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차총검술의 위력.jpg
불량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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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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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이모작 성행한게 가마쿠라막부시대부터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시대구요.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논농사가 주를 이룬게 조선 후기인건 아시죠? 이때 이앙법 보편화 되면서 논농사가 주를 이루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밭농사가 주된 농업이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봄철강수량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데다 고려시대처럼 외침에 시달린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성장했어요. 이미 고려 무신정권 시기에서부터 일본의 농업 생산량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도 문화 기술에 대해서 언급한적없습니다. 오로지 당시 국력을 평가하던 주요 요소인 인구 농업생산량 군사력만 언급했죠
그리고 고려 말 왜침에 시달리던때 기록보면 왜구가 500여척의 선박을 동원하고 왜구들이 기병을 동원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왜구들이 단순 노략질하던 집단이 아닌 훈련된 정예병이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만약 당시 일본이 고려에 국력이 딸렸다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서 고려 전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드는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겁니다. 당시 고려말 왜구의 침략이 단순 왜란 수준이 아니었다는걸 잘 아실겁니다
심지어 왜구의 정체가 일본의 남북조 시대때 북조에게 규슈까지 털리기 직전의 남조가 탈출구로 목표했던게 고려라 남조가 왜구의 근원 아니냐는 얘기도 있구요. 북조에게 탈탈 털린 남조의 군사에 탈탈 털린게 고려가 되면 더욱 비참해지는 얘기입니다.
분명 조선이 당시 전세계적으로는 상위권에 속하는 국가였지만 일본 또한 폐쇄성 때문에 그렇지 인구 자원 군사력에서는 잘나가던 시기가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