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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에그몽 13 2196 16 0

1.jp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1398년 태조가 병환을 틈타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모두가 알다시피 이후 태조의 힘이 꺾이고 이방원이 득세해서 조선의 실권을 장악함.





젊어서는 한반도 전역을 누빈 강골의 무장이자 동북면 대세력의 '오야붕' 이었던 이성계는



왕자의 난 당시 당시로선 상당한 고령 + 마침 애정하던 신덕왕후 추모를 위해 안좋은 날씨에도 계속 불공을 드리느라 몸이 축나서 



자기가 아끼던 정도전 남은 및 아들들이 죽고 죽이는 상황에서 손을 쓰지 못함.


그렇게 모든 날개가 꺾인 이후에야 겨우 포도를 먹으며 목을 축이며 요양하며 몸을 추스림.








"개국 공신(開國功臣) 정도전과 남은 등이 몰래 반역(反逆)을 도모하여 왕자와 종실(宗室)들을 해치려고 꾀하다가, 지금 이미 그 계획이 누설되어, 공이 죄를 가리울 수가 없으므로, 이미 모두 살육(殺戮)되었으니, 그 협박에 따라 행동한 당여(黨與)는 죄를 다스리지 말 것입니다."



변중량(卞仲良)으로 하여금 이를 써서 올리니, 임금이 시녀(侍女)로 하여금 부축해 일어나서 압서(押署)하기를 마치자, 돌아와 누웠는데, 병이 심하여 토하고자 하였으나 토하지 못하며 말하였다.



"어떤 물건이 목구멍 사이에 있는 듯하면서 내려가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에 묘사된, 자기 동지였던 정도전 남은 등이 죽고 난 뒤 이성계의 반응.


'정도전 남은이 역적질 해서 죽였다.' 는 이방원 쪽의 글에 아픈 몸으로 어거지로 일어나 서명하고


나중에 누워서 토하려고 하는데 병환과 분노로 기력이 빠져서 구토조차도 못해서


"목에 무언가 걸린듯 한데, 내려가지 않는다." 며 울분을 토하는 모습.


이성계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기록임.







1.jp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몸이 회복된 이성계는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불공을 드림.



애초에 유교국가에서 아버지인 상왕을 건드리기도 뭐하고


연산군, 광해군처럼 왕이 무능해서 쳤다는것도 아니고 왕자의 난 명분도 '왕 주변의 간신 제거한다' 였지 


조선을 세운 개국군주이자 영웅인 태조 격하는 꿈도 못 꾸는 일이라 건드릴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쳐도 딱히 이런 이성계를 크게 제지 안한걸 보면,



당시 이방원 역시 



"태조가 기력이 많이 쇠하긴 한것 같다. 


이젠 사실상 뒷방 늙은이가 되었으니 굳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다."


이런 생각이 있었을듯도 함.




그러나 아직 이성계는 속에 불구덩이가 남아 있었음.






1.PN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2.PN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태조가 물러나고 잠깐 정종이 즉위한 시기도 지나서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한 후인 1401년 경에



갑자기 이성계가 태종더러 오라고 해서 태종이 이성계 있는 태상전에 나감.
 

그리고 날이 저물도록 왕 되기 시절인 잠저 시절 이야기를 계속 꺼내며 한참을 뭐라고 했다고 함.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굳이 잠저 시절 이야기를 꺼낸걸 보면




죽은 사람들 이야기 하면서 응어리진 울분 토해내면서 훈계했을수도 있고,


여하간 태종 떄 태조 관련한 부분 기록은 이런식으로 걍 뭔가 많이 생략되어있는 느낌이 많음.





여하간 그러던 이성계가 며칠 지나더니 갑자기 야밤을 틈타 궁궐을 나가서 소요산으로 날라가버림


한밤중에 갑자기 나갔고, 자려다가 소식 들은 태종이 깜짝 놀라서 


나가시는거 전송 나간다는 명목으로 말리려고 헐레벌떡 따라갔는데



이성계가 그꼴도 안보려고 하도빨리 나가는 바람에 만나지도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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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태상왕이 도성 밖에서 오래 머무니까 다들 얼른 돌아오시게 해야 한다고 성화였고,



신하들 계속 보내서 돌아오라고 했는데도 이성계가 말을 안들음.



