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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에그몽 8 2937

here.jp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메시 vs 호날두, 제라드 vs 램파드, 레반도프스키 vs 수아레즈,,,

라이벌 관계는 흥미롭다.

보는 이로 하여금 논쟁의 대상과 자극적인 소재가 되어 몰입감을 한층 더 하며

당사자 본인은 이런 라이벌 관계를 의식하며, 더욱 노력하는 계기가 된다.


위와 같은 라이벌 관계는 비단 축구계 뿐만이 아니라 전분야에 걸쳐 있다.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관계는 푸쉬킨의 시, 밀러스 포먼의 영화 등등에서 다루어진대로,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음악사에서 모짜르트와 살리에르 이후에 가장 많이 언급된 라이벌은,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관계일 것이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라이벌 관계는, 더더욱 흥미로운데, 이 둘은 라이벌인 동시에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존 레논은 심오하면서도 실험적인 음악을 지향했으며

폴 매카트니는 듣기 좋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의 음악을 지향했다.


둘은 각자의 노래를 듣고 피드백을 해주던가, 서로의 멜로디를 이어 붙이는 식의 방식으로 협업을 하였으며

이렇게 완성된 노래는 비틀즈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음악계는 이러한 공을 인정해 주어, 레논-매카트니를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트너십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동시에,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치열한 라이벌이라고도 불리게 되는데

이는 비틀즈가 해체한지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도, 레논 vs 매카트니에 대한 떡밥이 식을 줄 모르는 것을 보면

맞는 말인 것같다.


1645015594.jp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관계는 음악적인 영향을 넘어서, 사적인 영역까지 다루어졌는데

개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재패니메이션의 세기말 유행을 이끈, 신세기 에반게리온일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는 존 레논을 투영한 인물이다.

극 중에서 이카리 신지가 겪는, 부정적인 부성애와 모성애에 대한 갈망은 존 레논이 평생을 느꼈던 그것이다.

그리고 신지를 위로해 주는 나기사 키오루는 폴 매카트니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인물로

실제로 둘은, 음악으로 교감을 하게 된다.


이렇듯, 각종 매체에게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관계는 가장 흥미로운 소재였는데

이는 둘의 관계가 단순한 파트너를 넘어선 인간관계의 양가적이면서도 복합적인 면을 담고 있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만남

51VGrf3zjjL._AC_.jp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존 레논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아버지는 강제 징역으로 인해, 참전을 하게 되었고, 이 사실이 가족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존 레논의 어머니는, 남편이 집을 나간 것으로 생각하여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는 가정 불화의 시발점이 된다.


존 레논은 학교를 가기 전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중 한 명을 택해야 했다.

존 레논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별거를 결심하여

존 레논에게 누구랑 살 것인지, 물어본 것이다.

어린 나이의 존 레논에게는 너무 무거운 질문이었다.


방황하던 존 레논은 끝내 어머니를 선택하였으며, 어머니와 함께 자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존 레논에게 충실하지 못했고

존 레논은 자신의 탈출구를 이모에게서 찾았다.


이모는 존 레논을 돌봐주며, 로큰롤 테이프를 생일 선물로 주는 등,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 로큰롤 테이프가, 지금의 존 레논을 만들어주었다.


가수를 꿈꾸게 된 존 레논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였다.

밴드명은 고등학교의 이름을 따와 '쿼리멘'이라 명명했다.


쿼리멘 멤버 아이반 본은 존 레논에게 친구 한 명을 소개해주는데

이 친구가 폴 매카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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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첫 인상은 좋지 못했다.


존 레논은 폴 매카트니가 기타를 왼손으로 잡는 것을 본 뒤, 무시하였는데

이는 왼손잡이에 대한 당대의 풍토가 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주를 보자 곧바로 실력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대로 밴드에 합류 시킨다.


폴 매카트니는 이 만남 이전에도 존 레논을 알고 있었다.

존 레논이 동네에서 유명한 양아치였기 때문이다.

