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속은 척… 할머니 기지로 수금책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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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넘어갈 뻔했던 70대 할머니가 오히려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검거하는 데 힘을 보태 경찰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동작경찰서에 따르면 동작구 사당동에 거주하는 조모 씨(71·여)는 같은 달 13일 오전 10시경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낯선 목소리의 남성은 “손녀 ○○이가 친구가 진 빚 5000만 원에 보증을 서 우리가 데리고 있다. 빚을 대신 갚지 않으면 손녀를 해치겠다”고 말했다. 실제 손녀의 이름을 대며 협박하는 목소리에 놀란 조 씨는 급히 은행을 찾았다. 은행에 넣어 둔 적금을 해지해 손녀가 보증을 섰다는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은행에 도착한 조 씨는 은행 직원으로부터 ‘보이스피싱 같다’는 얘기를 듣고 경찰에 신고했다. 조 씨는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당할 뻔했다는 걸 알고 현장에 출동한 사당지구대 소속 경찰과 함께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금책 검거를 돕기로 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첫 번째 전화 이후 여러 차례 더 전화를 걸어 “인출한 돈을 2000만 원과 3000만 원으로 나눠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꾸겠다”는 등 추적을 피하기 위해 혼선을 줬다. 하지만 조 씨는 침착하게 지시에 따르는 척했다. 조직원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다그치자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둘러대면서 수금책을 유인했다. 돈을 건네받기 위해 조 씨를 만나러 온 보이스피싱 수금책인 말레이시아인 A 씨(18)는 결국 조 씨가 처음 전화를 받은 지 4시간 30분 만인 13일 오후 2시 30분경 사복 차림으로 잠복해 있던 경찰에 붙잡혔다.
A 씨가 검거되면서 연락이 끊기자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 조직원은 “경찰에 신고한 것 아니냐”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하지만 조 씨는 “신고하지 않았다”고 둘러대며 또 다른 수금책인 말레이시아인 B 씨(20)마저 유인해 경찰이 B 씨를 검거할 수 있게 도왔다. 경찰은 A 씨와 B 씨를 모두 구속했다. 동작경찰서는 26일 조 씨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