그러다가 날짜 잡아서 1402년 태종이 직접 이성계 보러 소요산까지 행차함.



옆에서 이성계 왕되기 시절 무장때부터 알고 지내던 고려시절부터 있던 원로인 성석린 등이 돌아오라고 계속 싹싹 빌고



이성계랑 태종이 술 한자 거나하게 취함.



그러면서 태종 측에서는 제발 좀 돌아오라고 부탁함.



"불공 드리고 염불 외우는게 꼭 소요산 아니어도 되잖습니까?"




그러자 이성계가 대답함.




"너희들 속내가 뭔지는 내가 아주 잘 안다. 


내가 부처를 좋아하는게 다른 이유겠느냐? 그저 두 아들과 한 사람의 사위 때문이다!"




저기서 말하는 두 아들은 당연히 왕자의 난 때 죽은 두 아들이고,


사위는 왕자의 난 때 종친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대항하려고 하다가 죽은 흥안군 이제임.




조선의 왕인 태종 눈앞에서 왕자의 난때 태종이 때려죽인 사람들 거론하면서


내가 부처 좋아하는건 니가 때려죽인 그 사람들 저승에서라도 무탈하게 명복을 빌기 때문이다 라고 하는거.




그러더니 아예 태종 쳐다보,지도 않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거의 부르짖음



"우리들도 이미 다 서방 정토(저세상)로 향하고 있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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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저렇게까지 하니까 


태종도 도저히 설득 못하고 태종도 결국 며칠 지나서 달아나듯 혼자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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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다음달에 다시 "북방일은 상왕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러고 북방일 논의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찾아가기도 함.


그래서 짐짓 사냥도 한다면서 머물면서 또 내려오라고 꼬시는데,


당연히 전혀 말을 안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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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동북면의 도순무사인 박만이라는 사람이 가서 이성계를 만나니까,


동북면 출신 만나니 이성계도 간만에 기분 좋아져서 계속 웃고 "동북면 사람들은 내 형제들이야!" 이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박만이 울면서 


"지금 나라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전하께서 환궁하셔야 합니다" 하니까 



조선 왕이자 아들인 이방원이 직접 두번 행차해서 싹싹 빌면서도 못한 환궁을 


걍 동북면 지인이 부탁하니까 이성계가 들어줘서 잠시 환궁함.



물론 그렇게 박만 체면만 세워주고 일주일도 안되서 다시 소요산으로 돌아가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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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이러니 또 다시 자기가 소요산 가서 이성계에게 문안 드리겠다고 하는데


이성계는 법회를 여는데 외인이 들어오면 안된다면서 



걍 대놓고 태종 오지 말라고 왕을 무안을 주기까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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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난 등으로 이성계 가슴에 대못 박은건 박은거고,



본인부터가 효를 중시하는 유학 공부해서 과거 급제까지 한 사람이기도 하고,


부자관계가 지금보다 몇십배는 더 중시된 그 시절에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숨기는거 없이 본인에게 한을 내뱉듯이 하니까



아들된 입장에서 태종 입장에서도 많이 철렁했는지, 


태종이 즉위한 후에는 이성계 눈치를 많이 살피면서 노기를 가라앉히려고 신경을 많이 씀.





한번 아예 대놓고 까이고도 다시 소요산에 가려고 또 준비를 하니까


신하들이 "농사철이니 기다려라." 하고 만류하고,



"시종 적게 데려가겠다. 사냥도 안하겠다(태종은 사냥 중독자 수준이었음). 


임금 행차한다고 백성들 해 입을거 없다. 아버님 슬쩍 보고 하룻밤만 자고 오겠다."




