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교사 1년 생존기.txt (장문, 스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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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0 11:23
나는 26살에 대학 졸업 예정자의 신분으로 교사 임용 시험에 응시했다. 첫 도전이었고, 한 번에 합격을 거머쥐었다. 인생에 몇 안 되는 자랑스런 순간이었다. 합격 소식에 부모님은 우셨고 친한 친구들도 육두문자로 축하해주었다. 그래 분명히, 이건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초수 합격이라는 건 얼마나 숨 가쁜 대학생활을 보냈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최종 합격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생각에 그대로 쓰러졌다. 탈진한 것이다. 그러자 죽을 만큼 뛰기 싫었는데도 내 안의 절규를 무시하고 뛰고 또 뛰었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도서관 구석탱이에서 그 지옥 같은 대학 생활을 얼마나 저주했었는지. 결승선 언저리에 누워 가쁜 숨을 헥헥대며, 대학 생활 내내 해본 게 공부밖에 없는 나는 생각했다. 조금만 쉬자. 제발. 그러나 곧이어 불안감이 내 얼굴을 드리웠다. 그런데 과연, 쉴 수 있을까? 사회 초년생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던 터였다. 어쩌면 내가 누워 있는 곳이 결승선이 아니라 출발선이라는 공포가 엄습했다.
합격 소식을 확인하자마자 부랴부랴 공무원 신체검사를 받고, 각종 채용 서류를 구비하고, 교육청에 서류를 제출하고, 신규 교사 연수를 받고, 미리 학교에 가서 업무 분장을 받고, 남은 시간 절망적으로 업무 매뉴얼을 읽고, 대학교로 올라가 졸업식을 마치고, 최종 합격이 채 한 달도 안 되어 바로 학교 일을 시작했다. 처음 학교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교무부장님께서 건네준 업무 분장표를 받아 들었더니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업무 목록들이 눈에 들어왔다. NEIS 권한 부여, 학생 학적 관리, 학교생활기록부 관리, 방학 계획 수립, 월중 계획 수립, 청렴 교육 업무, 졸업 및 진급 처리, 신입생 예비 소집 업무. 음.......이걸 내가 다 하나? 뭔가 좀 많은데? 인수인계 제대로 받으면 되겠지? 허나 인수인계는 30분 만에 끝났다. 그때 도망쳤어야 했는데. 음......30분만에 인수인계가 끝나네? 생각보다 단순한가 본데? 단순한 건 내 지능이었다. 나는 이미 X되고 있었다.
3월, 매일 아침 8시 전에 출근 했지만 저녁 8시 전에 집에 들어가 본 기억이 없다. 아무 것도 모르는 중학생들 앞에서 훨씬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모르는 핏덩이 선생 하나가 스스로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교실을 들락날락거렸다. 그렇게 바보 짓거리를 하고 쉬는 시간이 되어 교무실로 돌아오면 교무실용 메신저에 쪽지가 열댓개씩 쌓여있었다. "이번 주까지 마무리 부탁드려요!", "다음 주까지 마무리해주세요!" 내용은 죄다 마무리해야할 업무들을 공지해주는 것이었다. 학교는 말도 이상하게 했다. 기안문? 상신? 회수? 기결 취소? 결재 라인? 41조 연수? 선생님들은 자기들만의 언어로 얘기하고 있던 것이었다. 행정 업무 용어들은 내게 제2외국어였다. 그렇게 학교라는 곳에서 외국어도 안 되는 국제 미아 신세로 교실과 교무실을 오갔다. 교무실에 앉아 있으면 식은땀이 났다. 오후 4시 30분, 퇴근 시간이 되자 선생님들은 하나둘씩 본인들의 하루를 마무리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옆에서 내 하루는 커녕 단 한 개의 업무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로 쩔쩔매고 있었다.
