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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계의 영원한 라이벌, 삼성vs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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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라이벌이던 삼성의 이병철과 현대의 정주영

대한민국 재계순위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않는 재계 근본은 삼성가와 현대가임


두 그룹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살펴보자







1910년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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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1910년 경남 의령군 출생

- 지방양반가 출신에 만석꾼 집안으로 이미 금수저였음

(일본 유학시절 집에서 매달 보내주는 돈이 200원이였는데, 당시 일본가정 월평균 생활비가 50원정도)





현대

image.png 세계 10대 부자까지 올라갔던 한국인.jpg 세계 10대부자까지 올라간 한국인.jpg 대한민국 재계의 영원한 라이벌, 삼성vs현대.jpg

(생가 사진 없어서 그냥 당시 시골집사진 가져옴)


- 정주영,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 출생 

- 소학교 졸업(초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남









1920~30년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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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20대때 계획도 없이 술과 도박으로 보내다 26살 되던 해 정신차리고 사업 시작

- 1936년, 마산에 쌀가게인 협동정미소를 시작

- 꽤 잘됐으나 일제가 전쟁때매 쌀 배급제를 시작하며 가게가 망함

- 1938년, 대구에 <삼성상회>를 개업함 (삼성그룹의 시작)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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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 농사나 지으라던 아버지말에 가출을 했고, 상경하여 노가다하며 보냄

- 쌀가게에 취직, 일을 잘해 사장이 정주영에게 매도하고 '경일상회'로 개업함

- 얼마 뒤 일제의 쌀 배급제 때문에 가게가 망함










1940년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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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상회 건물)


- 자본금 3만원으로 시작한 삼성상회, 국수,건어물,과일 유통으로 자리를 잡음

- 1941년, 주식회사로 개편, 중국에도 유통하기 시작

- 1947년, 삼성물산 창설, 무역업도 시작함

- 이때 삼성은 이미 중견기업 이상 규모, 당시 정주영의 매출이 이병철이 내는 세금과 비슷했다함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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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과 아도서비스 직원분들)


- 1940년, 돈을 빌려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정비소를 개업함

- 일제의 전쟁때매 정비소를 강제로 뺏김

- 1946년, 일재가 패망하고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사명으로 정비소를 재개업함

- 1947년, 현대토건 설립 (현대그룹의 시작)









1950년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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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전쟁 발발로 삼성의 물자를 다 잃어버린채 부산으로 피난

- 돈 벌 거리를 찾다 전쟁통이라 한국은 고철이 많고, 일본은 무기를 찍어내야해서 철이 부족했던 걸 파악

- 1951년, 삼성물산 재설립하고 고철을 모아 일본에 수출

- 다시 일본에서 번 돈으로 중국에서 설탕,비료를 수입해 국내에 판매했고, 이렇게 1년만에 60억원을 범

- 1953년 제일제당(지금의 CJ) 설립, 

- 1954년 제일모직 설립

- 삼성 대기업군으로 성장, 이병철 국내 재계서열 1위 도약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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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전쟁발발로 다 잃고 부산으로 피난

- 일거리를 찾다 미군 공고를 보고 무작정 내가 건설회사를 하고있다며 일을 달라 함

- 동생이 영어를 잘해 주한미군 통역장교였는데 이게 신의 한수였음

- 당시 미군의 일감을 거의 대부분 현대건설이 가져감

- 부두에 2만평규모 물류창고도 운영하고, 선박도 3척이나 운영하는 꽤 규모있는 회사로 성장

- 전쟁이 끝나고 정부가 발행한 가장 큰 공사인 고령교 공사를 수주

- 1955년, 이 고령교 공사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고, 집까지 팔고 사채까지 써서 겨우 공사를 마침

- 파산하지 않은게 용할정도로 잘 버텼고, 이 일 이후로 정부에 신뢰가 쌓여 정부공사를 많이 가져감


남들은 파괴된 국토와 서울을 보고 좌절했을때 정주영은 공사할게 이렇게 많다고 했었다고. 

