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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교체기] 칠대한-2 여진통일기

주성치 0 73 1 0

참고 또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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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9. 해서여진의 4부족 중 하다예허의 갈등이 심화되어갔다.

하다의 족장 멩게불루는 상황이 다급해지자 셋째아들을 누르하치에게 파견, 구원을 요청한다.

누르하치의 병력이 움직이려하자 예허는 명나라에 도움을 청하게되고, 예허와 명의 압력에 의해 하다는

누르하치와의 동맹을 철회하게 된다. 뒤통수를 맞고 빡쳐버린 누르하치가 하다를 공격, 멸망시키고

멩게불루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명이 가만히 두고 볼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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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 고압적인 명나라 사신의 힐문에 누르하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사신은 매우 거만한 태도로 하다를 공격한 일에 대해 질책하는 한편, 하다의 유민들을 멩게불루의 아들

우루구다이에게 반환하라고 강요한다. ‘참아야 한다. 아직은 때가아니다.’ 누르하치의 생각이었다.

누르하치는 명의 요구에 따라 유민들을 송환한다. 그러자 예허가 하다를 공격하여 자신의 세력으로 편입시켰다.

 

예허의 공격을 명나라가 문제삼지 않자 누르하치는 격분했다.

누르하치는 명의 이중적인 태도에 항의하는 서한을 보낸다. 그러나 이미 예허부를 파트너로 삼은 명이었다.

누르하치 역시 명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일은 피했다. 그에게 있어 명은 아직도 올라설 수 없는 고산이었다.

 

남은 해서여진은 예허, 호이파, 울라부. 그들은 막강한 누르하치를 견제하기 위해 단결이 절실했으나

그들 사이의 알력으로 인해 연합전선을 펼칠 수 없었다. 결국 1607호이파의 내분으로 인해 예허의 영향력이

호이파에 미칠기미가 보이자 누르하치는 호이파를 공격. 병합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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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하치와 예허의 틈바구니 속에서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울라족은 누르하치의 압박을 피해

조선까지 끌어들이는등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1610년 예허와의 중간 길이 끊기고, 교역의 통로가 막힌 울라는

조선조정에 사신을 보내 직첩을 하사해주길 요청한다. 6년이나 지속된 울라와의 전쟁은 두만강을 건너

조선의 종성 오길암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누르하치가 대승을 거두면서 우세를 이어나가 1613년 마침내 울라부를 멸망시켰다.

 

아이신기오르 누르하치 대칸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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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는 무관)

*명나라에 보낸 예허부 족장 긴타이시의 서한

사납고 흉폭한 누르하치의 만행은 멈출 줄을 모르고 있소. 그들은 울라를 짓밟고 유린한 것도 모자라

우리에게 망명한 부진타이를 내놓으라 협박하고 있소. 우리 예허는 결코 놈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놈의 4만의 군대는 거칠 것 없이 밀려들어오고 있소이다. 명심하시오. 우리가 무너진다면 필시 그놈은

요양을 쳐서 수도로 삼고 개원과 철령을 모조리 목초지로 만들어 버릴것이니. 그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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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허부 족장 긴타이시의 구원요청은 차라리 경고에 가까웠다. 만주에서 누르하치의 마지막 저항세력은

이미 7개의 성이 떨어졌고 숨통이 끊어지길 기다리는 신세였다. 천명의 명군이 예허로 진입하자 곧 끊어져버릴 것 같았던

예허의 명줄은 잠시나마 연장되었다. 명이 군사적 행동까지 보이며 누르하치를 견제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부잔타이가 배신을 거듭했던 사실과 예허가 해서연합군을 이끌고 먼저 침공했기 때문에 자신의 예허 공격은

정당하다고 강조한 국서를 들고 누르하치는 명군 주둔지인 푸순성에 직접 찾아가 전달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명은 더더욱 누르하치를 압박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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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 정지 명령. 누르하치를 눌러버리기 위해 명나라가 택한 방법은 경제적 고립책. 경제적을 자립할 여건이

되기 힘든 만주의 특성상 교역 정지 명령은 누르하치에게 치명타였다. 그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시하, 무안, 삼차에 대규모 개간사업을 벌였으나, 문제는 명도 이를 알고있었다.

 

1615년 명의 광녕총병 장승음은 이 세 곳의 주민들을 내쫓고 수확을 금지하는 조처를 취한다.

누르하치는 격하게 반발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누르하치. 그는 대국이 소국이 될 수 있고,

소국이 대국이 될 수도 있는 것은 하늘의 이치라는 강도 높은 발언을 통해 명과의 정면대결을 암시한다.



누르하치.jpg [명청교체기] 칠대한-2 여진통일기
그리고 이듬해 1616

30여년전 고륵채성에서 조부와 부친을 잃고 25살의 젊은나이에 부족을 이끌게 된 아이신기오르 누르하치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대칸의 자리에 오른다. 국호는 대금. 한족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여진족 금나라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칠대한. 명나라에 대한 선전포고

 

이유한. 명 조정에 의해 광녕 순무로 부임해온 그는 누르하치의 축하사절단인 강구리팡기나를 구금했다.

누르하치가 경계를 넘어온 한인들을 살해한 것이 이유였다. 그는 한인 살해에 대한 질책과 더불어 가담한 자들의 신병을 요구했다.

누르하치의 설득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강구리와 팡기나를 살리기 위해 예허의 포로10명을 한인살해자로 넘기는 편법을 사용한다.

약속대로 강구리등은 풀려났으나 이 사건으로 누르하치는 더 이상 명에게 엎드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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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왔음을 직감한 누르하치는 신료들을 모아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그는 지난 30여년간을 참아왔던 것이다. 누르하치는 명에 대한 일곱가지의 원한,

칠대한을 내걸고 명나라에 선전포고를 한다. 바짝 엎드려서 힘을 비축하던 만주의 호랑이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고산을 정복할 준비가 되었다.


동아시아 전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명청교체기의 서막은 이렇게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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