훗날 폴은 '버스 뒷 자석에 레논이 탔을 때,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인상은, 서로의 훌륭한 음악 실력과 유사한 비전으로 인해 말끔하게 지워졌다.

존 레논이 기타 하나만 들고 폴의 집을 찾아가 같이 연주를 연습하고, 작곡을 하는 등, 둘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뒤, 존 레논의 어머니가 사망하게 된다.

사유는 교통사고였는데, 만취한 경찰이 운전한 차에 치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는 존 레논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방황하던 존 레논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폴 매카트니였다.

폴 매카트니 또한 모친상으로 힘든 유년기를 겪었으며

둘은 서로의 빈 곳을 메꿔주는, 가족과도 같은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존과 폴이 밤새도록 서로 부둥켜 앉고 울면서, 미래의 성공을 다짐하기도 했다.


비틀즈Lennon-McCartney-GettyImages-85001926.jp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쿼리멘은 비틀즈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을 계속했다.

리버풀의 클럽들을 전전하며 연주하였는데, 연주곡은 로큰롤 노래의 커버거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협업하여 작곡한 곡이었다.


이 때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서로 합의를 하게 되는데

이 합의 내용은 각자 어떤 노래를 작곡하든간에, 작곡 명의를 레논- 매카트니로 표기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레논 - 매카트니의 이름이 만들어졌으며, 이는 비틀즈 해체 때 까지 이어져, 비틀즈 노래의 대부분이

레논 - 매카트니 작곡으로 표기되어 있다.


비틀즈는 함부르크로 투어를 가서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언더그라운드에서의 명성을 확고히 해나갔다.

그리고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던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눈에 띄어,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된다.



메이저 데뷔 즉시, 비틀즈는 영국 차트 1위를 석권하며, 영국의 국민 밴드가 되었고,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앞세워 미국 진출에도 성공한다.

이 영상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던 에드 설리번 쇼의 라이브 공연이었는데

비틀즈가 출연한 편은 미국 국민의 60%가 시청하였다.

이를 음악사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명명했다.


이 노래는 레논 매카트니가 협업하여 만든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상징으로 불리며, 현재 대중음악사상 가장 중요한 노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경쟁

다운로드.jpe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비틀즈의 인기를 절감한 영화사는 비틀즈가 출연하는, 비틀즈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훗날 슈퍼맨 시리즈를 연출하게 되는, 리차드 레스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리차드 레스터는 영화를 대표하는 타이틀곡을 원했다.


이 무렵 비틀즈는 새 음반을 작업하고 있었고, 새 음반에 수록될 노래들을 들은 

리차드 레스터는 폴 매카트니의 Can't Buy me Love를

타이틀 곡으로 결정한다.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Can't Buy Me Love


하지만 존 레논은 자신의 노래가 타이틀곡이 되기를 원했으며

리차드 레스터에게 새로운 노래를 작곡할테니, 듣고 결정해달라고 한다.


존 레논이 작곡한 A Hard Day's Night


리차드 레스터는 존 레논의 노래를 듣고, 타이틀 곡을 A Hard Day's Night으로 결정한다.


그렇게 영화의 제목은 존 레논의 노래에서 제목을 딴 하드데이즈나이트가 되었으며

영화는 흥행에서도 성공, 비평가들에게도 찬사를 받게 된다.


비틀즈의 성공가도는 멈출줄을 몰랐으며, 전세계를 대상으로 투어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때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 번째 문제는 일본에서 일어났다.

일본 정부는 비틀즈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길 원했으며

이를 비틀즈가 거절하자,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두 번째 문제는 필리핀에서 일어났다.

필리핀으로 투어를 간 비틀즈는 대통령궁에서의 아침식사를 거절했는데 

이로 인해 필리핀 국민들이 분개하며, 비틀즈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상태에까지 이른다.

비틀즈는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지만, 대중에 대한 회의심이 커지기 시작한다.


