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악의 연속살인 - 츠야마 30인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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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 무츠오
일본 최악의 연속살인 - 츠야마 30인 살인사건
1938년, 일본 오카야마현에서 일어난 30인연속살인사건, 츠야마 30인살인사건은 일본 최악의 연속살인으로 알려져있다. 이 사건은 후에 <다나카 노보루>감독의 영화 <오밤중의 마을>, <요코미조 세이지>와 <시마다 소지>의 소설 <팔묘촌>과 <용와정 살인사건>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특히 팔묘촌의 경우 소설과 더불어 영화, 드라마로도 수차례 만들어져 일본 최고의 탐정 에피소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또 PS2 호러 게임으로 유명한 <사이렌>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츠야마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니시카모 마을의 <도이 무츠오>라는 청년으로 부모님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몸이 약했지만 학교에서 성적도 좋았고 반장을 맡기도 했다. 마을사람들에게도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좋았던 남자였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자신이 직접 쓴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였던 그는 심성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할머니 밑에서 버릇없이 자랐다는 교사의 평가가 있었으며 몸이 약해 병치레를 자주 하였다.
청년시절 도이 무츠오는 그 당시에는 불치병이나 다름없었던 결핵을 걸리면서 징병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게 된다. 일본어 위키나 다나카 노보루 감독의 영화 오반중의 마을에서는 이 부분을 두고 군대에 못가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으로 언급하고 묘사했으나 사실은 당시에 의료기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결핵을 두고 마을 사람들이 외면했던것이었다. 더군다나 도이 무츠오는 일본에서 젊은 남자가 여러 여자와 밤마다 관계를 하는 <요바이>라는 성풍습을 통해 이어오던 육체적 관계를 여자들이 기피하면서 자신을 외면하자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따돌림 시키는 마을사람들과 자신과 관계를 맺어온 여인들은 자신을 기피하고, 한 여성은 도이 무츠오와의 약혼을 파혼하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기로 하자 그의 분노는 결국 극에 달하고 만다. 도이 무츠오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엄청난 증오를 살인으로 씻어내기 위해 살인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수렵먼허를 취득한 뒤 총기와 일본도 등 살인 도구들을 구입한 후 총기연습을 하는 도이 무츠오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우려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연로한 할머니를 위해 된장국에 약을 타서 드렸지만 이를 독약을 탔다고 오해한 할머니는 경찰에 신고했고 이로 인해 각종 무기들을 압수당하고 수렵면허도 취소된다.
하지만 도이 무츠오는 계획을 중지하지 않았고 다시금 무기를 사들였다. 살인행각을 벌이기전에 지인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도 한다. 도이 무츠오는 당시에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엽기적 살인사건 <아베 사다> 사건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는데, 아베 사다 사건은 창녀인 여자가 내연남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성기를 자르고 살인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도이 무츠오는 지인에게 <아베사다 사건보다 더 굉장한 일을 벌이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1938년 5월 20일 오후 4시, 도이 무츠오는 마을 이집저집을 돌면서 살인계획에 필요한 조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의 새벽을 참극의 실행일로 결정했다. 자신을 외면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2명의 여자가 마을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도이 무츠오는 살인을 벌일 때 어두우면 범행자체가 더욱 용이하기 때문에 오후 5시 미리 전기줄을 끊어 정전사태를 만들어놓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광란의 연속살인이 다가왔다. 도이 무츠오는 살인을 위해 온몸을 무장하기 시작했다. 다락방으로 올라가 검정색 교복을 입고 양쪽 다리에 군사훈련용 각반을 단단히 감고 고무창 신발을 신었다. 머리는 수건으로 감은 뒤 2개의 소형 회중전등을 달았고, 자전거용 램프를 목에 매달고 다른 끈으로 상체에 고정시켜 몸의 방향과 램프가 일치하게 만들었다. 어두운 상황에서 보고있는 상대를 바로 비췰수 있게 위함이었다.
그런 다음 일본도 1개와 단도 2개를 허리에 끈으로 묶은 후 가죽벨트로 고정했다. 개조시킨 9연발 브라우닝 엽총을 들고, 포켓에는 실탄 100발을 넣어 어깨에 걸쳤다. 그 마을에서는 야간 수렵활동 시 머리에 회중전등을 수건 등으로 머리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고, 도이 무츠오가 애독한 만화잡지에서 일본군이 사용한 총에 회중전등이 붙어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을 생각하여 반영한 것 같다.