  








1960년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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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재계 1위 재벌타이틀을 유지함

- 1963년,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동화백화점(현 신세계) 인수, 1965년 중앙일보 창간

- 1966년, 이병철의 아들 이맹희,이창희의 사카린밀수사건 터짐

- 둘째인 이창희 감옥행, 삼성은 한국비료(현 롯데정밀화학)와 대구대학교(영남대전신)를 정부에 넘김

- 이 사건으로 첫째 이맹희, 둘쨰 이창희 후계구도에서 밀렸고, 삼남 이건희가 후계자로 낙점

- 1968년 삼성전자, 삼성전기 설립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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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재계10위권엔 들지 못함

- 1962년 현대시멘트 설립, 1963년 현대양행 설립(현 만도)

- 1967년 현대자동차 설립

- 1968년 경부고속도로의 40%를 현대건설이 공사

- 현대그룹으로 그룹화하며 정주영, 회장으로 취임






1970년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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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가 재계서열 1위 유지

- 1974년, 삼성석유화학, 삼성중공업 설립

- 초창기 삼성전자가 금성사(LG)에도 안됐었을때 이병철은 수원공장규모를 43만평으로 지으려함.

임원들이 회사규모에 비해 과하다며 반대했는데 이병철은 국내가아닌 일본기업을 이기는게 목표라며 밀어붙임.

- 1974년 3남 이건희가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경영난을 맞자, 이병철이 삼성전자로 한국반도체를 인수함

- 당시 이병철은 반도체가 뭔지 일본 NEC에 자문했는데 거절당하자 '저기 뭔가 있구나' 했다고 함 

- 70년대 삼성은 생활밀착기업에서 경공업 기업으로 넘어감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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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그룹 재계서열 상위권에 진입

- 1973년 현대조선중공업, 75년 현대미포조선 설립하며 본격적인 중공업기업으로 거듭남

- 70년대 현대그룹은 날개달린듯 수직상승함. 오일쇼크로 돈이 중동으로 몰렸을때 중동최전선에 있던 한국기업이 현대건설.

- 1976년 현대건설 사우디 주베일항만공사 수주, 당시 대한민국 정부 전체예산의 25%정도 되는 금액이였음

- 그 외에도 동남아,중동에서 번 돈이 엄청나서 단숨에 재계서열 상위권으로 부상 








1980년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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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까지 재계서열 1위 유지

- 이병철, 미국의 산업이 일본의 반도체에 침식당하는걸 직접 목격하곤 반도체에 사활을 걸기로 함 

- 1983년, 반도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며 도쿄선언 공표

- 1984년 반도체로 보던 적자만 한해 당시돈 1300억 수준. 모두가 손떼자할때 이병철의 한마디 "내 눈엔 돈이보여"

- 1987년 이병철 사망, 자신보다 빨리 반도체를 알아본 이건희에게 삼성 상속

- 이건희 취임당시 삼성그룹의 연매출 약 10조원 규모
- 1988년, 엄청난 적자를 보던 반도체가 3200억 흑자로 전환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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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거래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기업집단을 지정한 1987년, 현대그룹은 마침내 재계서열 1위로 도약

- 1980년대 현대가 전자,백화점,석유화학등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삼성과 현대의 라이벌구도가 시작됨

- 1985년 현대백화점 오픈

- 가망없던 88올림픽 개최를 성공시킴, 이후부턴 한국스포츠계에 현대의 힘이 대단해짐

- 현대건설부터 현대차, 현대조선 등 굵직한 사업들의 대성공과 정재계에 미치는 현대의 영향력이 엄청나짐 







1990년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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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계서열 2~3위로 현대 외 대우에도 밀리기도 함

- 제일제당(CJ), 신세계가 삼성에서 분리

- 1992년, 삼성전자는 세계최초 64Mb D램을 개발. 이후 256Mb,1Gb 모두 세계최초 개발하며 메모리분야 1위로 올라섬

- 주요분야에서 거의 현대그룹과 겹치며 점유율이 흔들리고 이건희는 삼성의 위기를 느낌(후쿠다 보고서)

