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그것이 알고싶다 빵빠레와 빠삐용 - 나는 무엇이었나 3화
사망사건이 알려지면 당시에 공모했던 모든 부대원들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거지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2월 6일에 있었던 김씨의 판결문이야
김씨의 정신분열 증상이 군생활의 충격때문임을 인정한
이 판결문에는 김씨가 목격한 두건의 사망사고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음
일명 빵빠레를 수시로 시켰고
동료중 한명이 빵빠레로 사망한적도 있었으나 그 후에도 빵빠레를 계속 시켰다"
그러니까 김씨 동료중 한명이 빵빠레과정 중에서 사망했다는거지
또다른 동료의 죽음은 더 참혹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훈련을 거부하자
선배들은 그 후배를 투검 훈련용 표적 바로 옆나무에 묶어두어 극도의 공포감을 줬고
땅에다 묻고 목만 내놓은채 일주일을 그대로 두었으며
목욕탕에서 물속에 담갔다 꺼냈다를 반복하였고
결국 이 후배는 적응하지 못하고 복무 중 사망하였다"
두 사건모두 1990년 후반에 일어난 일이래
이 두상병의 죽음에 얽힌 의문을 풀어보기로 함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은 제대 후에도 김씨를 괴롭힘
북으로 가라는 환청에 시달리는가하면
집착증상을 보이고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
심각한 정신분열 증상을 보였다고 함
그 시작은 동료 두명의 사망사건이야
먼저 빵빠레 도중 숨졌다는 대원의 얘기부터 확인해보기로 함
사망자 명단중에 판결문에 적힌 사건발생시기와 근무장소가 일치하는 대원 한명의 정보를 찾았음
바로 현충원으로 향했더니 그는 이곳에 있었음
사망 후 4개월 후에야 이곳으로 왔다고 함
사망한 대원의 이름은 하사 김우현
1997년 겨울 춘천에서 근무중 사망한것으로 기록되어있음
김하사가 사망하던 무렵 같은 부대에 근무한 대원들을 어렵게 찾았음
김우현하사는 유난히 무장구보훈련성적이 좋지못해
빵빠레를 수시로 당했다고 함
팀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함
팀의 임무수행평가점수가 떨어지면 재측정을 실시하기때문에
낙오되는 후배들을 다루는 선배들 나름의 교육방법이었다는거지
그런데..
기록은 좋아졌지만 얼차려는 멈추지 않았고
다시 빵빠레는 시작되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함
김하사의 어머니는 15년전에 걸려온 전화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하심
훈련 중 사망으로 순직했다는 아들.
진실은 아직도 안잡힘
판결문에 적힌 또한명의 사망자
그는 고문에 가까운 가혹행위로 목숨을 잃었대
그 역시 사망자 명단속에 포함되어 있었어
팀성적이 떨어지자 가혹행위는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그런데 훈련도중 그가 부대를 떠날 기회가 있었다고 해
적응못하는 후배를 위해 선배들이 부대측에 건의를 했음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맡고있는 부대원의 전투력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낙오자가 생기는걸 용납하지 않음
심각한 가혹행위가 부대내에서 매일같이 이루어졌지만
제재도없었고 폭력을 조장하는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