4월, 어김없이 저녁 6시가 지났는데도 교무실에 앉아 있었다. 내가 맡은 업무들의 전임자가 모두 휴직을 해버려서 어디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던 참에 인터넷에서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업무 지원단 카페'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아, 나의 빛,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드디어 물어볼 곳이 생겼구나. 나는 3, 4월동안 카페에서 게시글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남성 꿀알바를 홍보하는 광고충들도 나의 화력을 따라오지 못했다. 지원단 선생님들은 꾸역꾸역 내 게시글에 답글을 달아주셨지만, 내가 게시판에서 미쳐 날뛰자 급기야 업무 지원단 자문위원 선생님께 직통으로 전화가 와서 나의 신분을 밝혀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신규 선생님이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뭔 학교가 신규한테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으로 불리며 교사들이 NEIS로 각종 전산 업무를 작업한다.) 권한 담당자까지 시키네요, 참......쨌든 그렇게 일하시면 됩니다. 이해되신 거죠?"
"네, 진짜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거기다가 생기부 업무까지 시키는 학교도 있어요."
"저, 제가 생기부 담당입니다......"
"......혹시 담임까지 하시는 건 아니죠?"
"중1 담임입니다......"
"......XX중학교라고 하셨나요?"
"네......"
"......큰일이네 이거......"
그렇게 절망적인 통화를 끝내고 고개를 들었을 때 시간은 저녁 7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교무실에는 나를 포함하여 서너 명의 선생님들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창 밖에는 어둡기만 한 텅 빈 운동장 너머로 차들이 전조등을 밝히며 달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26살의 한 해가 일만 하다가 끝날 거라는 걸. 그런 깨달음을 얻은 때가 4월 초순이었다.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전화 통화를 나눴던 선생님을 NEIS, 생기부도 아닌 학적 담당자 연수에서 마주쳤을 때, 그 선생님께서는 양심 있는 일제 지식인이 대한 제국민들의 참상이라도 목격한 듯 통탄을 금할 길 없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 표정은 내 예감에 못질을 해대어 빼도 박도 못하는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5월, 6월, 7월. 퇴근 시간이 조금씩 앞당겨지기는 하였다. 7시 30분, 7시. 내 능력으론 거기가 한계였던 것 같다. 7시, 퇴근 시간 후 2시간 반은 교무실에서 잡일을 해야 그 날 하루가 끝났다. 집에 도착하면 8시. 그때 저녁을 대충 먹고 9시 즈음이 되면 잠이 쏟아져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 골아떨어지다가 새벽 3시 즈음에 눈이 떠지면 그때부터 수업 준비를 했다. 또 수업에는 욕심이 있어서 그 날 쓸 모든 학습지를 손수 다 만들었다. 그러다가 아침이 되면 출근을 했다. 그게 1년동안의 삶이었다. 누가 교사의 삶을 극강의 워라밸이라고 했던가. 내 1년은 워라밸붕, X까밸이었다. 결국 결승선은 출발선이 되고야 만 것이다. 그렇게 지친 마음으로 1년을 또 죽어라 달렸다. 구역질이 났다. 특히 6월에는 학기 초에 세웠던 평가 계획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여, 계획을 대폭 수정하고 이미 채점이 완료된 400여 장의 수행평가지를 재채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밤 10시, 교무실에 딸랑 수학 선생님 3명이서 모여 앉아 이미 점수가 부여된 수행평가지를 붙들고 다시 채점을 하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제발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쉬자.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 비명소리는 마치 백색소음처럼 내 일상의 소음이 되었다. 내 삶은 행정 업무와 해야만 하는 일들로 꽉 채운 다음 학교라는 비닐 껍질로 진공 포장하여, 하고픈 일과 취미 같은 세균 따위는 침입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절정이 되었던 것이 7월의 어느 날이었다. 날은 덥고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여름일수록 학교 폭력 건수가 폭증한다는 학생부장 선생님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던 때였다. 나는 그 속에서 중학교 1학년 꼬맹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선생님들에게 1학기 학교생활기록부 입력을 완료해달라고 독촉을 하느라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저녁 8시가 조금 안 되었을 무렵, 옆옆 자리에 있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술자리에 가지 않겠냐며 제안을 해왔다.