이 때 당시 비틀즈는, 인기가 너무 많아 하루에도 한 두 번 정도의 공연을 하는 식이었는데

공연 때마다, 팬들이 소리를 너무 크게 질러,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장비가 고장 나 음악 소리에 이상이 생겼는데도, 팬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본 비틀즈 멤버들은

자기들이 과연 아티스트인가? 에 대한 회의가 생겨났다.


이런 회의 도중, 일본과 필리핀에서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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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때, 존 레논이 과거에 한 발언이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 발언의 내용은 이러했다.

"비틀즈는 예수만큼 유명하다"

이 발언을 한 영국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독실한 신자들은 이 발언을 불편하게 느꼈으며

특히 극성맞은 신자들은 비틀즈 앨범을 태우기에 이른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이유가 종합되어, 비틀즈는 라이브 공연을 그만 두고, 스튜디오에서 음반작업만을 신경쓰게 된다.

그러면서 비틀즈의 음악은 점점 실험적이고 심오하게 바뀌어 갔다.


이 때, 폴 매카트니는 리버풀에서 지냈던, 과거를 회상하는 컨셉의 노래를 작곡하자고 제안했고

비틀즈의 멤버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Penny Lane

리버풀 거리명에서 제목의 모티브를 얻었다.


존 레논이 작곡한 Strawberry Fields Forever

역시 리버풀에 실존했던 장소의 이름이며

어린 시절 존 레논이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리버풀에서의 추억을 소재로 다룬 두 곡이지만

느낌이 많이 상이하다.


폴 매카트니는 경쾌함을 강조하여 과거의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는 느낌의 곡을 만들었다면

존 레논은 사이키델릭으로 노스텔지아를 자아내어 좀 더 감상적인 느낌의 곡을 만들어내었다.


이 두 노래는 함께 묶여 싱글로 발매되며,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싱글로 평가받는다.


이 시기에 비틀즈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비틀즈 내부는 물론, 레논 - 매카트니의 관계까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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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이유는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탄인의 죽음이었다.

브라이언은 비틀즈를 이끌었으며, 비틀즈에게는 아버지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비틀즈의 실패와 매니저 자리에 대한 위협을 항상 걱정하던 브라이언은

약물에 의존하였고, 결국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기에 이른다.

존 레논은 브라이언의 죽음 이후 "어떻게 해야 될 지 몰랐다." 라고 회고했다.


여기에 더해, 폴 매카트니의 독선과 완벽주의에 지친 멤버들은, 비틀즈 관계에 회의를 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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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비틀즈의 역량과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이 때 발매된 Sgt. Pepper lonly heart club band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으로 불리며

비틀즈 앨범 중에서도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특히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인

A Day In The Life는 비틀즈 팬들이 선정한 비틀즈 최고곡으로 뽑혔는데

이 노래는 존 레논의 미완성곡과 폴 매카트니의 미완성곡을 결합한 노래로

레논 - 매카트니 협업의 정점이라고 불린다.


이 때 TV방송사는 최초의 전세계 위성중계를 앞두고 있었다.

방송사 측에서는 비틀즈의 신곡이 방송되기를 원했으며

비틀즈에게 새로운 노래를 작곡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폴 매카트니는 Your Mother Should Know라는 노래를



존 레논은 All You Need Is Love를 작곡하였다.


경쟁 끝에 존 레논의 All You Need Is Love가 선정되었고

이유는 멜로디가 더욱 단순하고 주제가 명확하여, 전세계 방송이라는 컨셉에 어울린다는 것이다.

폴 매카트니도 이 결정을 기분 좋게 승복하였다.



비틀즈는 내부의 분열로 인해, 비틀즈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서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것은 아니었다.

폴 매카트니는 자신이 작곡한 오블라디 오블라다의

시작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를 본 존 레논이 '아 그거?' 라고 말하며,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여 오프닝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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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요코와 린다 이스트먼
세계적인 락스타였던, 비틀즈는 당연하게도 여성팬이 많았다.

이 무렵, 존 레논은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교제했으며

폴 매카트니는 사진작가 린다 이스트먼과 만났다.