이렇게 사정사정하고



"아무리 그래도 임금 행차가 전혀 근처 백성들에게 부담이 안될수가 없다. 


괜히 그러다가 근처 백성들 피해 입으면 태상왕께서 더 노하실거다."




이러면서 계속 신하들이 말리니 "그러면 나는 봄하고 여름에는 아버님 아예 뵐수도 없는거냐." 며 답답해하기도 함.







걍 이렇게 계속 쪽만 주고 말았으면


걍 이성계 늙은이가 나이먹고 미운놈에게 꼬장 부리는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무렵 이성계는 은밀히 군사작전을 준비 중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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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 이성계간의 저런 일이 발생하던 1402년 11월,



신덕왕후의 친척이었던 '조사의' 라는 사람이 동북면에서 '신덕왕후의 원한을 갚겠다' 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킴.



그런데 이게 살펴보면 뭔가 좀 이상함.





일단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는 애초에 출신이 중앙쪽이지 동북면이 본가가 아님.


동북면 출신인 이성계가 중앙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결혼해서 중앙쪽 연줄을 터준 정략결혼을 한 사람이 신덕왕후인데

(그런것치고 이성계와 정분이 좋았지만)




신덕왕후 친척이 동북면에 반란을 일으킬 정도의 영향이 있을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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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조사의의 난이 끝난 이후 실록기사를 보면



'동북면에 가별치(가별초)라는 이름의 세력이 사적인 세력으로 남아 있고 주현에서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데, 


이번에 역적 조사의가 오로지 이들 무리의 힘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하마터면 사직이 위태로울 뻔 했으니 이번에 혁파해야한다.'




며 조사의가 가별초 빨로 반란 일으켰으니 가별초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함.





동북면의 가별초가 중앙 출신의 신덕왕후 친척 하나를 위해 거병을 할 이유가 없음.





더군다나 당시 반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처벌을 받은 사람이 정용수, 신효창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소요산에 간 이성계를 모시러 갔던 사람들임(정용수는 이성계 개국 이전부터 따라다닌 측근)



여기에 '함승복' 이라는 환관 역시 반란에 가담했다고 처형 당했는데, 이성계를 모시는 환관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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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의의 난이 끝난 뒤 십수년이 지난 한참 뒤에 


다시 한번 이 일에 가담한 사람들을 처벌하자 하지 말자 이러면서 당시 이야기가 조정에서 또 나오게 되는데,




'안우세' 라는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북쪽에 갔을때 정용수와 신효창이 (태조의 환관인) 함승복, 배상충 등이 북쪽 땅에서 군마를 모으고 있다.


이거 왕에게 지금 알려야 하냐 말아야 하냐? 하길래 눈치보다가 밤중에 도망쳤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김수징' 이라는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안우세가 도망친 뒤에 조사의 쪽에서 화가 나서 태조에게 '정용수, 신효창 이 두 사람 아무래도 다른 마음 있는것 같다(내통)


지금 죽이는 것이 좋다' 고 제안했지만 태조가 거절했다."




고 이야기 함. 


즉 반란 수괴 조사의가 이성계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는 상하관계가 묘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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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결정적으로 '소요산 사태' 직전에 이성계가 북쪽 안변에 있다가 온 적이 있음.


이때는 그래도 오래 성석린이 회유를 열심히 해서 좀 빨리 내려오긴 했는데



조사의가 '안변부사' 임. 즉 저때 조사의를 만나서 이미 이야기가 맞춰졌다는거.



결정적으로 조사의는 1차 왕자의 난 당시의 혼란 와중에 잡혀들어갔었는데(신덕왕후 친척이니까)



이성계가 부탁해서 태종이 풀어준 사람임.


물론 북쪽에 보낼때까지만 해도 "신덕왕후 세력이 북쪽에는 없으니까." 라고 태종은 생각했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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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에 조사의가 11월 5일 군사를 일으킨게 보고되고,


조정에서 박순ㆍ송류 등을 파견하는데 반란군은 이들을 다 죽여버림.




