 15일자 일기.
다음 날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일본군을 격파함.
(5)
사경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던 중 말이 발을 헛디뎌 냇속으로 떨어졌으나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막내 아들 면(葂)이 나를 껴안는 듯한 형상이 보이는 듯 하더니 잠에서 깼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었다.
- 1597년 10월 14일자 일기.
이 꿈을 꾼 바로 그 날, 이순신은 아들 이면이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는 통지서를 받는다.
+++++++++++++++++++++++++++++
꿈마저도 하나같이 신묘했던 이순신 장군.
Bes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