이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더 이상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때, 존 레논은 밴드의 불문율을 어기고

오노 요코를 스튜디오에 데려오기도 하며, 밴드의 관계가 더욱 나빠지기 시작한다.


특히 폴 매카트니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린다 이스트먼을 스튜디오에 데려오기도 했으며

존 레논이 오노 요코를 만나기 전, 관계를 가졌던 신시아 레논과의 사이에서 나온 아들인 줄리아 레논에 대해 무심하자

이를 보고 줄리아 레논을 위한 노래를 작곡한다.

 

Hey Jude


폴 매카트니는 이 노래를 존 레논에게 들려주었으며, 위에 삽입된 노래는 폴이 존에게 들려주었던 최초 버전이다.

존 레논은 이 노래를 듣고 '이거 내 얘기잖아' 라고 말하며, 폴 매카트니가 자신을 위해 작곡했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이 말도 맞는 것이 존 레논의 아들인 줄리아 레논은, 존 레논의 유년기와 유사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존 레논의 아들인 줄리아 레논의 이름인, 줄리아가 존 레논의 어머니의 이름과 같았던 것이다.

평생 모성애와 가족의 관심을 바랬던 존 레논은 아들의 이름을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과 똑같게 지었지만

정작 자신 또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

(실제로 존 레논은 오노 요코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를 알고 있던 폴 매카트니는 '맞아, 내 얘기이기도 하지, 모두를 위한 노래야' 라며 존 레논에게 대답했다.


비틀즈의 해체

PD4694331_AP_BEATLES_BATTLE_trans_NvBQzQNjv4BqMdh6xRjNIMbUEJJ9Tv0x6rz_-2_ViNDHJoLCm4Ipyc4.jp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비틀즈 시절, 마지막으로 촬영된 레논, 매카트니

비틀즈의 관계 악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애플이라는 새로운 사업에 관한 문제 때문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비틀즈 멤버들은 해체를 직감하고 있었다.

밴드를 되살려보려는 폴 매카트니는 'Get Back' 이라는 프로젝트로, 초심을 되찾으려 하였으나

되려 멤버들은 폴 매카트니의 독선에 질리게 되었다.


결국 과거로 돌아가려는 폴 매카트니의 'Get Back' 프로젝트는 'Let It Be' 라는 앨범으로 발매되어

현재의 관계를 순응하게 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아쉬움을 느낀 비틀즈 멤버들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앨범 작업에 착수했으며

Abbey Road라는 명반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작업하였던 Let It Be는 의견 대립으로 인하여 발매 시점이 미루어 지게 되었으며

해체를 직감하고 솔로 앨범을 작업하던 폴 매카트니의 솔로 앨범 발매 시기보다 더욱 미루어지게 된다.


비틀즈의 멤버 링고 스타는,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 폴 매카트니에게 솔로 앨범을

Let It Be 앨범 발매보다 늦춰달라고, 요청하였다.


편지를 들고 폴 매카트니의 집에 찾아갔지만

이미 잦은 갈등으로 인하여 멘탈이 나간 폴은 링고 스타를 문전박대하여 쫓아내었고, 

폴 매카트니의 솔로 앨범이 Let It Be보다 먼저 발매된다.


당시 인터뷰어는 폴에게 이렇게 물었다.

"훗날 레논 - 매카트니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협업을 하는 날이 올까요?"

이에 폴 매카트니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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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jp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그렇게 비틀즈는 7년의 시간,

레논과 매카트니는 13년간의 우정이 깨지게 되었다.



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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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해체 이후, 멤버들은 솔로 앨범을 작업한다.

네 멤버 모두 빌보드 1위를 기록하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다.


특히 존 레논은 Plastic ono band라는 전위 앨범으로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앨범을 만들게 되었고

그 후작으로 Imagine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는다.


특히 타이틀 곡 Imagine은 평화를 상징하는 곡으로, 아직까지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존 레논은 이 노래를 완성하고 "드디어 폴의 멜로디에 뒤지지 않는 곡을 만들어냈어!!"

라며 좋아했다.


