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국대 주장 시절 박찬호 군기잡은 일화
2006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둔 한국 대표팀 버스 안. 갑자기 벼락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희 둘, 앞으로 존댓말 쓰다 나한테 걸리면 X진다(혼난다). 잊지 마라. 그리고 찬호 너는 말 할 때 ‘암~’ ‘암~’ 좀 하지 마라”
모두가 깜짝 놀라 바라본 곳에는 이종범 당시 대표팀 주장이 앉아 있었고 양 옆으로 투수 박찬호와 외야수 송지만이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크게 터진 목소리와는 달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화를 내기 전부터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종범이 짐짓 화가 난 척했던 것은 박찬호와 송지만이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73년생 동기지만 아마추어에선 이렇다 할 교류가 없었다. 송지만이 프로에 왔을 땐 이미 박찬호가 미국으로 떠난 뒤였다.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서로 어색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정상에 서 본 적 있는 선수가 아닌가. 서로를 될 수 있는 대로 피해 다녔고 어쩔 수 없이 부딪히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존댓말부터 꺼냈다.
이종범은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안 든 것이 아니라 이런 분위기라면 국제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종범은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다녀 왔다고 해서 특별 대우를 원한다거나 남다른 행동을 하면 내가 앞장서서 혼을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대표팀 문화에 빠르게 적응했고 나중에 농담도 제법 할 정도로 동료, 선.후배들과 잘 지냈다. 큰 대회는 조직력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상대적인 전력이 뒤질 떈 더욱 그렇다. 어찌 됐건 송지만과 박찬호는 그 이후 말을 트기 시작했고 우리 대표팀은 잘 아는 것처럼 4강 신화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