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청자는 이세계 주민들


첫 방송부터 대형 방송인들도 놀랄 만큼의 시청자가 있다는 행운도
이 하꼬 플랫폼의 후원이 골드니 실버니 쿠퍼니 하는 단위인 것도
인방을 시작한 지 반 년이 되고 나서는 점점 익숙해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좋은 밤이네요"
- 좋은 밤입니다,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하길
- 광대, 오늘은 어떤 걸 보여줄테냐
- 오늘도 재밌는 이세계 이야기 들려달라고!
- 이세계음식 먹방 언제 함?
내 시청자들이 단체로 컨셉충이다
RP라고 부르는 거 같은데 그건 방송인이 잡는 컨셉이 아니었나?
직장 때려치고 간단히 게임방송이나 하려고 했던 건데
시청자랑 채팅이 전부 판타지 세계 컨셉인 건 너무 빡세다고
"네네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먹방은 오늘 돈가스 주문했으니까 그거 먹는거 보여드릴게요"
- 마신님께서 강림하실텐데 여신의 가호?
- 돈가스?
- 돈가스라는 건 뭘까?
- 이교도새끼 차단 좀
- 저번엔 별 거 아니라는 것 처럼 말하면서 설탕 잔뜩 쓴 거 먹던데
- 와 귀족인가?
또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잖아
그냥 나 할 거 하다 보면 알아서 조용해지니까 무시하자
"다들 선거는 하고 오셨나요?"
- 선거?
"그러니까 대통령 선거 말이에요"
- 선거가 뭐임
- 선거가 뭔지 말을 해 줘야 알지
- 대통령은 뭔데??
- 방장 선 거 ㅗㅜㅑ
- 방장 선거 와랄랄라 할 생각 하니까 꼴리네
컨셉을 너무 빡세게 잡아서 그런지
뭘 할 때마다 당연히 알고 있을 걸 다시 설명하고 있으면 좀 현타가 온다
심지어 내가 잡은 컨셉 조차 아니고
"그러니까 대통령이라는게 뭐냐면요..."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선거랑 대통령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니까
채팅창이 점점 느려진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 황제: 국가를 다스리는데 평민 따위가? 선출?
- ...
- ...
- (눈치...)
저 황제라는 새끼는 오늘도 왔구나
컨셉 잡는다고 채팅창을 통제 하지를 않나
심지어 저 새끼가 채팅창에 보이면 그 날 채팅창 텐션 전체가 가라앉는다
이대로면 저 황제라는 놈이 채팅창에서 좆목질을 하는 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닉네임 마냥 황제처럼 후원이나 쏴주면 또 몰라
...여기서 대통령에 대해서 뽕 차게 설명해주면
컨셉질 하는 시청자들이 단체로 황제라는 놈 무시하지 않을까?
좋아, 오늘은 민주주의랑 공화정에 대해서 설명해보자
"여러분이 대통령이랑 선거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 같으니까 오늘의 컨텐츠는!"
호감고닉 황제 공개 고로시 컨텐츠를 하는 걸로
"나무위키에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찾아보는 걸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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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마법으로 방방곡곡 퍼진 '민수'라는 자의 방송
어제 대통령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정신이 혼미해졌던 황제는 아침부터 귀찮은 보고를 들었다
"...다시 한 번 보고하라"
"어제의 방송 이후로 황녀님의 정통성이 의심된다는 소문이 저잣거리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황제 자식이 정통성을 의심받으면 뭐가 더 정통하단 말인가!"
"그것이... 여태까지의 행적들을 종합한 뒤에 모든 백성들과 귀족들의 의견을 통합하여 새 황제를 인정해야 하는지 정해야 한다고..."
"왜? 아예 지금 황제도 투표로 갈아치우자고 하지!"
"폐하, 그저 저잣거리의 풍문 정도입니다,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제 방송 이후로 나온 소문이면 황성 바로 앞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거 잖나! 바로 코 앞에서!"
왜 저놈의 방송이라는 건 뜬금없이 튀어나와선 골머리를 이렇게도 아프게 한단 말인가
심지어 여관이나 주점, 교회, 심지어 마을 광장처럼
사람이 좀 모인다 싶으면 자동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니 막을 수단조차 없다
그저 먼 세계의 지식들에 최대한 빨리 적응하도록 준비할 수 밖에
황제는 아픈 머리를 붙잡고 말을 이었다
"그, 저번에 말 했던 산업혁명이나 대항해시대, 그런 이야기나 더 해주면 좋지 않은가"
"대영제국이라는 그 나라 이야기 말씀이시군요"
"그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니 얼마나 멋있는가"
"그걸 이룩하려면 확실히 기계의 발달이 빨리 이뤄져야 가능할거야"
"마탑주가 드워프들과 협력해본다 하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얘기하는 김에 그 증기기관인가 하는 그거 설계도도 좀 보여주고!"
대신은 '그건 좀 재미 없을 거 같은데...' 같은 생각을 접어두고서 보고를 이어갔다
"그리고 왕국에서 국경으로 징집병들이 모이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그 놈들은 농사도 안 짓는단 말이냐..."
"불평해도 소용 없겠지, 각 지역으로 징집관들 보낼 준비하고 군량의 비축량, 병장기 보유량에 대해 파악한 뒤 보고하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상적인 보고와 서류처리가 끝나고 난 뒤
오늘도 방송은 마치 해가 뜨고 바람이 불 듯이 이어진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황제는 불안과 기대로 가슴을 졸이며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컨텐츠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이보기 입니다!」
며칠 뒤, 황제는 옆 왕국에서 농민봉기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