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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ep 6. 조조네 최고 무장이자 동시에 연의의 최대피해자 조인(曹仁) Pt 2

Kuat 3 443

어려서부터 활쏘기, 말타기, 사냥을 좋아했다고 나옵니다. (야생의 사나이)

 

이후 제후들이 동탁에 맞서 일어나자 '은밀히' 소년들을 모아 천여 명을 얻어 회수, 사수 사이에서 활약하다가 조조에게 합류합니다. 첫 등장부터 범상치가 않은 점 3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제후들이 일어나자 정상적인 정부체제 하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음을 감지하고, 다음으로는 괜히 소문이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몰래 1000여명을 모집하고, 마지막으로 회수와 사수 사이에서 활약했다는 것이 (정확히 뭔 지는 모르겠네요 도적을 때려잡았나?) 독자로서 턱빠지게 만듭니다

 

회수는 예주 여남에서부터 서주 광릉까지, 사수는 광릉 옆의 홍택호부터 서주 팽성을 거쳐, 연주 임성현에서 꺾어서 예주 노국까지 흐르는 두 하천으로 두 강 사이를 다녔다는 것은 예주남부와 서주, 연주동부와 예주 최북단까지를 오갔다는 말이됩니다. 거의 웬만한 나라 한바퀴 도는 수준이거든요

 

조조에게 합류하고부터 조인은 장수로서 날개를 답니다. 시작은 별부사마 행() 여봉교위로, 별부사마는 대장군 직위 아래 독립적인 부대를 통솔하는 장군입니다. 아마 1천명을 고작 24살에 자기 힘으로 조직하고 통솔한 게 컸겠죠. 그래서인지 이후로는 조조의 본대와는 별도로 중요 전장에 거의 모두 등장하는 독립군단장 같은 위엄을 보여줍니다.

 

1. 193년 원술이 조조와 싸울 때(원술이 황제되려했던 구강군 이전에 남양시절) 숫자는 나오지 않지만 많은 적군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2. 역시 193서주 정벌에 기병의 선봉으로 활약하며 별동대를 이끌고 서주자사 도겸의 장수 여유를 격파하고, 팽성에서 조조와 다시 합쳐 도겸을 대파하고, , 즉묵, 개양을 공격하고, 여러 군현에 도겸이 지원군을 보내자 모조리 격파해버립니다.

 

3. 194, 조조가 서주로 2차 정벌을 나가자 여포가 연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본거지를 뺏길 위기에 처하죠. 조조가 복양에서 불리한 가운데서도 조인은 또 별도의 군대를 이끌고 구양을 점령하고 여포의 장수 유하(劉何)를 사로잡습니다.

 

4. 196, 조조가 마침내 천자를 모시고 허도를 임시도읍으로 삼았고, 조인은 그간의 공이 참작되어 광양태수로 임명되지만 조조가 '이렇게 잘 싸우는 믿음직한 사촌을 행정가로 굴릴순 없지!' 해서 의랑으로 변경되어 기병을 지휘합니다

 

**근데 좀 이상한 게 기병을 지휘하게 할 거면서 왜 의랑, 즉 천자의 고문을 담당하는 직급으로 임명했는지는 의문. 비슷한 케이스로 손견도 의랑에 임명된 적이 있는데, 이 경우 그를 군에서 떨어뜨려 묶어놓기 위함이었기에 조인이 기병지휘하면서 이런 보직은 왜 받았는지?

 

5. 197, 장수(張繡, 서량의 군벌이자 가후가 모사였음) 싸울 조인은 역시 별동대 이끌고 인근에서 남녀 3 여명을 생포해옵니다. 이후 조조가 장수에게 추격당해서 군의 사기가 바닥을 치자 사기를 돋워 장수를 격파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관도대전에서는 장군으로서 완성된 활약과 공적을 보여줍니다. 만개하는 시점이죠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대결하는 시점에서 황건적 유벽이 예주 여남에서 원소 편으로 붙습니다. 이게 큰일이면 큰일인 것이, 관도는 당시 조조 영토 최북단이고, 여남이면 최남단이거든요. 빨리 진압 못하면 민심이 흔들리는데 가용병력은 원소랑 뜨는데 모아도 원소군이 몇배나 많은 지경이었으니 함부로 수도 없고 발등에 떨어진겁니다