“2학년 영어 쌤 계약 끝나서 1학기만 하고 가신다고 오늘 미리 송별회 한다는데? 쌤도 같이 가요.”
사실 영어 선생님을 잘 몰랐다. 몇 번 대화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도 없는 자리일 것이 뻔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쉬고 싶었다. 길바닥에 등만 닿아도 숙면에 빠질 상태였다. 그런데 그순간 아무런 핑계도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뇌가 멈춰버린 걸까. 그렇게 타이밍이 붕 떠서 답할 때를 놓칠까봐, 나는 그만 가겠다고 해버렸다. 아, 그순간 스스로를 얼마나 저주했었는지. 저녁 8시 30분, 끝내지도 못한 업무를 그냥 때려치우고서 술자리에 갔다.
절망적인 술자리였다. 다들 하하호호깔깔대며 웃는데 나 혼자 전혀 웃기지 않았고, 그 분위기에서 구태여 내가 한 마디 얹을 필요도 없어 보였고, 그래서 혼자 맥주잔을 홀짝였으며, 또 학생부장 선생님께서는 소주를 권하셨고, 1학기에 떠나신다는 영어 선생님은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셨다. 나대신 카카오샵에서 3만 5천원 주고 산 라이언 인형이 앉아 있는 게 훨씬 더 분위기가 살 것 같았다. 그때는 마음도 지쳤는지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을 했다. 나를 필요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나를 필요한 척하여 자리에 앉혀놓고 내가 필요 없는 얘기들만 해댔다. 그러면서도 너무 불안했다. 아직 나 일 다 못했는데, 빨리 해야 하는데, 진짜 큰일 나면 어떡하지, 하......
12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아직까지 주무시지 않고 계셨다. 엄마는 술기운이 올라있는 아들내미를 마냥 안쓰럽게만 쳐다보셨다. 또 과일은 왜 깎아놓으셨는지, 나는 침대로는 못 가고 거실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인 과일 접시 앞에 앉았다. 퀭한 눈으로 엄마가 깎아놓은 과일을 우적우적 씹어대고 있으니 엄마가 내 옆에 와서 가만히 앉았다. 일이 힘드나? 표정 없는 내 얼굴을 보며 엄마가 물었다. 괜찮다, 라는 거짓말이 일상이 돼버린 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응, 힘들다. 그래, 너무 힘들어 보인다. 접시를 집어든 엄마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 나는 대꾸를 못하고 너무 피곤하여 손바닥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손을 떼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하였다. 눈물이 새어 나와서 틀어막아야만 했기 때문에. 눈물은 와르르 쏟아지지 않고 비닐로 진공 포장된 고깃덩어리에서 생긴 핏물처럼 찔끔찔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스무 살 먹고 나선 엄마 앞에서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엄마는 나를 보고 옆에서 그대로 굳어버리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옆에서 가끔씩 훌쩍이기만 했다. 꺼이꺼이 거릴까봐 숨을 참아가며 안간힘으로 소리를 죽였고, 소리가 죽은 것 같으면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 숨소리에 엄마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우짜면 좋노, 우짜면은......그렇게 나지막이 읊조리면서 엄마 손은 내 살가죽을 비벼댔다. 어찌할 줄을 몰라 마구 방황하는 그 손길에 더욱 서글퍼져서 나는 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내 손등을 쓰다듬으면서 왼손으로 눈물을 틀어막고 있는 나에게 말하셨다.
“엄마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노?”
“뭘 어떡해, 하기는. 그냥 가만히 있어. 알아서 하게.”