11월 19일 반란 진압군 이천우가 보낸 기병 100명이 유격대 목적으로 접근했으나 죄다 조사의에게 사로잡힘.



11월 20일 날에는 기세를 타고 온 조사의 군단과 이천우 부대가 맞서는데, 이천우 부대는 대패하고 


이천우 본인만 아들과 함께 겨우겨우 포위망 돌파하고 탈출에 성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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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우의 패전때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사람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조사의 군의 병력은 6,7천명 이상


그런데 올랑합 여진족이 곧 합세하면 총 병력은 1만명이 넘을거다 라는 보고가 올라옴.


신덕왕후 친척인 조사의가 동북면 가별초에 이어 뜬금없이 여진족까지 동원할 수 있다는 뚱딴지 같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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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성계는 8월쯤부터 느닷없이 금강산 놀러간다고 길 떠나더니,



잠깐 명나라 사신이 만나러 오는것 때문에 그래도 명나라 사신은 중요한 나라일이니 좀 기다려서 명사신을 만나서 같이 놀고



명나라 사신이 중국에도 유명한 명산인 금강산 보고 싶다고 하니 "지금 가면 얼어서 가는 길이 안좋을텐데?" 라고 대답



그렇지만 먼 길 온 명나라 사신이 기어코 금강산 다녀오자 기다렸다가 환대해서 보낸다음



일주일전까지 금강산도 얼어서 길이 어렵다는 사람이


갑자기 "자 동북면 가자" 선언함




이성계가 명나라 사신 대접한다고 하니 태종이 보내서 온 사람은 깜짝 놀라서


"전 사신 대접한다고 해서 왔는데 그렇게 먼길 간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자 "그럼 나 배신할거냐?" 며 억지 쓰면서 데려감





그러면서 "내가 여지껏 즉위한 뒤에 선조들이 있는 동북면의 무덤 참배한적이 없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느냐?"


"나라 사람들이 지금 나의 행차를 보고 다들 미쳤다고 할테지만.."




라면서 "사람들이 지금 날 보면 미쳤다고 할거다." 라는 소리를 몇번이고 강조함


즉 실록에서는 (감히 태조가 반란군에 합세했다고 쓸 순 없어서) 여러가지로 생략하면서 묘사가 잘 안되었지만,


저때 이성계는 뭔가 미친짓을 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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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태종은 이성계의 위치를 보고한 사람에게 말을 내려줌.



이성계가 걍 평범하게 제사 지내러 갔다면 무슨 첩보작전 하는것마냥 이렇게 실시간으로 어딨는지 위치추적할 필요도,


보고 좀 했다고 상을 줄 필요도 없었을것.



즉 태종에겐 당시 이성계의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하는게 중요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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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이 일어난뒤 태종의 반응도 기묘한데,


지금 당장 반란군을 이끌고 움직이는건 조사의인데 정작 조사의를 향해 군사작전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이성계가 공경하는 무학대사를 파견해서 이성계에게 어서 돌아오라고 설득을 시도함.



반란군이 파죽지세인데 반란군이 아니라 이성계를 보고 있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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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성계 회유작전을 시도하던 태종은 11월 21일,


급기야 당시 수도 개경(태조때 한양이었다가 정종때 잠시 개경으로 바꿈)에서 군사를 이끌고 출동,


왕이 '친정' 을 나감.



조선 500년 역사상 국왕의 친정은 이때가 마지막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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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친정하며 나선 태종은 바로 다음날


뜬금없이 '원중포' 라는 포구로 감. 거기에 무슨 조사의가 있는것도 아닌데...



그러더니 4일 지나서는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갑자기 다시 개경으로 돌아옴



더 놀라운건 그런 바로 다음날, 기세등등했던 조사의 군은 갑자기 알아서 멸망하기 시작함.



완전히 사기가 바닥나서 지리멸렬해지고 흩어지고 도망치고 난리가 남.




