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주의] 대한민국의 또 다른 쾌락살인마 정남규
BusterPo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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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22:36
1969년 3월 1일~2009년 11월 22일.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4명을 살해하고 19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자이다.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봉천동 세자매 피습 사건에서 세자매 중에서 두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사망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건 초기의 언론 보도로 인한 것이다. 실제로 봉천동에서 피습당한 세자매 중에서 중상을 입었던 한 명 역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우범곤, 유영철, 김대두에 이어 한국에서 4번째로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다. 유영철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며 유영철의 소행으로 알려졌던 서울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다. 그 후 보강 조사에 의하여 범행의 대부분이 밝혀졌으며 흉악성으로는 KCSI 요원 사이에서 역대 최악으로 평가되었다.
정남규의 검거 과정은 매우 극적이었다. 2006년 4월 22일 새벽, 신길동의 어느 다세대 주택에 침입하여 자고있던 20대 청년을 둔기로 살해하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극렬히 저항하고 옆방에서 자고 있던 청년의 아버지까지 합세하여 격투 끝에 정남규는 붙잡히고 경찰에 인계된다. 그러나 정남규는 경찰서로 이송하기 직전에 순찰차 뒷자리에서 수갑을 찬 채로 그대로 달아나버렸고 2시간 만에 동네 주민의 신고로 옥상에서 다시 검거된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이다. 체포 후 심문 과정에서 범행 후 만족감을 느꼈다거나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발언을 하여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현장 검증 당시 분노한 시민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고 달려들려고 하자 피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다른 범죄자들과는 다르게 시민들을 노려보고 맞서 달려드려 했으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연행차량 안에 탔을 때는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기까지 하며 지켜보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둘 다 살인 자체가 목적이었다고는 하지만 비슷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좋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기인한 가진 자에 대한 분노나 이혼으로 인한 여성에 대한 혐오감에 의해 철저하게 목적형 범행을 저지른 반면 정남규의 경우 처음부터 철저히 쾌락만을 위한 전형적인 쾌락살인범이라는 점이 전혀 다르다. 유영철은 주로 둔기를 사용하여 범행을 저질렀으며 별다른 성적인 행위를 하지 않은 반면 정남규는 날카로운 흉기를 사용하여 범행을 저질렀으며 성폭행과 방화를 함께 저질렀는데 이러한 "찌르는" 행위, 성폭행, 방화 등의 행동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성적인 동기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분석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사람을 더 죽이지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다. 빨리 사형을 집행해 달라" 는 발언을 하는 등 전형적인 쾌락살인범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범행을 자백할 당시 "강남구 등 부유층이 사는 동네엔 CCTV가 너무 많아서 CCTV가 없는 곳에서 했다" 는 말을 하였다. 실제로 그는 살인을 더 쉽게 하기 위하여 주로 방범시설이 잘 갖춰져있지 않은 서민층 및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을 범행 대상으로 잡았으며 침입 방법도 문을 따거나 창문 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문을 열어놓고 있는 집을 대상으로 범행하는 등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는 살인 자체를 쾌락으로 여겨서 좀 더 쉽게 많은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장소를 택하는 행동이다.
게다가 이런 자신만의 쾌락을 위해서 범죄를 준비하는데 있어 상상 이상의 힘을 쏟았다. CCTV에 잡히지 않기 위해 지하철 몇 정거장 정도의 장거리를 도보로 이동하였는데 이를 위해 평소 마라톤 등의 달리기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신의 방에 있을 때는 건강정보 프로그램을 꾸준히 시청하며 자신의 식단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는 등 '살인을 쉽게 하기 위해' 훈련 등의 장기적 계획까지 짰다. 거기에 범죄를 준비하기 위해서 체력만 단련한 게 아니라 공부(?)도 매우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수색된 그의 집에서 과학수사 관련 잡지만 수십 권이 발견되고 체포당하기 직전까지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를 한 편도 빼놓지 않고 계속 시청했다. 또한 자신의 범죄를 전하는 기사를 스크랩하며 수사상황을 학습하고 있었다. 나중에 수색된 그의 집에서는 수사진의 얼굴을 찍은 월간지 스크랩까지 발견되어 수사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한다. 게다가 완전범죄에 최대한 가까운 노력을 했는데 정남규가 신는 모든 신발에는 밑창을 도려내서 족적이 나오지 않게 했고 피해자를 신속하고 확실하게 살해하기 위해서 흉기로 파이프 렌치를 사용하는가 하면 지문이 쉽게 발견되지 않으면서도 미끄럽지 않은 '벌집무늬가 박힌 장갑' 을 착용했다. 그래서 그 오랜 기간 동안 잡히지 않고 살인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문동 살인 등 일부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다가 정남규가 알아서 자백하는 바람에[1] 진상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가 밝힌 동기 중에 어린 시절 성학대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실제 첫 번째 범행으로 알려져 있는 부천 초등학생 피살 사건에서는 당시 10살과 11살 남자아이 두명을 납치하여 자신이 당했다고 진술한 방법과 동일한 수법으로 성추행한 뒤 살해하였다고 진술하였다. 하지만 정남규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일 수도 있으나 동정심을 받아서 감형을 받기 위하여(실제로 재판할 때 수많은 피고들은 동정을 받으려 한다고) 자신의 첫 번째 범행에서 모티브를 얻어 꾸며낸 자작극이라고 볼 수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2] 오히려 자신의 지배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소아성애자들이나 이와 비슷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 대항할 힘이 없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살인, 성범죄, 잔혹행위 등의 각종 범행을 저지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저지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게다가 이후 범행은 거의가 힘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였다.[3]
더불어 이러한 증언의 조작은 감형의 구조를 알고만 있다면 누구라도 시도하는 방법이며 적게는 정상참작, 많게는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 내지는 형의 면제를 받기 위한 수법이다. 일단 책임능력이 부정된다면 판사로서는 중형을 선고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 때문에 심문 과정에서 이러한 증언의 모순을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도 그의 피해자는 저소득층 및 여성으로 전원 사회의 약자들이고 그 목적이 엄연히 쾌락에 의한 연쇄살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를 더 죽이지 못해 억울하다" 는 주장을 하는 등 자신의 살해 동기를 조작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더욱 주장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 마디로 거짓말도 그럴 듯하게 해야 먹혀든다는 것. 실제로 판사들도 이러한 동기에 동의하지 못했는지 "반성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는 논조로 판결을 내리고 있다.
2007년 4월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 끝에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담배를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 라는 말을 남겼으며 2009년 11월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하였다. 유언은 남기지 않았으나 최근의 사형 여론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한 것으로 볼 때 사형 집행에 대한 두려움[4]으로 자살을 결심한 게 아닌가 추정된다고. 물론 진실은 이미 죽은 정남규 본인만이 알 것이다.
전문 프로파일러조차 두려워했을 정도로 국내 최강 사이코패스. 어떻게든 중벌을 피하고 싶어 동정론에 호소하고 최대한 사실을 숨기려 들며 증거를 들이대도 일단 아니라고 우기고 보다가 견디지 못하면 그제서야 자백하는 일반적인 절대다수 범죄자들과 달리 시키지도 않은 자백을 알아서 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없이 전부 늘어놓는 등 사형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쇄살인범 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박형민 부연구위원도 정남규와 면담할 때 가장 섬뜩했다고 한다. 수많은 살인자들과 면담했던 전문가가 그 중 제일이라고 했으니 대체...
오죽했으면 그것이 알고싶다 "사이코 패스-그들은 누구인가" 에서는 정남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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