나는 괜히 짜증을 버럭 내면서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걸 알아서, 그게 속상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후로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8시 전에 출근해서, 수업하다가, 애들 지도하다가, 행정 업무하다가, 4시 반 되면 밀린 일 처리하다가, 8시에 집에 와서, 저녁 먹고, 9시에 기절했다가, 3시에 일어나서, 수업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다. 하지만 과연 엄마 손은 약손인 것일까. 계속 일더미에 쌓인 채로 지내면서도 나는 그냥 묵묵히 일했다. 쉬고 싶다는 생각도 덜해졌다. 어쩌면 ‘힘들다’라는 생각이 내 안에서 자라던 암세포였을까. 그 암세포를 퉤, 하고 입 밖으로 뱉어내서 그런지 분명히 일은 그대로였는데 힘들다는 생각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묵묵히 일하면서 나는 이제 2년차 교사로 접어들게 되었다.
나는 그 날 엄마의 손길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엄마는 도대체 무엇에 가닿고 싶어서 그렇게도 내 손을 어루만지셨던 걸까.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에는 영석과 선희라는 연인이 등장한다. 서른을 갓 넘긴 선희에게 마흔을 바라보는 영석이란 남자는 어쩐지 어설퍼 보이기만 했다. 아직도 나이에 맞지 않게 서툴고 제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특히 스킨십을 할 때가 그랬다. 영석은 그녀의 어느 것이든 만지려고 했다. 가슴 같은 음부만을 탐하지도 않았다. 귀든 머릿결이든 가리지 않았다. 어쩔 때는 선희가 발을 씻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굳이 발을 만지려 들자 선희는 버럭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자 영석이 말한다.
“닿으려고 그래. 닿아 있으려고.”
그때 영석이 닿고 싶어했던 무엇이었을까. 그냥 아무 여자의 몸이나 탐한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오직 선희의 몸만을 원한다는 것이었을까. 이승우 작가는 이렇게 생각했다.
“닿으려고 그래. 닿아 있으려고.”
그때 영석이 닿고 싶어했던 무엇이었을까. 그냥 아무 여자의 몸이나 탐한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오직 선희의 몸만을 원한다는 것이었을까. 이승우 작가는 이렇게 생각했다.
말을 하는 동안 허공에서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그의 손을 보면서 그녀는 알았다. 그가 닿으려고 하는 것이 여성의 신체가 아니라는 것을. 그가 자기 몸을 애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를 만지는 것이 단순한 사랑의 표현만은 아니라는 것을. 여성의 신체가 아니라 자기를 살아 있게 하는 존재인 사랑에게 닿으려는 안타까운 몸짓이라는 것을. 사랑으로부터 내쳐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을.이승우, 『사랑의 생애』 中에서
우리 엄마의 손길도 어쩌면 저런 안타까운 몸짓이지 않았을까. 직장생활에 허덕이면서 눈물까지 보이는 저 가련한 존재가 자기를 살아 있게 하는 존재라서, 그에게 닿으려고, 사랑하는 마음에까지 닿으려고, 그렇게도 비벼대고 쓰다듬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도 그 안타까움을 자연스레 느껴서, 나에게 더 깊숙이 닿고 싶은데 살가죽과 피와 뼈로 둘러싸여 닿지 못하는 그 절규를 나도 느낄 수가 있어서, 그냥 묵묵히, 열심히, 살게 된 것은 아닐까.
이제 또 새로운 1년을 시작해야 한다. 올해도 힘들고,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또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손길도 어딘가에 가닿지 못하고 방황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꼭 내 손길이 어딘가에 닿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닿는 게 아니라 닿으려는 그 손길 자체가 누군가를 새롭게 살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도 이번에는 누군가에게 그 안타까운 손길을 뻗쳐보고만 싶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작년부터 일 시작한 선생님 개붕이야.
그냥 작년 일을 좀 정리해보고 싶어서 주저리주저리 써봤다 ㅎ
갑자기 진지충 글이 튀어나와서 당황했을텐데 너그러이 이해바란다 ~
그냥 작년 일을 좀 정리해보고 싶어서 주저리주저리 써봤다 ㅎ
갑자기 진지충 글이 튀어나와서 당황했을텐데 너그러이 이해바란다 ~
*개드립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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