물론 그것과 별개로 당시 태종이 4만이나 되는 병력을 동원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쳐도 너무나도 갑작스레 군단이 박살나기 시작





그리고 며칠 뒤, '미친짓 한다' 는 태조가 '돌아오겠다' 고 하고


일주일 좀 넘은 뒤 수도로 돌아옴.






1.jp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일종의 추론으로, 당시 나이 70살이 다 되어가고


그러면서 동시에 조사의의 반란을 조종하기 위해 심력을 쏟아붙은 이성계가 탈이 나


이 당시 으슥한 포구에서 휴양하고 있었고,




이 정보를 파악한 태종이 소수 병력을 이끌고 달려가 이성계의 신병을 확보한거 아니냐는 추측도 있음.



이러면 갑자기 반란군을 앞에 두고 원중포로 간것도 설명이 되고


원중포에서 며칠동안 머문것도 명색이 태상왕인 이성계를 범죄자처럼 끌고 올 순 없으니



신병을 확보한채로 이성계가 완전히 포기하도록 약간의 협박을 섞은


(태상왕에게 지나치게 불온한 짓은 불가능하니 시간이 필요함) 회유하는 시간이었을 수 있고





이렇게 회유 끝에 결국 핵심인 이성계가 포기했다는게 전해졌다면, 


가별초 부대가 태종이 원종포에서 돌아온지 하루만에 와해되는것도 아귀가 맞아떨어짐







추측이 섞인게 많긴 하지만 애초에 조사의의 난 관련 기록이 굉장히 모호하게 써져있음.


정확히 말하면 어떤 늬앙스인지 해석이 어려워서 모호하다기 보다도,


국왕이 친정하고 4만이 되는 군단을 동원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기록아 간략하고 생략이 뭔가 많음




나라 세운 태조와 전쟁했다는것 자체가 너무 상세하게 남기면 태종 입장에선 무안하고 민망스러운 일이기 때문.




실제로 조사의의 난 처리도 뭔가 이상할 정도로 간략하게 됨.



단순 골방 음모 수준이 아니라 수천~1만 병력을 이끌고 나라 뒤엎으려고 한 대대적인 군사반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형 당한건 조사의와 그 아들을 포함한 16명뿐




끌고 와서 조리돌림 시키고 그런것도 아니고 걍 깔끔(?) 하게 참형만 시킴.


괜히 데려와서 일 크게 만들면 안되는다는듯...





그리고 반란에 가담한, 특히 태조 옆에 있다가 동북면으로 따라가는 바람에 졸지에 가담하게 된


정용수, 신효창 등등에 대해서는 무려 반란에 가담했는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관대한 처벌이 내려짐.



마치 "솔직히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쩔 수가 없었겠지. 입장상.." 이런 느낌




애초에 본원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니만큼 최대한 걍 물렁하게 덮고 덮고 


그냥 이 이야기가 더 크게 번지지 않게 틀어막는 느낌.






6.jp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일을 이렇게까지 저질렀으니, 이성계는 그 뒤로는 계속 수도에서 지내게 됨.




다만 그렇다치더라도 태종이 이성계에게 불손하게 굴진 않고, 오히려 이전 이상으로 더 깍듯하고 공경하게 대하긴 함.



아버지>>>아들이었던 시대에 아버지가 아무리 열이 받아도 그렇지


내가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하게 해버렸구나 이런것도 그렇고,




응어리진 분노를 좀 풀기를 좀 많이 갈구함.




그리고 이 무렵에는 이성계도 어떤 의미로는 약간 속에서 많은걸 놔버려서,


태종 앞에서 "네가 때려죽인 두 아들과 사위" 운운하던때에 비해서 꽤 태도가 유해줌





1.PN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아바마마! 소자의 춤을 보시옵소서!"

"그만하시오 주상! 그만하시오..." 

용의눈물




조사의의 난 지나고 거진 8개월 넘게 둘이 공적인 만남 두어번 뺴면 별다른 일도 없으니 오히려 태종이 더 전전긍긍함.



