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미스터리 > 미스터리
미스터리
2 Comments
Kuat 2020.01.14 05:19  
미방의 변심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미지수지만, 영릉의 군량고 탈취는 미방의 명분쌓기 계산까지 했다고 보기에는 조금 비약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우금과 3만의 포로는 갑자기 생겨난 입들이자 군식구기 때문에 식량을 단시간에 벌충하기 위해서 손오와의 관계악화를 감수하고 관우가 진행한 고육책이라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미방이 화재로 군량을 소실했고 그것이 중죄가 맞으며 관우에게 질책을 받은것도 사실이나, 관우와 형주관원들이 그간 준비한 게 있을 것인데 군량 한번 태워먹었다고 관우군의 북상과 형주의 경제활동이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는 식의 언급이나 내용은 없습니다. 미방이 보급을 '소홀히'하였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식량사정이 심각하게 나빴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정말 보급부족이 말도 안되게 심각하면 아무리 상황이 좋더라도 관우군이 공세적으로 나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이기고 있더라도 원정에 장마홍수를 겪으면서 체력소모와 식량소모가 아주 컸을건데요. 더군다나 육로도 아니고 한수를 통해서 수운보급이 가능한 마당에 말이죠.

그 말은 부족하나마 관우의 독촉속에 전쟁 유지는 어찌어찌 가능은 한 수준이었으나 갑자기 장정 3만 명의 입을 먹여살려야하는 악재가 겹치니 관우로서도 얄팍한 동맹인 손제리의 뒷감당을 예상하면서도 상관 탈취라는 악수를 둔 것이 더 맞지 않나 하는 결론입니다. 오나라와 육손에게 명분 한 스푼은 덤이고요.

여몽, 장흠, 손교의 사망은 전염병에 더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이, 1차적으로 서황군에 의해 관우군의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육손의 정치질로 관우군의 사기저하가 더해졌으며 마지막으로 관우군과 직접 맞부딪힌건 맹장과에 속하는 반장(+마충)이기 때문이죠. 여몽은 육손의 데뷔이전에 이미 중병에 걸려있었고 장흠은 수군을 지휘했다가 귀환길에 병으로 죽었다고 정사에 적혀있으며, 손교는 육손의 뒤를 따른 후속부대였기에 관우군과 직접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19년 여름에 애초에 형주에 막대한 장마가 내려서 홍수가 나고 그 많은 일이 진행된만큼 장강 일대에 수인성 전염병이 다른 해보다도 극심했으리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저 셋 또한 전투 후유증보다는 전염병에 의한 사망이 좀 더 유력하다고 봅니다.
나사삐야 2020.01.15 10:06  
잘 보았습니당

럭키포인트 166 개이득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