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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북방의 거대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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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가 조선에는 큰 성벽이 거의 없어서 방어하기가 어려웠단 이야기가 있다. 사실 이거는 반은 맏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조선시대에도 거대한 성곽들이 많이 있었다. 문제는 이런 성곽 대부분이 북방에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당연한 이야긴데,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최전방은 어디까지나 북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이 위치한 남부 지방에는 높이가 4,5m에 불과한 읍성이 대부분인 상황이다.(물론 수원화성, 진주성, 남한산성과 같은 예외 사례도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 북방에 존재했던 거대 성곽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평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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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성은 고구려 멸망이후 들어선 한반도 국가들에게 있어서 언제나 제 2의 수도였는데 조선시대 역시 그 예외가 아니었다. 전체 둘레 17km로 한양도성(18km)만큼이나 거대했지만, 외성, 중성, 북성의 3중 구조와 보통강과 대동강이 천혜의 해자 역할을 해주는 견고한 요새 였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허무하게 함락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병사들의 훈련 부족, 지휘관들의 무능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앞서 언급된 굉장히 긴 성벽역시 문제점중 하나였다. 왜란과 호란 때 평양을 지키던 병사들의 수는 불과 수천명에 불과했는데 반대로 성벽은 무려 17km에 이르니 방어밀집도가 극도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허무한 함락으로 이어졌다,(나당연합군이 침공했을 당시 펴양성을 지키던 고구려군의 숫자는 못해도 수만명이었을 것으로 추측됌.)

 여튼 두 전쟁 이후에도, 평양성은 평안도의 요충지였고, 성벽은 계속해서 보수가 이루어졌는데 숙종시기에는 30척(9m) 높이로 중성을 개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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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이 평양성 중성의 모습이다. 성 아래의 가옥들보다 성벽이 대략 3배 가량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평양성에는 조선시대 다른t성곽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시설이 많았지만, 일제 감정기 이후 대부분의 성곽이 철거돼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것들 역시 6.25를 거치면서 싸그리 불타 없어져 버렸다. 이후 북한이 대동문등 시설을 복구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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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가 원래 대동문의 모습 아래가 북한이 복구한 대동문인데, 본모습보다 성문위의 누각 규모가 작아지고 체성의 규모역시 줄어든 것을 알 수있다. 자료가 없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복구한지는 의문이다.


2. 정방산성

 정방산성은 정묘호란 이후 북방의 방비 강화를 목적으로 지은 황해도의 산성이다. 개축을 담당한 이는 희대의 역신으로 유명한 김자점인데, 사시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김자점은 유능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정방산성인데, 둘레는 대략 12km에 성벽의 높이는 6~10m 정도로 크고 높았는데 남한산성의 상위호완 버전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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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정방산성의 남문인데, 북한 사람들의 짜리몽땅한 평균키를 감안해도 굉장한 높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견고한 요새였지만 정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제대로 공성전을 치루지 못했다. 전란이 터지자 김자점은 황해도의 군사들을 모아 성안에서 농성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고자 했지만, 정묘호란과는 달리 청나라 군대가 각지의 요새는 무시하고 한양으로 쾌속진군을 한 까닭에 닭 쫒던 개꼴이 돼고 말았다. 이후 김자점은 오만 똥꼬쇼를 다하며 근왕군을 모아 남한산성을 구원하고자 했지만, 출정 전날 인조가 출성항복을 하며 실패하고 만다. 


 현재 남아있는 북한의 성곽들 중에서는 관리가 그나마 잘 돼있는 편이다.


3. 영변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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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변읍성은 평안북도 영변군에 위치한 성곽인데, 영변산성이라고도 부른다. 한반도에서 철옹성이라고 불리는 성이 바로 이 성이다. 그리고 말그대로 철로 만들어진 성이기도 했는데 신성과 본성을 넘나드는 성문의 아치를 6톤짜리 쇳덩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때 공출을 당하면서 파괴되고 말았다. 철옹성이라는 이름처럼 고려시대 거란, 몽골, 홍건적의 침략부터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에 이르기까지 외적을 모두 물리친 적이 있는 견고한 요새다. 총 둘레 14km에 성벽의 높이는 7m 정도로 크고 견고하며, 방어가 취약한 부분에는 성벽을 추가로 건설해 취약점을 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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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읍성의 구조도. 익산성, 신성, 북성, 본성으로 성벽을 겹겹히 쌓은, 말 그대로 철옹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맨 위 사진의 남문 부근만 보존이 돼어있고 대부분의 성곽이 무너져 있는 상황이다.