폴 매카트니는 솔로 앨범 Mccartney에 대한 평가가 호불호가 갈렸으며

그 후작인 RAM 또한, 지금에와서야 명반 취급을 받지

비틀즈 시절과는 다른 멜로디로 인해 호불호가 갈렸다.


그리고 둘은 앨범에 서로에 대한 디스곡을 수록하는데

선제 공격은 폴 매카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존 레논의 디스곡 Too Many People


"언젠가 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Ram을 돌이켜봤죠. 전체 앨범에서 존과 연관된 아주 작은 대목이 기억나네요. 존은 당시 설교를 많이 해대서 저는 좀 짜증이 났습니다. 한 노래(Too Many People)에서 저는 이렇게 썼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퍼붓고 있네.' 그 가사가 존과 요코를 겨냥한 것이죠, 그 외에는 존과 요코에 대한 내용이 없어요. 아! 하나 더 있군요. '요코가 너의 행운을 가져가서 반으로 쪼개버렸지.'" - 폴 매카트니


"Ram 앨범의 첫 곡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언더그라운드로 가지'라는 부분이 있어요. 요코와 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행운의 순간을 가졌지'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행운의 순간이라면 우리가 폴과 헤어진 것이에요." - 존 레논


앨범 커버에 보이는 양을 잡고 있는 폴 매카트니

위와 같은 디스로 인해 존 레논은 양이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하였고

앨범 뒷커버에 있는 딱정벌레 두 마리는 자신과 오노 요코라고 받아들였다.



존 레논은 폴 매카트니의 디스곡을 또 다른 디스곡으로 응수했다.

폴 매카트니에 대한 디스곡 How Do You Sleep?


"So Sgt. Pepper took you by surprise

그래, 페퍼상사는 널 깜짝 놀라게 했지
You better see right through that mother's eyes
너는 엄마 눈만 바라보고 사는게 나은 놈이야
Those freaks was right when they said you was dead
네가 죽었다던 그 자식들이 옳았나봐
The one mistake you made was in your head
네가 저지른 유일한 실수는 네 머리 안에 있는거 같네"


폴 매카트니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이 드러나 있다.

페퍼 상사는 폴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앨범

엄마는, Let It be에 대한 디스

죽었다는 부문은 폴의 사망설을 나타낸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비틀즈의 멤버인 조지 해리슨이 이 노래의 기타세션으로 참가했으며

링고 스타 또한 드럼을 칠 예정이었지만 가사의 수위가 너무 강해 그만두었다.

당시 비틀즈 멤버들이 폴에 대해 극심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폴은 이 노래를 듣고 충격받았으며, 그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화해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민 것은 폴 매카트니였다.


자신의 다음 앨범 Wild Life의 수록곡 Dear Friend로 사과의사를 내비쳤으며

Band On The Run에 수록된 Let Me Roll It은 아에 존 레논의 노래형태를 모티브삼아

비틀즈 멤버들에게 화해를 건내고 있다.


존 레논은 이에 공개적으로 반응하진 않았지만

둘은 음악으로 서로에게 숨겨진 메세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비틀즈 팬들은 이 숨겨진 암시를 찾아내었고

폴 매카트니는 훗날 '저희는 많은 노래에 메세지를 담아 소통했어요' 라며 사실을 인정했다.


존 레논의 Steel And Glass 

앞서 언급했듯 비틀즈 멤버들은 애플 사업의 문제를 두고 다투었는데

이 노래에서 존은 그 때 당시를 회고하며 이 문제는 폴의 잘못이 아니라는 메세지를 내비쳤다.



존 레논이 작곡한 I Know(I Know)

비틀즈 시절 폴 매카트니와 협업해서 작곡했던 I've Got a Feelling의 코드를 똑같이 차용하였다.


폴 매카트니의 Little Lamd Dragonfly


앞서 양을 잡고 있는 폴 매카트니의 사진을 보고, 자신을 양으로 해석했던 존 레논을 언급했다.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해 보면, 이 제목에서 Lamd(양)은 존 레논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가사와 상황을 보면 뜻이 더욱 명확해진다.