 

 

 

심지어 원소가 기회다 싶어서 유비를 보내서 유벽과 호응시키자 기세를 몰아 허도 남쪽까지 갑니다. 이러니 조조가 걱정이 태산이죠. 이 때 조인이 남방 사람들은 대군(大軍) 바야흐로 (원소와 대치하느라) 목전이 급박하므로 사세상 구원해줄 없으리라 여기는 터에 유비가 강병(彊兵)으로 당도하니 그들이 배반한 것은 실로 당연한 일입니다. 유비가 새로 원소의 군사를 거느리게 되어 그들을 능히 부릴 없을 것이니 공격하면 무찌를 있습니다.” 


즉 조조의 후방에서 적(유비+유벽)의 대군이 나타나니 놀라서 지역 민심이 돌아선 것이라는 원인을 정확히 짚고, 유비가 거느린 것은 유비가 키운 군사들이 아닌 원소군이라는 약점도 잡아냅니다. 거기다 자신감을 가지고 빠르게 치는 것이 오히려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는 해결책까지 제시하죠 

 

6-1. 과연 이번에도 별동대 기병(이쯤되면 별동대 마스터군)을 이끌고 유비+유벽을 다 격퇴시키고 넘어갔던 군현들까지 싹 수습하고 관도로 돌아옵니다.

 

6-2. 이어서 원소가 별장 한순을 보내서 관도의 서쪽 길을 노략질하고 끊자 계략산(이게 어딘지 아시는분)에서 대파하고 역으로 조조 휘하의 사환(史渙, 조조의 고향 친구이자 무장)과 원소의 군량 수레를 약탈하고 불태웁니다

 

7. 206, 조조가 하북을 평정한 후 오환족에게 달아난 원상을 치려는 원정을 계획할 때, 원소의 외조카인 고간(高幹)이 병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상당태수를 붙잡고호관(壺關)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호관이 왜 중요하냐면 기주와 병주를 태행산맥이 가르고 있는데, 기주의 치소 업성과 병주가 산맥사이로 연결되는 곳이 병주의 호관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입니다

 


 

조조가 기껏 원소에 원소 아들들까지 물리쳐가면서 하북을 먹나싶었는데 이런 상태가 되니 많이 빡쳤나봅니다. 진압하러 병력을 이끌고 호관을 포위하고는 성이 함락되면 모두 파묻어 죽여라.”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수비하는 반란군이 몇 달을 조조의 공성에 '존버'합니다보다못한 조인이 이렇게 건의합니다

 

성을 포위할 때는 필히 활문(活門) 보여주어 이로써 그들이 살아날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지금 ()께서 반드시 죽일 것이라 말씀하시니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게다가 성이 단단하고 양곡이 많아 이를 공격하자니 사졸들이 상하고 수비하자니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지금 (적의) 견고한 아래에 머물면서(頓兵堅城) 공격해 포로들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성도 튼튼하고 식량도 많은 애들을 상대로 우리가 너무 윽박질렀으니 필사적으로 버틴다. 좀 유화책 써보자는 소리죠그래서 조조가 살 길을 만들어주니 상대가 항복합니다. 사고의 시야를 바꿔서 더 힘들었을지도 모를 공성전을 해결함으로서 반란의 종지부를 찍은 조인의 공이 참작되어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집니다.  요게 포인트인게관내후(關內侯)는 봉지가 없는 후작위로, 그 위의 봉지 즉, 자기 땅을 받기 시작하는 단계가 도정후이고, 차차 도향후, 현후까지 있습니다. 도정후를 받음으로서 공히 이름있는 귀족의 반열에 들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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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Kuat 2018.03.11 15:15  
아 이거 또 글 썰리네요 파트 많아지는데 이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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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w 2018.03.12 01:12  
[@Kuat] 본인이 다 작성하시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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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at 2018.03.12 02:44  
[@werw] 네 조악하지만 제가 만들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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