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료기관에 손배 청구"…의사협회 "현장 의료진 철수 권고" 발끈
정부, 요양벙원·분당제생병원 관련 손해배상·형사고발 검토
의협 "정부·지자체 감염확산 책임 의료진 과실로 돌려"주장대한의사협회가 성명을 내고 정부의 의료기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방침에 대해 현장 의료진 철수를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진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 대책본부 전문위원회 기자간담회'가 진행되는 모습. (대한의사협회 제공) 2020.3.15/뉴스1
(서울=뉴스1) 성재준 바이오전문기자 = 정부가 관리 소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을 초래한 요양원 등 의료기관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방침을 밝힌데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코로나19 방역현장의 의료진 철수 권고를 언급하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의사협회는 23일 성명을 통해 정부가 손해배상 청구 및 형사고발을 거론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코로나19 현장에 자원한 의료 인력들에 대한 철수를 권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감염 확산에 대한 책임을 의료진과 의료기관의 과실로 돌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 20일 윤태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요양원·요양병원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다음의) 내용을 위배해 코로나19의 집단감염을 초래할 경우 코로나19 피해에 대한 손실보상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귀책사유에 따라서는 환자 치료비에 대한 구상권 청구까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최근 코로나19 감염자의 접촉자 명단 누락을 이유로 분당제생병원에 대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형사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를 언급했다.
이에 의사협회는 "국민 건강을 위한 사명감으로 묵묵히 봉사중인 의료인들에 대한 배신이며 몰염치한 작태"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또한 의사협회는 우리나라가 국제적 모범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시민들의 솔선수범과 의료진 및 의료기관이 휴업과 폐쇄로 인한 피해에도 국민건강을 위한 사명감으로 몸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사협회는 정부를 향해 탁상공론식의 관치행정을 버려야 한다며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더 이상 의료인 및 의료기관들에 솔선수범을 요청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 다음은 대한의사협회 성명서
배은망덕한 토사구팽, 즉시 철회하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요양병원이 명령을 위반해 집단감염이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코로나19 감염자의 접촉자 명단을 누락했다며 분당제생병원에 대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운운하면서 형사고발하는 한편 손해배상 청구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자 그대로 은혜를 배신하고 베풀어 준 덕을 잊는 몰염치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감염병 방역의 본질은 주체인 국가가 감염원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1월 말부터 대한의사협회의 지속적인 권고에도 불구하고 감염원 유입을 차단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9,000명에 육박하는 확진자 수와 100명이 넘는 무고한 국민의 죽음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단 한 번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사과하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섣불리 종식을 말하고 나아가 행사를 하자며 국민을 위험으로 내몰고 뒤늦게 방역의 주체는 국민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비록 방역에 실패했지만 사회 질서 유지와 피해 최소화로 우리나라가 국제적 모범으로 평가 받는 이유는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민이 솔선수범하고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몸을 아끼지 않은 덕이다. 특히 의료진은 스스로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자가격리될 수 있음에도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의료기관은 휴업과 폐쇄로 인한 피해를 감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으로 묵묵히 이 신성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선별진료소나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그것도 증상이 없는 동안에도 전파력을 가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바이러스로부터 내원 환자와 입원 환자를 지키기 위해 모든 의료인과 의료기관들이 두 달 가까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심각한 번아웃(burn out)을 호소하고 의료기관은 경영난에 허덕이면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일제히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의료진과 의료기관의 과실로 돌리고 형사고발과 손해배상을 운운하며 책임을 전가하려 들고 있다.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놨더니 짐 보따리 찾아내라는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이나 다름없다.
탁상공론식의 관치행정과 불호령으로 감염병을 막을 수 있다는 그 황당한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도와달라고 읍소할 때는 언제고 한숨 돌렸다고 하여 다시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민간에게 군림하는 것도 모자라 책임을 전가하고 면피하려 드는 광경이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의병장들에게 누명을 씌우던 썩은 관리들을 연상케 한다.
정부의 전문가 단체 무시와 장관의 잇단 실언으로 이미 의료계는 정부에 대한 기대를 버린지 오래다. 그럼에도 자리를 지켜온 이유는 오로지 의료인으로서의 본분 때문이다. 내가 지키지 않으면 어디에선가, 누군가 희생될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일부 지자체가 이러한 토사구팽을 자행한다면 대한의사협회도 더 이상은 의료인과 의료기관들에게 솔선수범을 요청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제는 스스로 보중(保重)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을 권유할 수밖에 없다. 현장에 자원하고 있는 의료인의 철수를 권고하고, 코로나19 사태를 오로지 국공립의료기관과 보건소의 힘으로 극복하도록 할 것이다. 또, 민간의료기관은 더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오직 내원과 입원환자 및 소속 의료인의 보호에 충실하도록 권고할 것이다.
2020.3.23.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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