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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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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열정의 스포츠이다.
하지만 이러한 열정은 가끔씩 독이 되기도 하며
목숨을 앗아가는 대참사로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알아보자.
*사망자, 부상자 수가 가장 많은 사건으로 정했습니다.
*꽤나 엄숙한 주제이기 때문에 렛츠고는 쓰지 않겠습니다.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참사

image.png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참사image.png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참사

사망자 328명

부상자 500여명

영향
- 코파 아메리카의 관중 수 제한


-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참사는, 
1964년 5월 24일 페루 국가대표의 홈구장 에스타디오 나시오날에 
도쿄올림픽 예선을 위해 아르헨티나를 불러들였던 날에 일어났습니다.

이 시합은 올림픽 티켓을 위해 매우 중요한 날이었고
이에 걸맞게 페루 국민의 약 5%인 53,000명이 입장했습니다.

하지만 페루 국민들의 바램과 달리,
전반에 아르헨티나가 선제골을 넣고 1:0 리드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다가 후반 종료 6분 전, 84분에 페루가 동점골을 득점했으나
그 전에 파울이 선언되며 골이 취소되었고
주심의 판정이 경기 내내 일방적으로 편파되었다고 생각한 페루 팬들은
그라운드로 단체 난입하기에 이릅니다.



image.png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참사

 

이를 막기 위해 경찰들은 지체 없이 강화 최루탄을 발사했고
피치로 내려오려던 관중들은 눈과 코가 마비된 상태가 되어
그라운드 난입이 아닌, 단체 경기장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눈과 코가 마비된 상태였기에
1000명 가까운 인원이 서로 눌리고 짓밟는 상황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질식사, 내출혈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게 되었습니다.


image.png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참사
 
생존자 중 한 명이었던 살라스라는 남자는
당시 현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 마치 2시간 동안 녹아 흘러내리고 있는 빙하 위에 있는 느낌이었어. "
" 2시간 동안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마침내 닿았을 때,, "
난 그게 시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말았지. "

그렇게 경찰의 단순 과잉진압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듯 했으나,,
새로운 화두가 던져지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가족이 경기장에서 경찰의 총격에 사망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죠.

당시 해당 사건을 조사하던 판사, 카스타네다는
총격을 봤다는 목격자도, 총을 맞은 시체도 있었지만
총을 맞은 장소가 경기장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말이 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수습하려는 경찰 측이 사망자의 시체만을 병원에 던져두고,
어떠한 정보도 없이 떠났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또한, 정부 차원에서 자신을 입막음시키려 했다고 폭로했는데요.


사람들은 이러한 폭로에 분노하여 페루 정부에 항의했지만,
정부가 내놓은 답변은
" 선동가의 선전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이며, 정부와는 일체 관련이 없다 " 
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이후에도 페루 정부는 여러 요구에도 진상 규명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지금은 증거가 남아 있지 않으니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참사의 시발점이 되었던
최루탄 발사 명령을 내린 경찰서장은 고작 30개월의 징역만을 살았고

해당 경기장에는 아직까지도 
추모비가 세워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안타까운 점은, 나가라는 경찰의 명령을 거부하고
관중석에 그대로 남아있던 사람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는 점이네요.

하여튼, 이 사건 이후 좌석 제한이 모호하던 코파 아메리카에
좌석 제한이 생기게 되었으며 페루 축구 리그 자체의 인기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 경기 이후 페루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충격으로 인해 몇 달 동안이나 경기를 뛰지 못했다고 하네요.

경찰의 과잉 진압과 정부의 나몰라라식 대응,
그리고 축구에 대한 지나친 열정이 불러온 대참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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