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가 플립제로 EV 리뷰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길에 입문한 지 어언 15년, 그러나 손으로 모든 작업을 해왔던, 석기시대만도 못한 미개인이 도구 문명을 받아들인 건 첫 일본 여행 때 아키하바라에서 플립홀 화이트를 구매한 2015년이었습니다. 개화기를 늦게 맞이하였지만, 그동안 플립홀 화이트, 플립라이트 블랙(그래요, 사람은 실수도 하면서 발전하는 겁니다.), 플립홀 블랙, 플립제로 화이트를 거치면서, 자위전사 텐가맨을 빠짐없이 보면서, 저와 제 주니어는 인류 기술의 위대함을 빠르게 배워 나갔습니다. 기술은 결국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번에 플립제로EV가 나왔을 때 주저 않고 질렀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일본 직구가 아닌 텐가코리아에서 처음 구입한 물건이었어요.

네... "해봤어?"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을 본받아 야심차게 시도했습니다만, 하나 중요한 걸 까먹었습니다. 벤처 기업가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요. 이번에는 내구성이 문제였습니다. 제 고간에 달린 게 샤를 드 골 같이 장신이거나 조지 패튼 같이 난폭한 껄떡장군도 아니요, 그냥 신길동에서 징병검사 현역 받고 입대한 소총수 김일병인데, 이런 평범한 제 물건에 첫 사용으로 망가진 걸 보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부실하다고 느꼈습니다. 플립라이트 이후 두 번째 큰 실수를, 그것도 이전보다 서너 배나 많은 수업료를 내면서 한 건가 하고 낙담했지만, 이번에는 공식 리테일러에서 산 겁니다. A/S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 해주겠죠!

실제로 고객지원은 여윾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첫 사용 중 한쪽 로터가 작동하지 않아 문의를 했더니 바로 새 제품을 보내주면서 "배송 전 이쪽에서 포장을 뜯어 불량 여부를 테스트할 건데 괜찮겠냐."는 친절함까지 보여주었습니다. 평소에도 인터넷에서 주문한 물건 절반은 어딘가 깨져서 왔기 때문에, 내일의 기쁨을 따따블로 누리기 위해 하루쯤은 기꺼이 금딸을 할 수 있었죠.

그 다음에 온 교환품. 포장을 예쁘게 뜯은 흔적이 보였고, 진짜 테스트를 한 물건답게 사용 전 구동해봤더니 두 명의 워보이는 당장이라도 임모탄 님을 만나려고 하는지 미친 듯한 파워를 보여줬습니다. 하루 묵혀둔, 한창 맛있을 때의 겉절이 같은 우리 막대기 친구를 깨워 무료증정 홀로션의 힘을 빌려 스무스하게 넣었습니다. 랜덤한 진동에 맞추어 리드미컬하게 인앤아웃을 하던 도중, 끝에 있는 딥 임팩트 엔진 부분이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작동을 멈추었습니다. 그러고 곧 나머지 하나도 허무하게 숨을 거두더라고요. 내가 아직 안 갔는데 너희가 먼저 가면 어떡하니... 결국 고객센터에 두 번째 글을 올리고 응답 전화를 기다리며 이 글을 씁니다.

아까 장황하게 인류의 발전 운운했는데, 사람이라면 분명 언젠가 실수를 합니다. 플립라이트도, 그걸 산 과거의 저도 값비싼 대가를 치렀죠. 하지만 실수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 발전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플립라이트 때처럼 욕하고 집어던지기에는 20만 원 넘는 돈도 아깝습니다. 이번에 텐가코리아에서 사실상 리콜을 한다고 하니, 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름의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플립제로EV를 안 써본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플립제로의 두 엔진/바이브레이터/로터는 바큠을 위해 누르는 '버튼'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상단 진동 컨트롤 버튼이 아니라 수동으로 눌러 내부 공기를 빼는 부분입니다. 배터리와 컨트롤러는 건조대 겸 고정장치 역할을 하는 U자 모양의 탈착 부분에 있습니다. 전력은 그 U자 모양 탈착부와 플립제로EV 상단의 금속 단자를 통해 연결되는데, 이 홀 측에 달린 단자는 또 실리콘 젤 내부 전선을 통해 양쪽 엔진으로 연결되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그 젤 내부에 있는 배선이 상당히 부실하다는 겁니다. 실리콘 재질인 젤은 신축성이 있지만, 전선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나마도 상당히 얇고 견고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칼국수 이어폰 케이블인데 굵기는 일반 케이블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전선과 엔진이 연결되는 부분이, 바큠을 위해 양옆을 누르거나 왕복운동을 하면서 잘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텐가에서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바큠 버튼과 플라스틱 하우징을 연결하는 플라스틱 스프링 지지대를 젤에 심어 두었습니다. 바큠 버튼을 과하게 누르면 거기에 부착된 엔진 배선이 손상될 수 있으니, 지지대로 버튼 움직임을 제한하고 전선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킬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구성이 심히 좋지 않습니다. 파워풀한 진동음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렸던 뚜둑 소리는 바로 이 지지대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바큠 버튼을 과하게 누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소프트한 젤이 주가 되는 제품에 하드와이어링을 시도했다 텐가는 참으로 하드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대안 없는 비판은 저도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 사용자 3년 짬으로는 오랫동안 쾌감을 연구해 온 텐가에게 시시콜콜 훈수를 둘 순 없습니다. 전원부는 홀 외부 하우징에, 구동부는 홀 중앙 바큠 버튼에 있고, 그 사이에 신축성 있는 실리콘 젤이 있는 이상, 전원부와 구동부를 어떻게 견고하게 연결하는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무선 로터도 있는 마당에 둘을 무선으로 연결해도 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충전은 훨씬 복잡해지고 무엇보다 단가가 더 오르겠죠. 아직 일본 사용자 리뷰를 인 읽어봤지만, 이 문제가 국내에서만 발생한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고,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라면 아쉽지만 야심과 포부는 좋았던 물건으로 남겠군요.

이미 플립라이트에 너무 크게 데여서 이번 플립제로EV는 그렇게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습니다. 다른 화이트 제품과 같이 부드럽게 감싸는 느낌으로 만들어져 자극이 강하지는 않지만, 진동으로 인해 우리 김삿갓이 저릿저릿해지는 감각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저린 느낌이 약간 사정감을 늦춰주는 효과도 있는 것 같은데(취향에 따라 홀에 그런 게 왜 필요하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간에 진동이 끊겨 기분이 식어버려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똘똘이가 호강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