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98명 해고한 아파트? 실상은···"11명 더 늘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관리비 부담 늘까봐 근무시간 줄여
월급 65만원가량 줄자 경비원 110명 중 98명 자발적 퇴사
아파트 측 “98명 충원하고 전문경비업체 11명 늘어”
“내년 1월부터 경비원 월급이 185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줄어듭니다. 기존 경비원 98명이 퇴사하는 바람에 새로 충원했습니다. 경비 인력은 오히려 11명 더 늘었습니다.”
지난 21일 부산 LG 메트로시티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실에서 만난 유정기 입주자대표 회장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최근 경비원 98명을 해고한 ‘잔인한(?)’ 아파트로 언론에 보도된 게 억울하다고 했다.
단일 아파트 단지로는 국내 두 번째로 큰 LG 메트로시티(7374세대)는 경비원 110명이 근무한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의 근로시간을 줄였다. 월 235.73시간에서 월 159.69시간으로 근무시간(하루 평균 7.8시간→5.3시간)이 줄자 월급 또한 65만원 가량 줄었다. 기존대로 월급을 주게 되면 가구당 관리비로 연간 4만 5000원을 더 내야 한다.
유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관리비 부담이 느는 것을 막기 위해 경비원의 근로시간을 줄였다”며 “월급이 줄자 자발적으로 경비원이 퇴사한 거지 해고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퇴사한 98명은 다른 경비원으로 모두 충원했고, 전문경비업체인 ‘에스원’에 24시간 경비를 맡기면서 경비 인력 11명을 추가 고용했다”고 덧붙였다. 내년 1월부터 LG 메트로시티 경비원은 110명에서 121명으로 늘어난다. 임금은 삭감했지만, 일자리는 더 늘린 셈이다.
내년부터 기존 경비원은 택배 정리, 재활용 분리수거와 음식물쓰레기 정리, 단순 민원 처리 업무를 맡는다. 오전 8시 출근해 오후 10시 퇴근하고 격일 근무한다. 하루 평균 5.5시간 근무한다. 같은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미화원의 근무시간과 동일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년부터 미화원 월급은 11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10만원가량 오른다. 이 아파트에 근무하는 미화원은 총 72명이다. 유 회장은 “미화원들은 경비원이 근무 강도는 약한데 자기들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아왔다고 불만을 표해왔다”며 “미화원 입장에서는 불평등 요소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경비원의 야근 근무가 없어지면서 발생하는 경비 공백은 경비업체에 맡긴다. 공개입찰에서 ‘에스원’이 낙찰됐다. 그동안 최대 2000세대까지 맡아봤던 에스원은 입주자대표회의 측에 아파트 내 차량 차단기 설치를 요구해왔다고 한다. 아파트 대지면적 32만㎡에 외부 차량까지 드나들어 안전사고와 범죄 발생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 문제는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지난 8월 공문을 보내 지적하기도 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 10월부터 주민 공청회를 4차례 열었다. 이후 주민 찬반투표를 실시했고, 75.2% 찬성으로 아파트 단지 내 통합경비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통합경비시스템은 아파트 단지 내 도로 진입 구간 9곳에 차량 차단기를 설치하고, 전문경비업체와 계약을 체결해 경비를 맡기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그동안 LG 메트로시티 내부 도로는 왕복 4차로에 신호등까지 갖춰 사실상 공용 도로 역할을 했다. 외부 차량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도로, 시설물 파손이 심해지고, 불법 주정차가 넘쳐났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지난 21일에도 아파트 내 상가 인근은 물론 초등학교 주변으로 불법 주정차가 넘쳐났다. 심지어 택시 차량 6대가 줄지어 서 있고, 택시기사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LG 메트로시티아파트 박용한 입주자대표회의 총무이사는 “주말에는 이기대 등산을 하는 관광객 차량이 아파트 내 도로 한쪽에 즐비하게 주차돼 있다”며 “지하 주차장에는 외부 차량은 물론 버리고 간 대포차가 넘쳐 난다”고 하소연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차량 차단기가 설치되면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결하고, 도로 파손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아파트 주차장을 외부인에게 유료 개방해 아파트 운영비로 충당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박 이사는 “경비원 해고에 언론보도가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상은 아파트 내 불법 주정차와 최저임금 인상이 얽히면서 통합경비시스템 도입을 결정하게 된 것”이라며 “아파트 주민의 복지 차원에 이뤄진 결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경비원들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일방적인 결정에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이 든다고 했다. 이 아파트에서 4년간 경비원으로 근무한 이모(65)씨는“해운대 인근 아파트에서 월 220만원 준다 해도 안가고 이 아파트에서 월 185만원 받으면서 일해왔다”며 “갑자기 월 100만원 수준으로 월급을 줄이라는 건 나가라는 말밖에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휴게시간이 점심 2시간, 저녁 1시간 30분으로 턱없이 길게 책정해 월급을 적게 주는 꼼수를 부린다”며 “경비원의 생계는 아랑곳않고 일방적으로 근로시간 감축을 결정한 입주자대표회의에 배신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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