이성계가 불경을 외느라 고기와 술을 안먹는다는 말을 듣고, 고기 반찬 주면 성을 낼까 두려워서

일부러 좀 가벼운 소찬을 낸다음 조심스레 고기 반찬을 냈는데 이성계가 잘 먹으니까


"아! 고기 드신다!" 이러고 기분 좋아져서 아버지 고기 먹는다고 풍악을 울리고 


부자가 같이 술 잔뜩 먹고 기분이 좋아서 이성계랑 태종 두 사람이 모두 일어나서 거나하게 춤을 춤.


그전까진 항상 칼날 위를 걷는듯이 불안하던 관계의 두 사람이 

이렇게 한껏 춤사위 하면서 뭔가 응어리진 많은게 풀어졌는지

이전보다 훨씬 유화적이 됨.






1.PN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그리고 한참뒤, 


당시 '이거이 반란 모의' 사건이라는게 생겼는데, 조정 대신이 이 문제 처벌을 이야기 하는데


마침 이성계가 "간만에 주상 보고 싶다" 고 연락하니



태종은 "아바바마가 그간 나를 부르지 않았는데 나를 부르셨다고? 


이거이 사건 이런것보다 지금 이게 더 중요하다. 내가 즉시 가야겠다."



이러면서 반란 음모 사건 조사도 일단 다 제껴두고 이성계에게 달려감.




이성계 만나보니 이성계는 "주상이 여태껏 나를 격구로 이겨본적이 한번도 없으니 벌 주려고 불렀다 ㅋㅋ" 하고 농담함




아버지 기분 좋아보이니까 태조 기색 살피면서 태종이 조심스레 이거이 사건 이야기 하니




이성계가 그 말 듣고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하늘을 한참 바라보더니 




"어차피 이건 네가 결정할 일이지만, 회안군(이방간)은 쫒겨났고, 익안군(이방의)는 죽었고, 상왕(정종)은 궁궐에 출입하지 않으니, 친지들 가운데 이제 살아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냐? 일이 이루어질때야 돕는 사람이 많겠지만 어려워지만 드물다. 그럴때 친지들만큼 의지되는 사람들이 없다. 네가 그들을 보호하면 국가의 재앙도 적어질 거다."





태종은 이 말을 듣고 감격해서 눈물을 줄줄 흘림.


왜냐면 이거이는 이성계와 겹사돈 사이이긴 한데, 


왕자의 난때 태종 측근으로 이성계가 아끼던 사람들 때려죽인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음.




이성계가 그토록 응어리진 분노 속에 품으면서 미워하던 사람들 중에 하나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 이상 증오에 사로잡히지 않고 인척들간의 미친 피비린내 나는 일은 그만두자고 


이성계가에 속에 분노를 죽이고 그보다 인척들간이 정을 더 우선시한거.




태종 본인에게도 어떻게 보면 해당되는 이야기라 유독 더 크게 태종이 울면서 감동하고



이거이가 당시에 했다고 의혹이 제기된 발언의 수위가 엄청났는데도 

(태종 아들들 제거하고 사람 좋은 정종 다시 세우는게 우리들 권력에 좋을듯 이런 미친소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됨)



천하의 태종이 이걸 그냥 적당히 유배 보내는 선에서 끝내고 더 파고들질 않음.


심지어 그 유배도 말단 섬에 보내도 시원찮을 판에 충청북도 쯤에 보냈다가


말년엔 수도 근처인 경기도 쪽으로 옮겨줌.




대간들이 심심하면 "이거이 죽여야 한다" 고 상소를 올렸는데 걍 다 씹음. 


아버지가 "용서하자" 고 그렇게 말한 대상이라...






1.PN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그 뒤부터는 종종 같이 격구도 하고 술자리도 자주 하면서 서로 즐기는 경우가 많아짐.





2.PN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이성계가 말년이 되면 뵙고 싶어도 몸이 안 좋아서 못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성계도 자식 앞에서 추한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상태 안 좋으면 잘 안만나줘서


저때는 거의 몇달 동안 제대로 문안을 못 드릴 정도였음.