이 노래가 발매될 당시 존 레논은 미국에 있었는데 영주권과 비자 문제로 미국 밖을 나가지 못했으며

폴 매카트니는 반대로 미국으로 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 I Have No Answer for you Little Lamb

어린 양, 너를 위해 해줄 말이 없구나

I can help your out

너를 밖으로 나가게 해주었지만

But I cannot help you in

안으로 들어오게는 못해주었구나

.

But We may never meet again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하겠구나

.

I'm waiting

난 기다리고 있어

.

How did two rights make a wrong

둘다 잘못이 없는데 왜이렇게 되었을까"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자신의 상황에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렇게 둘은 서로에게 노래를 통해 메세지를 전달했다.


74_john-lennon-paul-mccartney_01.jp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그리고 비틀즈가 해체한 지 4년이 지난 시점


둘은 다시 만나 화해하게 된다.


이 때 존 레논은 어렸을 때 처럼, 폴 매카트니의 집에 기타만 들고 찾아갔는데

폴 매카트니는 "우린 더이상 애도 아니고 비틀즈도 아니야"라고 말했고

존 레논은 이 말에 큰 상처를 입는다.

후에 폴 매카트니가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존 레논의 상처를 지워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 무렵 존 레논은 잠시 음악계를 떠난다.

가정에 충실하기 위함이 이유였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1980년대를 맞는다.

음악의 흐름은 바뀌게 되어, 뉴웨이브나 신스팝과 같은 새로운 장르들이 생겨났고

더욱이 하드록 vs 펑크 록 등 같은 록 장르 이내에서도 마찰이 생겼다.


이에 음악계는 원조 록스타 존 레논의 복귀를 원했지만

존 레논은 이 응답에 답하지 않았다.

완고한 존 레논을 복귀하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폴 매카트니였다.


폴 매카트니의 Coming Up

당대 유행하는 장르인 신스팝과 뉴웨이브를 자신의 개성으로 훌륭하게 표현해낸 폴 매카트니의 Coming up은

혁신적이면서도 독특한 음악으로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차를 운전하던 존 레논의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게 되는데

이를 들은 존 레논은 5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차의 방향을 돌려 스튜디오로 달려간다.



폴 매카트니는 5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돌아온 존 레논을 환영하였으며

특히 이 때 발표한 존 레논의 Beautiful Boy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뽑기도 하였다.


존 레논의 죽음

1101801222_400.jp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음악이 죽은 날"


5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오랜만에 돌아온 존 레논은 복귀한지 얼마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정신병자인 마크 채프먼의 총에 맞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병원에 도착한 존 레논은 이미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


이 때 병원에서는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All My Loving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 노래는 존 레논이 가장 좋아하는 폴 매카트니의 노래 중 하나였다.


결국 존 레논은, 40세의 나이로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다운로드 (1).jpe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성가시지 않나요?"


더욱 충격적인 것은 폴 매카트니의 반응이었다.

존 레논의 죽음으로 미끼를 문 언론은 당연하게도 폴 매카트니의 반응을 취재했다.

이 때 폴 매카트니는 언론 앞에서 "성가시지 않나요?"라고 말하며 평상시와 같이 스튜디오로 출근을 했으며

이는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는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왜곡된 것으로

후에 폴의 아내 린다 매카트니(앞서 소개하였던 린다 이스트먼)이 밝히기로는

존이 죽은 다음날, 폴이 하루종일 자신에게 안겨 아이처럼 울었다고 했다.

스튜디오로 출근한 것은, 언론을 피하기 위했던 것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존 레논의 추모곡, Here Today


"What about the time we met?
Well, I suppose that you could say that we were playing hard to get.
Didn't understand a thing,
But we could always sing.
우리가 만났던 시절이 기억이 나요.
아마,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연주해야한다고 했죠.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늘 노래를 부르곤 했죠.

("하루는, 존과 폴이 밤새도록 서로 부둥켜 앉고 울면서, 미래의 성공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듯 하다)

.