- 이건희, 프랑크푸르트 선언이후 '신경영','품질경영'으로 삼성내부수술 시작

- 1995년, 삼성자동차 설립, IMF로 인해 삼성차를 르노-닛산에 매각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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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재벌 등극
- 특히 현대그룹의 전성기인 90년대, 한국에서 위상은 지금의 삼성보다 더 대단했음

- 1998년, IMF로 인한 빅딜로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합병 (현 SK하이닉스)

- 1998년, 소떼 방문으로 유명한 대북사업이 시작됨

- 정재계부터 남북관계까지 당시 현대는 정말 못할게 없던 포스를 자랑함








2000년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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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현대를 제치고 다시 재계서열 1위 재탈환

- 2000년 삼성그룹의 수출액은 312억달러로 한국수출의 18%를 담당함

- 90년대 절치부심한 삼성은 2000년 세계브랜드가치 43위에서 2005년 20위까지 급속 성장을했음

- 이후로 삼성은 국내기업들과 경쟁하는게 민망할정도로 커지고 다국적기업들과 경쟁하며 현대를 누르고 압도적 1위가 됨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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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까지 재계서열 1위를 지키던 현대였으나 왕자의 난이 발발함

- 정주영은 둘째 정몽구와 넷째 정몽헌을 공동회장으로 세웠는데 둘의 싸움이 커졌고, 정주영이 직접 개입했지만 결국 종결짓지 못함 

- 둘째인 정몽구는 현대차그룹을 가지고 나와 독립하게됨

- 이후 현대는 다 흩어지며 2001년부터 삼성에 재계서열 1위를 넘기고 이후론 이건희의 삼성에 범접할수 없게됨

- 현대그룹의 정몽헌회장도 자살을 하며 비극이 시작됐고, 되려 현대차만 주는것에 불만을 느꼈던 정몽구는 현대차를 엄청나게 키움

- 현대그룹의 현대전자와 현대건설도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현대그룹은 재계서열 10위 밖으로 밀림






2010년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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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은 단군이래 유례가 없는 세계적인 기업군이 됨

- 더 이상 국내에서 재계서열 논의는 의미가 없고 세계 10위권에서 노는 중

- 22년기준 브랜드가치 세계 5위

- 이건희가 삼성 회장에 올랐을때 연매출이 10조원대였는데, 21년기준 연매출 약 380조원

- 이병철의 운영과 이건희의 선견지명으로 건설된 삼성그룹, 앞으로 이재용회장은 어떤 행보를 보일지..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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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현대그룹대신 현대차그룹이 현대라는 타이틀을 거의 가져갔음

- 현대의 뿌리인 현대건설을 현대차그룹이 다시 인수했고, 이젠 엘레베이터 뿐인 현대그룹도 사실상 언제든 인수가 가능할 듯

- 정몽구의 경영과 제네시스의 선방으로 현대차는 늘 세계 10위권 판매량을 유지

- 22년기준 브랜드가치 35위, 자동차사로만 하면 5위권

- 21년기준 연매출 약 210조원, 현재는 SK에 밀려 재계3위로 랭크




 



대한민국에 수많은 기업인이 있었고 기업이 있었지만

삼성과 현대는 한국현대사 그 자체였음

암만 재계서열이 밀리고 뭐하고 해도 한국 재계의 근본은 삼성과 현대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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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자카르타김 2023.01.08 22:09  
막내아들 소설로 보는중인데 대입해서 보니 더 꿀잼

럭키포인트 16,776 개이득

가을방학 2023.01.08 23:47  
SK도 다뤄주면 재밌겠군

럭키포인트 20,228 개이득

핫브루 2023.01.09 11:20  
이런거 좋아 재밌당 ㅋㅋ

럭키포인트 7,909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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