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에 대한 갑론을박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23년 6월 10일, 바빌론의 한 도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 2주일간 고열에 시달렸다. 당시는 물론 수백 년이 지난 후까지 많은 학자들이 사인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의견이 엇갈렸을 뿐 결론이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임상 정보가 아주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의 질병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에는 몇 가지 증상만 기록되어 있다.

1. 독살설?

2세기에 아리아누스는 『알렉산더의 역사 History of Alexander』에서 주변 인물인 이오라스 또는 미디오스가 독살했다는 설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 시대에 독약으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설을 인정하기 어렵다. 당시에 사용된 식물 살리실산염은 온도 조절 장애를 일으키고, 알칼로이드는 발한 작용, 맥각(ergot) 독소는 열에 대한 이상 감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증상과 비교해 볼 때 독살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위의 독성 물질은 모두 오랫동안 고열을 일으킬 수도 없고, 살인을 위해 사용한 예도 없다.

플루타르크는 그를 치료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비소를 구해주었다고 기록했지만 이 또한 신빙성에 의문이 있으며, 비소 중독에 의한 사망설도 근거가 희박하다.

2. 급성 췌장염?

1997년에 그리스 의사 스바로니스가 주장한 이론이다. 14일 동안의 일을 검토한 다음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식사를 많이 하고 술을 마시면 급성 췌장염에 걸릴 수 있다. 병에 걸린 날 의사는 심각한 상태라고 판단했지만 그는 둘째 날에도 술을 많이 마셨다. 14일 동안 병이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 급성 췌장염 같다. 구토, 열, 한기가 같이 오면서 급성 복통이 가슴 쪽으로 퍼지는 것이 급성 췌장염의 특징이다. 괴사성 췌장염일 때는 패혈증이 생길 수 있고, 병이 진행되면 여러 기관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3. 감염 질환들?

인도 원정을 갔다가 바빌론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망했다. 유프라테스강 유역(바그다드에서 90㎞ 거리)에 있는 바빌론은 동쪽에 늪지대가 있고, 새와 동물과 곤충이 많았다. 오늘날 이라크에서 볼 수 있는 리슈만편모충증, 림프절페스트, 출혈열 등은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았다. 군대의 구성원이 대부분 마케도니아 출신이고, 그리스를 비롯한 정복 지역 출신의 병사가 일부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특정 지역으로부터 유래한 질병이 전파될 가능성은 있었지만 이 군인들에게 전염병이 유행했다는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 그의 병을 기록해 놓은 책에서 붉은 반점, 황달, 구토, 설사, 혈뇨증, 간질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 수 없으므로 감염 질환을 의심할 수 있지만 증거를 찾기 어렵다.

4. 말라리아? - 가장 지배적인 학설

지금까지 사망 원인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이 말라리아다. 실제로 많은 책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했다고 기록해 놓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근대 이후 제국주의를 펼쳐나갈 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말라리아를 비롯한 열대성 풍토병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로 나아간 당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했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실제로 계속 열이 나는데도 춥고, 피로를 느끼고, 근육통이 있고, 서서히 몸이 약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며, 감각이 떨어지고 정신착란에 빠지는 증상은 말라리아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검정색 소변이나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는 열이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날 이라크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말라리아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삼일열원충 때문인데, 사망률이 낮은 편이다.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한 것이라면 열대열 말라리아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열대열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는 체온 변화가 크게 없기 때문에 이 병에 걸렸을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20세기 후반 이후 의학자들은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사망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역사책에서 주로 거론되고 있을 뿐이다.

5. 장티푸스?

장티푸스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1998년에 미국의 올다크가 다시 발표하면서 내놓은 이 주장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면서 사망 원인을 찾기 위한 논쟁에 불을 붙였으나 의학자들의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올다크는 장천공과 상행마비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장티푸스 합병증인 장염으로 사망했다고 결론 내렸다. 장티푸스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죽기 전 2주 동안 열성 질환으로 고생하다가 병이 심해져 뇌질환에 걸려 사망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뇌염, 심내막염, 폐렴, 앵무병, 리케차 질환, 야토병 등도 계속 열이 나는 질병인 것은 마찬가지다. 장티푸스는 보통 한 달 동안 계속 열이 나지만 심한 경우에는 2주 만에 병자를 사망으로 이끌며, 3주 정도 지나면 신경계를 침범해 정신착란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 밖에 기침, 코피, 혈변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증상을 플루타르크가 남긴 기록과 대조해 보면 사뭇 다르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6. 기타

기생충 질환의 하나인 방광 주혈흡충은 고통이 없는 혈뇨가 나오고, 빈뇨, 요실금, 배뇨 곤란 따위의 증상을 일으킨다. 기생충 알이 골수에 들어가거나 신경을 건드리면 골수염이나 마비를 일으켜 환자가 사망하기도 한다. 유충에 감염되면 가렵고, 급성 감염일 때는 가타야마열이 나서 혈청병을 일으키지만, 열은 심하지 않고 가려운 종창이 생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렙토스피라증에서 볼 수 있는 증상은 그의 증상과 같지만 열이 날 때의 양상이 달랐으며 장딴지와 허벅지 통증, 황달, 출혈, 호흡 계통 증상 등이 그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칸트아메바는 지역에 상관없이 감염될 수 있지만, 면역 기능이 떨어진 사람에게 잘 생긴다. 뇌염으로 발전해 사망에 이르려면 만성으로 진행해야 하므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그가 걸린 병은 아니다.

그처럼 자주 과음을 하는 사람들이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리면 빨리 사망할 수 있다. 이때 피부와 근육에 병변이 일어나면서 출혈이 생길 수 있으나 그에게는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7.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감염?

2003년 미국의 칼리셔는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아무도 발표한 적이 없는 새로운 이론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홍수가 자주 일어나 모기가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그가 갑작스럽게 병에 걸린 시기가 5월이라는 점에서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은 낮다. 왜냐하면 최근에 이스라엘에서 발생하는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감염은 주로 8월에서 9월에 나타나며, 5월에 생기는 경우는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칼리셔는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다음과 같은 플루타르크의 기록을 인용했다.

"도시의 성벽 앞쪽에 다다랐을 때 수많은 갈까마귀 떼가 날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이 갈까마귀 중에는 다른 갈까마귀를 쪼아 먹는 놈도 있었다. 일부는 그 앞에 떨어져 죽기도 했다."

또한 칼리셔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바빌론에서 2주 동안 열과 뇌염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이제 이라크의 풍토병이 된 이 질병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도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과거에 바빌론 성벽 밖에 있는 갈까마귀 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엉뚱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이와 같은 관찰 기록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발견이 빨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근육이 이완되고 마비되면서 발생한 뇌염은 의학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소견이다.

기원전 3세기에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출현해 새가 감염되고, 때때로 사람을 감염시켜 열성 질병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 뒤 시간이 지나면서 새 몸속에 들어간 바이러스는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사람 몸속에서는 다르게 변해 생명을 위험하게 했다."

※ 저자의 소결

사망한 원인으로 제기된 수많은 질병 중에서 말라리아, 장티푸스, 기생충 감염,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감염 등은 모두 전염병이다. 약관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정적을 제거하고, 나라의 영역을 넓히는 데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 지휘관의 목숨을 빼앗아간 전염병은 전쟁의 판도는 물론 세계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수많은 정복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끈 그가 혈기왕성한 서른세 살에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나지 않고 장수했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예병일, 『전쟁의 판도를 바꾼 전염병』, (주)살림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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