모든 준비를 마친 도이 무츠오는 1시 40분 경 다락방으로 내려와 잠들어 있던 자신의 할머니를 도끼로 살해하면서 참극의 서막을 알렸다. 할머니를 살해한 뒤 그는 차례차례 마을의 집들을 총과 일본도로 습격하면서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질렀다. 시골이라 문단속을 거의 하지 않았고 새벽이었기에 잠들어있다가 그대로 총을 맞고 숨지는 사람도 있었으며 총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나도 대부분 어두운데다 심야시간에 어찌할 방도가 없었기에 무슨 일인가 그냥 집에서 기다리가 화를 면치 못했다. 대부분 노약자나 16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이 피해자였는데 도이 무츠오의 분노를 짐작케한다. 더구나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나 자신이 싫어한 여자를 며느리를 맞이했다는 이유로 노인여성을 총으로 쏘기도 했다. (다행히 노인여성은 살긴 했으나 자신의 자식들이 죽었다.) 또한 애초에 노렸던 사람들이 이사를 가버려 대신 다른 가족들이 살해되기도 했다.
그나마 살수 있었던 사람들은 도이 무츠오가 살인을 저지를 지 모른다는 예감을 갖고 교토로 떠난 사람들(이 사람들은 도이 무츠오에게 희생된 여자에게 같이가자고 했으나 그 여자는 거절했다가 도이 무츠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도이 무츠오가 살인 당일 자신과 마주쳤지만 죄가 없으니 죽이지 않겠다며 목숨을 잃지 않은 사람들, 도이 무츠오의 공격을 극적으로 피해 도주한 사람들, 그리고 도이 무츠오가 생전에 가장 증오한 자신을 외면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2명의 여자였다. 2명의 여자는 도이 무츠오가 습격할 때 필사적으로 도망가 결국 목숨을 잃지는 않았는데 일설로는 도이 무츠오가 사랑했던 여자라 차마 죽이지는 못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 여자들의 가족들이 상당수 살해되었다.
희생을 면해 극적으로 피한 한명은 마을에서 벗어나 파출소에 신고를 했고 파출소에서는 즉각 보고를 한뒤 출동한다. 하지만 마을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짧지 않았고 도이 무츠오는 계속해서 살인행각을 벌인다. 광란의 연속살인은 결국 30인 살인이라는 극악무도한 결과를 낳게 되었고 도이 무츠오는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어느 노인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피투성이가 된채로 총가 일본도를 갖고 있던 도이 무츠오를 보고 막 잠에서 깨어난 노인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도이 무츠오는 공책과 연필을 달라고 했으나 노인은 제대로 대처를 못했고 결국 도이 무츠오는 노인의 손자에게 부탁했다. 그 손자에게 도이 무츠오는 동화를 읽어준 적이 있어 안면이 있었는데 손자 또한 그 남자가 도이 무츠오인지 알수 있었다고 한다. 도이 무츠오는 손자에게 연필과 공책을 찢어서 받은 뒤 <공부열심히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라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산으로 올라갔다.
산에서 총을 제외한 각종 도구들을 무장 해제해 자신의 옆에 가지런히 정리해놓고 그는 엽총을 자신의 심장으로 조준했다. 그리곤 총알이 발사되었고 심장을 맞은 도이 무츠오는 그대로 즉사했다. 도이 무츠오는 손자에게 받았던 공책 종이에 연필로 유서를 써놨는데, 살인을 저지른 동기에 대해서는 자신을 외면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마을로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썼고, 애초에 노렸던 가족 대신 다른 사람들이 죽어서 안타깝타고 썼으며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는 <살인마의 할머니로 살아가게 할수는 없다.>라고 썼다. 결과적으로 당시 일본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최악의 연속살인 사건이 되었고 인구수가 매우 적었던 마을 부락의 쇠퇴화에도 큰 원인이 되었다. 마을의 인력이 회복되기까지도 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또한 지금까지도 일본 최악의 연속살인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