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는 이영훈 교수 팩트체크
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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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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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명예교수 추대 명단에도 없고 회비납부자 명단에도 이름이 없다고 함 ㅋㅋ
즉, 서울대 명예교수 아니라는 말.
KCI 등재된 거 위주로만 찾아봐도 수백편은 나오는데..
그리고 저 사람은 연구방법 자체가 글러먹은지가 이미 오래야..
몇개만 알려줘?
일단 우리나라 1910~20년대 농촌경제 관련해서 전반적으로 다룬것 중에 기본은
1. 朴慶植,<<日本帝國主義의 朝鮮支配>> 이거 국립도서관 같은데 가서 찾아봐, 그 악독하다는 조선 말기보다 1915~20년 사이에 농민 1호당 국세, 지방세 부담액이 2~6배 증가했다는거 당시 일본 관보 그대로 발췌해놓은거거든.
2. 金容變, <日帝의 初期 農業植民策과 地主制> 여기서는 아마, 저 사람이 일부로 빼놓은 자료가 많을걸. 저 사람이 주장하는건 지주와 소작인의 착취가 심했던거지, 조선과 일본과의 무역은 제가격에 이루어졌으므로 수출이라는건데, 여기서 저 사람이 알면서 배제시킨건, 당시 이미 대지주 비율자체가 일본인이 훨씬 높다는 것과 조선인은 소작농의 비율이 앞도적으로 높다는 것이고, 고로 지주와 소작농의 착취관계가 민족의 착취로 연결된다는거지. 그런데 그냥 국가대 국가 무역비율이 증가했으므로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다?
몇글자 인용해줌 [일본인이 한국에서 토지를 매수하는 가격은 일본에 비해 대체로 1/30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소작료는 고율이었으므로 지주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일본인 지주는 조선을 합병하기도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2,254명이 69,311정보를 소유하였다. 합병 이후인 1915년에는 총독부를 제외한 일반 일본인들이 20만 6천정보까지 소유하였다. 이들 일본인 지주가 전체 경작지의 50.4%를 소유하는 극단적인 불균등한 토지소유관계가 자리잡게 되었다.]
사실 반박할게 너무너무 많아서, 그냥 무시하는거야
환단고기를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하나하나 반박하는거 봤냐?
저 사람은 그냥 경제성장률이 올랐다, GDP가 증가했다 이런 존나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마치 일제강점기가 잘살았따는 식으로 해석하는거고
실제로 있었던 사회경제적인 소작규정, 강제적인 품종개량, 모든 농사 단일화, 육지면으로의 강제개량 등등등등 말하자면 끝도 없이 불합리한건 제외하고 있기때문에 그냥 시비 안거는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