그러다 저날 상태가 좋아서 오랜만에 이성계 침실에 들어와도 좋다고 해서 들어와서 같이 술 한잔하고 돌아가니



태종이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옆에 신하에게 



"야 피리 불러봐라, 오늘 기분 좋아서 피리 소리 듣고 가고 싶다" 이럴 정도.







1.PN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그렇지만 이성계의 몸상태는 결국 회복이 안되고


막판에는 정종은 아예 이성계 옆에서 먹고자고 하면서 지내고


태종도 정무가 없으면 계속 이성계 옆에 가서 의원이 약 바치는거 자기가 먼저 먹어보고 보내는등 노심초사 했는데




결국 며칠 동안 비오는날 이성계 상태가 극히 안 좋아지자 그 말 듣고 


태종이 체통이고 뭐고 미친듯이 뛰어와서 청심원 들고 아바바마 드시옵소서 하고 드렸는데,



이성계가 결국 삼키지 못하고 두 눈 뜨고 두어번 태종 쳐다보다가 결국 승하함.




정종도 뒤늦게 소리 듣고 수행원도 없이 헐레벌떡 뛰어왔는데 이미 그때는 이성계는 죽은 뒤였고,


방안에서 태종이 미친듯이 울면서 가슴 두드리고 땅치면서 비통해하는 소리가 방 밖에까지 들렸다고 함.





1.PNG 조선 500년 유일하게 왕이 친정한 이성계 vs 이방원, 조사의의 난

 


이 부자도 참 애증어린 관계.



이성계 젊은 무장 시절에 아들 이방원이 과거급제해서 오자


이성계가 너무나도 기뻐서 대궐에서 절을 올리면서 눈물까지 흘리고,



벼슬이 나오자 기뻐서 사람 시켜서 임명장을 몇번이나 읽어보면서 리딸하면서 좋아했다고 함.




그리고 유학자, 사대부들하고 교류할때도 그런 사람들 초대할일 있으면 항상 "방원이 나와봐라!" 하면서


"이놈이 우리 아들입니다" 이러면서 서로 한시 대구하면서 손님하고 맞장구 치게 하고 흐뭇하게 보다가



"내가 손님들하고 사귀는데 다 네 힘이 크다." 이러면서 어깨 탁탁 쳐주던 관계.




태종 입장에서도 애초에 처음부터 귀한 왕족 되기 이전부터 기억이 있는데 


그런 청년기에 아버지에게 "네가 자랑이다." 이런 말 듣던 기억들


참 뿌듯하고 자긍심 있던 기억으로 남았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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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1 철산역  
솔직히 이방원 없었으면 조선 없었는데 이방석 세자는 너무 뜬금없었음
아무리 이성계가 세운 나라라고 해도
13 Comments
철산역 2022.01.15 19:44  
솔직히 이방원 없었으면 조선 없었는데 이방석 세자는 너무 뜬금없었음
아무리 이성계가 세운 나라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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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릴라드 2022.01.15 20:27  
지금 머릿속에 이성계 하면 유동근 얼굴이 떠오르고 이방원 하면 또 유동근이 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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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동 2022.01.15 20:39  
사람 냄새 나는 호걸들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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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왈 2022.01.15 22:32  
이것이 조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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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김 2022.01.16 03:02  
스압인데도 재밌게 읽었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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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퍽 2022.01.16 09:26  
이방원이 다 했는데 이방석 세자는 좀 선넘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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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 2022.01.16 10:32  
이런글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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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2022.01.16 11:40  
신덕왕후도 자기가 그렇게 빨리 죽을 줄은 몰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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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큰곰 2022.01.16 12:55  
여말선초가 역사중에서 젤 잼있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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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아재 2022.01.17 01:28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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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히버트 2022.01.17 08:18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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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뒤에서 2022.01.20 09:24  
굿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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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TaxServ… 2022.01.20 14:46  
그래서
대하드라마는 역시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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