4, 경성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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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읍성은 함격북도에 위치한 조선시대 읍성이다. 둘레는 2.2km에 불과한 그저 그런 읍성처럼보이지만 성벽의 높이가 무려 32척(9.6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당장 남부지방 읍성들의 성벽높이는 불과 4,5m에 불과했다.) 거기에다 성벽 주위로 폭 30m, 깊이 4m에 달하는해자까지 두르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고 원래는 토성이었다. 하지만 광해군 시기 후금의 위협이 날로 커지자 북방의 방비강화를 목적으로 석성으로 개축하면서 이렇게 단단한 형태를 가지게 돼었다. 하지만 정작 두 차례의 호란 시기에는 청나라 군이 이 성 근처에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실전 경험은 하지 못했다. 현재는 사진의 남문만 온전히 남아있고 대부분의 성곽 보존 상태가 영 좋지 못한 상황이다.


5.함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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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성은 함경남도에 위치한 성곽이다. 이성계가 아직 왕이 돼기 이전 세력을 쌓은 곳이 바로 이 함흥이다. 당장 이성계의 본가인 함흥본궁이 바로 이 성한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조선왕조의 발흥지로써 조선시대 내내 중요하게 여겨지던 성곽이다. 성벽의 둘레는 4.6km 에 성벽의 높이는 24척(7.2m)에 달했고 서쪽의 성천강이 자연의 해자 역할을 하는 천혜의 요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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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함흥성 성벽의 사진이다. 관리가 잘 안됐는지 허물어진곳이 보이기는 하지만 성벽밑의 사람들과 비교했을때 상당한 높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제 감정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성벽과 성문등 관련시설이 싸그리 날아가고 말았다. 그나마 망루 중 하나인 구천각을 후대에 복원하기는 했지만 고증에 신경쓰지 않고 엉망으로 복원을 해놓은 까닭에 사료적 가치는 없는 상황이다.


6. 안주읍성


안주성은 평안남도에 위치한 읍성들 중 하나다. 원래는 고구려 때 지은 성곽이었지만(살수대첩이 여기서 벌여졌다), 조선시대에도 꾸준이 보수를 하며 유지를 한 성곽인데 시대에 따라 그모습이 현격하게 다른 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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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기부터 호란까지의 안주성의 보습이다. 둘레 2.2km의 외성이 산등성이를 따라 건설돼었고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강의 유속이 약한 지역에 외성을 추가로 건설했다. 그리고 성 북쪽의 청천강은 자연의 해자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듯 다른 안주성은 읍성들보다 방어시설을 나름대로 갖춘 성이었다. 하지만 정묘호란때 벌어진 안주전투때는 아주 손쉽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추운 겨울이었던 까닭에 청천강의 수심이 얕아지고 강물이 얼어붙어버려 청군이 손쉽게 강을 도하, 성을 포위했기 때문이었다.(물론 이것말고도 당시 조선군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보급, 훈련부족역시 원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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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문에 조선역시 성의 취약점을 보완하고자 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는데 위 그림을 보다시피 내성과 외성 바깥에 높이 8m의 신성을 추가적으로 건설, 방어를 보완했고, 다른 읍성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3중성 구조가 완성 돼었다. 장대한 성의 구조 말고도 안주읍성은 경관이 굉자히 아름다웠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관서팔경중 하나였던 백상루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다른 북방의 성곽들과 마찬가지로 안주읍성역시 일제감정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본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북한이 백상루를 복원하기는 했지만 원래 위치에서 400m가량 떨어진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예전경관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다.


7. 황룡산성

화면 캡처 2021-06-25 130250.png 조선시대 북방의 거대 성곽

황룡산성은 고구려때 건축된 평안남도의 산성이다.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벽이 허물어졌지만, 조선 숙종이 나라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산성건설(상당산성과 북한산성이 숙종때 지어졌다.), 보수 하는 과정에서 황룡산성역시 대대적인 보수와 개축이 이루어 졌다. 둘레는 6.6km정도로 남한산성이나 정방산성의 절반정도에 불과하지만 성벽의 높이는 10~11m에 달해 두성 못지 않게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이후 황룡산성은 평안도의 길목을 지키는 요새로써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관리가 잘 돼지 않아 무너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대부분의 성곽이 그 형태만 간신히 보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말고도 백마산성, 태백산성, 의주성, 통주성등 북방에는 견고한 요새가 많이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허물어지고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애초에 북한부터가 워낙 엉망인 상황이라 유적을 보존할 만한 형편이 않돼고, 자신들의 주체사상과 백두혈통과 연관시킬 수 있는 고구려시기 유적 보존에만 관심이 크기 때문에(사실 관심이 크다는 말도 웃긴게 고구려유물을 발굴하는 족족 해외에 팔아치우는 놈들이다.) 미래가 영 밝지가 않다. 여러모로 걱정이 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1 Comments
대머리아재 2021.06.29 23:55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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