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탐정 VS 초능력 사냥꾼
그녀, 심령탐정
영국 웨스트요크셔 주 사람들, 특히 웨스트요크셔 경찰에게 있어 1975~1980년은 끔찍한 해로 기억되고 있다. 이 5년 동안 매춘부를 포함한 13명의 여성이 한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되었으니 말이다. 영국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였던 '잭 더 리퍼'가 재림한 듯한 모습에, 당시 주민들은 그저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그렇게 잭 더 리퍼의 이름을 따 '요크셔 리퍼'라고 이름 붙여진 이 살인마를 잡고자 영국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를 벌이나, 수사는 점차 난항으로 빠져들었고 살인마의 살인은 계속됐다. 이처럼 지속적인 살인 행각에 경찰은 속수무책이었고 피해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처럼만 보였다.
바로 그때, 영국의 대표적인 초능력자이자 세계 10대 심령탐정으로 꼽히던 여성이 직접 나서기로 한다. 그녀의 이름은 넬라 존스, 선천적으로 '사이코메트리(사물을 만져 그 사물에 기록되어있는 정보, 즉 소유자나 접촉자들의 과거, 현재, 미래 영상을 투시한다는 개념의 초능력)' 능력을 타고나 영국 경찰의 사건 해결에도 도움을 주던 이였다. 그렇게 그녀는 악명 높은 요크셔 리퍼를 잡고자 경찰에 협조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그녀는 예의 자신의 초능력을 발휘해 범인의 영상을 읽어냈다.
"범인은... 트럭 운전사에요. 'C'로 시작하는 회사에서 트럭을 몰고 있네요. 잠깐, 범인의 이름이 보여요. 그의 이름은.. 피터.. 피터에요. 그는... 웨스트요크셔 주 브래드퍼드에서 살고 있네요. 아.. 이런... 그가 11월 17일에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네요! 피해자의 이니셜은.. J... JH, JH에요!"
<'James Randi : Psychic Investigator' 넬라 존스 편>
유투브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sQHYkyq7Hs
그렇다면 요크셔 리퍼의 경우는?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넬라 존스, 과연 그녀는 과거에 어떻게 요크셔 리퍼를 정확히 투시했던 것일까? 혹시 과거에 자신의 능력을 너무 끌어써서, 그만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 것일까?
과거 요크셔 리퍼를 정확하게 투시했던 그녀의 경우, 특정 사건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투시했던 다른 유명 심령탐정들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미 대대적인 수사로 사건이 종결 날 무렵, 그때까지 모아진 유력 정보들을 바탕으로 가능성 높은 '추리'를 한다는 것. 당시 그녀가 투시했다던 것들의 진실은 다음과 같다.
· 범인은 트럭 운전사
→ 첫 번째 살인 수사과정에서, 이미 당시 경찰이 범인이 트럭 운전사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 'C'로 시작되는 회사에서 근무
→ 범인이 여섯 번째 살인 과정에서 현장에 신권 5파운드 지폐를 흘렸는데, 경찰은 지폐의 일련번호를 조사해 이 지폐가 월급으로 지급되었던 것임을 밝혀냈다. 그리고 해당 지폐를 월급으로 지급한 회사는 3곳으로 좁혀졌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운송 회사인 'Clark Transport'였다.
· 범인은 이름은 피터
→ 영국에선 이름에 피터가 들어가는 게 제법 흔하다. 또, 당시 요크셔 리퍼를 두고 잭 더 리퍼 외에도 '뒤셀도르프의 뱀파이어'와 비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뒤셀도르프의 뱀파이어는 1892~1930년 동안 뒤셀도르프에서 살인을 저지르던 연쇄살인마로, 이름은 피터 퀴르텐이었다. 아마 그녀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을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요크셔 리퍼의 이름에 피터가 들어가서 제일 놀랐던 건 다름 아닌 그녀였을 것이란 거다.
· 범인은 브래드퍼드에 거주
→ 5파운드 지폐를 통해 수사망을 좁혔던 경찰은, 브래드퍼드와 그 근처 리즈가 범인의 거주지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발표했다.
· 11월 17일이나 27일에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며, 피해자의 이니셜은 JH
→ 엄밀히 말해 이것을 1980년 11월 17일에 살해된 재클린 힐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애초에 그녀는 달과 날짜만을 예측했을 뿐이며, 그러한 예측이 있기 전인 1975년 11월 20일에 이니셜 JH의 피해자가 발견된 적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피해자의 이름은 조안 해리슨으로, 당시 매춘부 일을 하던 중 비슷한 방식으로 살해되었기에 언론은 요크셔 리퍼의 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따라서 넬라 존스는, 버려진 차고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조안 해리슨이 요크셔 리퍼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추측하고는, 시신이 발견된 시점으로부터 적당히 계산한 날짜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그녀는 조안 해리슨이 요크셔 리퍼에 의한 피해자일 거라 추측하고는, 훗날 자신이 투시했던 건 요크셔 리퍼가 1975년 11월 17일에 그녀를 살해하는 순간이었다고 주장하려던 것 같다(조안 해리슨의 진범은 이후 DNA 감정을 통해 2008년에 밝혀짐). 어쨌든, 1980년 11월 17일에 재클린 힐이 요크셔 리퍼에게 살해당하면서 제일 놀랐을 사람은 역시 넬라 존스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밖에 요크셔 리퍼와 관련해 빗나간 그녀의 추측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요크셔 리퍼가 채플 스트리트에 거주할 것이라고 했으며(실제론 가든 레인), 1979년 7월에 15~16살의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실제론 1979년 7월엔 살인이 없었음). 또 요크셔 리퍼의 생김새를 수염이 없는 것으로 표현했으며(실제론 짙고 구레나룻과 이어진 덥수룩한 수염), 미혼에다 10~11살에 모친을 여의었고 부친은 신체에 장애가 있다고도 했다(실제론 기혼에다 모친은 그가 30대일 때 사망했으며, 부친은 멀쩡).
마지막으로, 영국 경찰은 그녀의 협조를 받아 요크셔 리퍼를 체포한 것이 아니다. 범행 현장에서 범인의 5파운드 지폐를 발견한 뒤로 용의자 선상을 5,000명 내외까지 줄였던 경찰이, 이후 3여 년간을 헤매던 중 1981년 1월 2일 자정 무렵에 우연히 범인을 검거한 것이다. 이날 순찰을 돌던 한 경찰관이 막 매춘부를 차에 태우던 남자를 발견했고, 이에 간단하게 검문을 실시하던 중 남자의 차량이 도난차량임을 깨닫고는 연행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 차량 절도범이 바로 요크셔 리퍼인 피터 서트클리프였다.
물론,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녀가 영국 경찰에게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사실은 없다.
"그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의뢰를 받았다는 초능력자가 접촉해올 경우, 단지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보통 수사가 막히면 우리는 어떠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오픈을 하고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사실, 초능력자들의 의견은 수사에 있어 아무런 도움도 안 됩니다."
- 시카고 경찰, 어째서 초능력자를 수사에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초능력자를 수사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정보를 제공한다면 정중하게 들을 생각입니다. 물론, 무료로 제공한다면 말이죠.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정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습니다. 왜냐구요? 시간 낭비니까요."
- 로스앤젤레스 경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