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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의 여동생 이야기

유산슬 4 6171 13 0

image.png 마의태자의 여동생 이야기


오백리 머흔 잿길 달빛 밟고 넘었으리


아아 산 속 깊은 골에 즈문꿈 묻었으리


공주님 깁옷 벗으시고 시름 에워 사신 곳


월악뫼 만장봉에 옛빛이 설핏하니 


영고는 구름이요 정한 또한 바람인데


덕주골 천년 사연이 물소리로 흐르네


청산을 품에 안고 유수 베고 누웠으니


풍운에 절은 세월 이끼 묵은 바위로다


수유에 머무는 이 몸 무량겁에 젖나니


- 충북 제천 덕주사 입구에는 위 내용의 '덕주골' 이라는 시비가 바위에 새겨져있어


image.png 마의태자의 여동생 이야기
 

시비를 통해 기려지는 공주는 덕주공주로,


image.png 마의태자의 여동생 이야기

경순왕의 항복을 반대하여, 


개골산에 들어가 마로 된 옷을 입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일생을 마쳤다는 비운의 왕자


마의태자의 여동생이야


image.png 마의태자의 여동생 이야기
 

전설에 의하면 왕건은,


신라의 항복을 받은 이후,


항복을 반대했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를 각각 다른 절에 가두었는데,


image.png 마의태자의 여동생 이야기

마의태자는 여동생 그리워하여,


여동생이 있는 북쪽을 향해 미륵불을 세우고,


image.png 마의태자의 여동생 이야기

덕주공주는 마의태자가 있는 남쪽을 향해,


마애불을 세워 서로를 그리워 하였다고 해


image.png 마의태자의 여동생 이야기

덕주공주는 실존인물인가?


망국의 한에 서로에 대한 그리움의 한을 품고 살다간 비운의 남매,


하지만 오빠 마의태자와 달리 안타깝게도 덕주공주는 역사적 문헌이나 경순왕의 가계도 그 어떤 쪽에서도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아,


덕주사와 '덕주'에 관한 최초의 문헌적 기록은


조선 중종때 간행 된


<신동국여지승람>에서로,


'덕주부인이 절을 창간해 덕주사로 지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덕주는 부인으로 표현되지 신라의 공주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미륵불과 마애불의 건립 시기 역시 마의태자나 그의 여동생이 살아있을때와는 연대가 맞지 않는다고 해


물론 신라의 왕족들과 신하들 중 항복에 반대한 사람이 마의태자 단 한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신라의 왕실 여인 중 에서도 마의태자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떠나 망국의 한과 떨어져 볼 수 없는 남매의 우애를 애틋함 있게 잘 표현한 설화라고 생각하여 소개하여봤어


* 흥미로운 글이 되었기를 바라,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4 Comments
Wendy 2020.08.13 23:59  
아 이게설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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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강에딱좋아 2020.08.14 12:40  
청의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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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당공 2020.08.14 17:43  
바람의나라에서본거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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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강에딱좋아 2020.08.14 22:39  
[@농당공] 용투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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