.

And if I say,

I really loved you and was glad you came along.
If you were here today.
Ooh- ooh- ooh, for you were in my song.
Ooh- ooh- ooh, here to-day.
만약 내가,
당신을 진정 좋아했다고, 당신이 함께 있어줘서 기뻤다고 말한다면
만약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다면
아, 당신은 내 노래속에 살아있기에. 

아아, 지금 여기에" 


이 무렵, 폴은 존 레논의 죽음을 잊기 위해, 자신과 평소 친하게 지냈던 가수 칼 퍼킨스와

비틀즈의 멤버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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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퍼킨스는 초대해줘서 감사하다며, 노래를 하나 들려준다.



비틀즈의 멤버들은 칼 퍼킨스의 노래를 기분 좋게 감상하고 있었는데

폴 매카트니가 갑자기 오열을 하며 집을 나갔다.


당황한 칼은 폴의 반응에 대해서 물었고

이 때 린다 매카트니는 칼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아셨죠?

당황한 칼은 " 뭐를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린다 매카트니는

"그 말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두 명 뿐이거든요. 이제 세 명이 되었네요. 그 세 명 중 한 명은 당신이구요."


칼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설명해 달라고 했고

린다 매카트니는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존 레논이 죽기 전, 둘의 마지막 만남은 다코다 빌딩 앞에서 이루어 졌는데

헤어질 때 존이 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때때로 나를 생각해줘, 내 오랜 친구야.(THink about me every now and then, my old friend)"


이는 놀랍게도 칼 퍼킨스가 부른 노래의 가사와 완전히 일치했다.

폴 매카트니는 칼 퍼킨스의 노래 가사를 듣고, 존 레논과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칼은 이를 회고하며, 자신의 노래를, 존 레논이 천국에서 내려준 노래이며, 폴 매카트니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비틀즈의 재결합

Thesunthreetles.jpg 대중음악의 영원한 떡밥
존 레논의 죽음 이후, 세 명의 멤버는 다시 한 번 모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비틀즈의 미발매곡을 발표하는 앤솔로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이 때 비틀즈 멤버들은, 존 레논이 사전에 작업하던 노래들을 완성시켜 발표한다.


Free As A Bird



Real Love


이 두 노래는 흥행에 성공한 동시에 많은 비틀즈 팬들을 울렸다.


당시의 작업을 폴은 이렇게 회고했다.

"저희는 존이 커피를 타러 가거나 화장실에 갔다고 생각했어요. 존이 없다는 건,,, 너무 슬프기 때문이죠."


현재

존 레논과 지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폴 매카트니의 노래인 Early Days


폴 매카트니는 최근 앨범 기준으로 빌보드 3위 - 1위 - 2위를 차례를 기록하며

아직도 건재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폴 매카트니는

" 존 레논의 죽음은 저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어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나는 왜 매일 울지 않을까?"

라고 말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비틀즈 해체는 존 레논 때문"

이라고 말하며 단순하게 치부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인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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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의 여자친구였던 메이 펭은 존 레논이 폴 매카트니를 생각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하며

이는 존 레논의 일기에서도 드러난다.

존 레논의 일기장은 매일같이 폴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는 폴 매카트니도 마찬가지였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파트너였던 동시에, 라이벌이기도 했으며, 가족이기도, 친구이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이 둘의 관계는 하나로 특정지을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8 Comments
지금은이지은시대 2022.02.19 03:49  
ㅇ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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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들요 2022.02.19 21:03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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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문가 2022.02.21 09:31  
ㅇㄷ

럭키포인트 18,764 개이득

NationalTaxServ… 2022.02.21 12:30  
"비틀즈는 예수만큼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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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구짖는다 2022.02.22 15:38  
브틀즈 ㅇ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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윾갈비 2022.02.22 15:43  
정말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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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다징쟝 2022.02.22 16:38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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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버핏 2022.02.23 07:51  
ㅇㄷㅇㄷㅇ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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